6. 명분이 없인 받지 않는다
5b-6. 만장이 말하였다: “일정한 관직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士)【5b-2에는 제후 다음에 경(卿)이 있고, 그 다음에 대부(大夫)가 있고, 대부 다음에 상사(上士)ㆍ중사(中士)ㆍ하사(下士)가 있었다. 이 사(士)는 모두 일정한 관위가 있는 선비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士)는 일정한 관위가 없으면서 떠도는 자들이다. 전국시대에는 공부는 했으나 취직이 안 되어 떠도는 지식인이 많았다】가 제후에게 직접 의탁하여 생활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뭔 이유에서입니까?” 萬章曰: “士之不託諸侯, 何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급(級)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제후가 나라를 잃고 타국의 제후에게 가서 몸을 의탁한다면 그것은 대등한 신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예에 합당한 것이지만, 일개 떠돌이 사(士)가 제후에게 직접 몸을 의탁한다는 것은, 신분의 상위 있으므로 예에 합당치 아니한 것이다.” 孟子曰: “不敢也. 諸侯失國, 而後託於諸侯, 禮也; 士之託於諸侯, 非禮也.” 만장이 여쭈었다: “제후가 그 사(士)에게 곡물(穀物)【원문에 ‘속(粟)’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1a-3에 기출】을 보내오면, 받아도 될까요?” 萬章曰: “君餽之粟, 則受之乎?” 말씀하시었다: “받아도 괜찮다.” 曰: “受之.” 만장은 말한다: “받아도 괜찮다는 것은 뭔 뜻이오니이까?” 受之何義也?” 말씀하시었다: “한 나라의 군주가 타국에서 흘러들어온 백성이 빈곤할 때에 구제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맹(氓)’은 외국에서 온 백성, ‘주(周)’는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는 동사】. 曰: “君之於氓也, 固周之.” 말한다: “구제해준다고 보내면 받고, 봉록으로서 하사하면 안 받는 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曰: “周之則受, 賜之則不受, 何也?” 말씀하시었다: “봉록으로서 하사하면 받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曰: “不敢也.” 말한다: “그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시는 말씀이 뭔 뜻인지 감히 물어도 되겠습니까?” 曰: “敢問其不敢何也?” 말씀하시었다: “포관(抱關, 문지기)이나 격탁(擊柝, 야경꾼)이라도 상직(常職, 일정한 직분)이 있기 때문에 군주로부터 하사하는 봉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직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주제에 군주로부터 봉록에 해당되는 하사를 받는다는 것은 불공(不恭)한 것이다【뻔뻔스러운 것이다. 군주에게라도 그런 신세를 져서는 아니 된다)】.” 曰: “抱關擊柝者, 皆有常職以食於上. 無常職而賜於上者, 以爲不恭也.” 말한다: “군주가 곡물을 보내오면 받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러한 증여를 계속 보내면 계속 받아도 되겠습니까?” 曰: “君餽之, 則受之, 不識可常繼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글쎄, 그게 좀 문제가 있지. 옛적에, 노나 라의 목공은 자사를 잘 대접하였다【목공과 자사에 관해서는 2b-11에도 기출】. 목공은 매우 자주 사자를 보내 문안드리고 또 그때마다 정에 삶은 고기를 보내왔다【‘정육(鼎肉)’은 정에 삶은 고기를 정과 함께 같이 보내는 예물이다】. 그러나 매번 명으로 증여되는 선물에 대해서는 매번 절하면서 받지 않으면 아니 되니, 그런 절차가 고맙기는 하면서도 아주 구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자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받다받다 못해 어느 날 드디어 자사는 군주의 사자를 대문 밖으로 불러내어 그곳에서 북면하고 고개를 조아려 이마를 땅에 댄 후에 다시 재배(再拜)하고 그 예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고나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계수재배(稽首再拜)’가 거절을 나타내는 흉배(凶拜)라는 설과 그것을 반박하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임금께서 나를 개나 말을 기르는 것처럼 똑같이 취급하신다는 것을 알겠나이다【사실 목공이 악의가 있어서 자사를 구찮게 해드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목공이 자사가 편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번문욕례를 생략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공은 그냥 보 내기만 했고 세부적인 절차에 관해서는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사 입장에서는 곤욕스러웠던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다음 단락에 실려있다】. 曰: “繆公之於子思也, 亟問, 亟餽鼎肉. 子思不悅. 於卒也, 摽使者出諸大門之外, 北面稽首再拜而不受. 曰: 今而後知君之犬馬畜伋. 이로부터 목공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급관원을 보내어 예물을 증여하는 짓을 그만두었다【‘대(臺)’는 하급관리의 뜻】. 현인을 좋아한다고 말로만 씨부렁거리고 실제로 그를 등용하여 의미있는 중책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또 제대로 공양할 줄도 모른다면, 이런 제스처 정도를 가지고 과연 현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여기 쓴 표현은 ‘열현(悅賢)’이다】 蓋自是臺無餽也. 悅賢不能擧, 又不能養也, 可謂悅賢乎?” 말하였다: “감히 여쭙겠나이다. 한 나라의 국군(國君)으로서 참으로 군자(君子)를 양(養)하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만 수 있겠나이까?” 曰: “敢問國君欲養君子, 如何斯可謂養矣?”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최초에 예물을 군명(君命)으로서 보내게 되면 받는 사람은 당연히 재배(再拜)를 하고 고개를 조아려 이마를 땅 대어 약간 머무른 후에 그 예물을 받아들인다【앞에서 ‘계수재배(稽首再拜)’로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재배계수(再拜稽首)’로 되어있다. ‘재배계수(再拜稽首)’는 수용하는 길배(吉拜)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의 단 한 번에 그쳐야 한다. 두 번째부터는 곡식창고 관리 직원이 계속해서 곡식을 보내고, 푸줏간 관리의 포인(庖人)이 끊이지 않고 고기를 보내되, 군명(君命)으로 보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일체의 번문욕례를 생략하고 소리없이 대드려야 하는 것이다. 자사는 정육(鼎肉)이 올 때마다 자기로 하여금 비굴하게 굽실굽실 계속 절하게 만들었으므로 이것은 도저히 군자를 양(養)하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曰: “以君命將之, 再拜稽首而受. 其後廩人繼粟, 庖人繼肉, 不以君命將之. 子思以爲鼎肉, 使己僕僕爾亟拜也, 非養君子之道也. 요임금이 순을 대접한 방식을 한번 생각해보라! 자기 친아들 아홉 명이 다 그에게로 가서 섬기게 하였고,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으며, 또 백관(百官)ㆍ우양(牛羊)ㆍ창름(倉廩)을 구비케 하여 순(舜)이 농사짓는 그 상황에서 도와드리도록 하였다【이 표현은 이미 5a-1에 보였다】. 그러고나서는 그가 현자로서 성장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군말없이 그를 발탁하여 가장 높은 섭정의 상위(上位)에 앉혔다. 이것이야말로 군자를 양하는 모범이요, 왕공(王公)된 자가 현자(賢者)를 존(尊)하는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堯之於舜也, 使其子九男事之, 二女女焉, 百官牛羊倉廩備, 以養舜於畎畝之中, 後擧而加諸上位. 故曰: “王公之尊賢者也.” |
본 장은 비교적 애매한 구석이 없이 맹자와 만장의 논의가 정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을 기르려면 그 사람이 귀찮게 느끼지 않는 가장 편한 방법으로, 형식적 허세나 번문욕례의 구차함이 없이 보이지 않게 도와주어야 한다. 항상 형식이나 허세나 권위가 앞서면 그런 틀 속에서 자라난 인간은 결국 속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앞서 ‘우(友)’나 ‘교제’의 이야기에서도 맹자가 계속 강조한 것은 권력자들이 ‘존현(尊賢)’한다고 하면서 자기 헛폼만 잡고, 실제로 그 현인으 로 하여금 그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실제적 장은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자가 요ㆍ순의 선양관계를 말하는 것도 단순한 선양(권력의 이야)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기르는 방식의 진실한 과정(Process)에 그 이데아 티푸스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민들과 동고동락하기 위하여 천위(天位)ㆍ천직(天職)ㆍ천록(天祿)을 공유하는 ‘위대한 발탁’이 없이는 왕도의 실현을 위한 비약적 계기는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 장에서 맹자가 외롭게 외치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선조가 두 덕수이씨德水李氏를 대한 자세를 살펴보면 잘 이해가 간다. 선조(宣祖)가 덕수이씨(德水李氏)를 대한 자세를 살펴보면 잘 이해가 간다. 선조(宣祖)는 이율곡과 이순신을 모두 자기 삶에 있어서의 경쟁자로 의식하고 임금다웁게 그들의 재량과 대의를 위한 갈망이 펼칠 수 있는 진정한 작위를 주지 않았다. 생색은 다 내면서도, 왕으로서의 너그러움이 부족했다. 율곡도 기껏해야 판서 자리에서 뺑뺑이 돌렸을 뿐, 그의 경륜과 포부에 제한을 가했다. 요임금이 순을 대하는 자세와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맹자가 추구한 이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정치에 있어서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우리의 천박한 민주제도에 비한다면 중국의 적우제(積憂制)적인 권력승계방식은 보다 맹자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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