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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임금이 현인을 만나는 방법
5b-7. 만장이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혹은 선생님과 같은 자유로운 선비가) 제후를 알현하러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萬章曰: “敢問不見諸侯, 何義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직 없이 성안의 동리에서 살고 있는 선 비를 시정지신(市井之臣)【성안의 길이 대개 정자(井字) 모양으로 사각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 말하고, 성밖의 초야에서 살고 있는 선비를 초망지신(草莽之臣)【‘망(莽)’도 풀 초(草)와 같은 뜻】이라 말하는데, 이들이 모두 서인(庶人, 평민)이다. 서인이라면 예물을 싸들고 가서 군신관계를 맺지 않은 이상, 공연히 제후를 알현하러 가지는 않는 것이 예에 합당한 것이다【‘전질(傳質)’의 ‘전(傅)’은 누구를 통하여 전한다. 바친다의 뜻이고, ‘질(質)’은 ‘지(贄)’와 같다】.” 孟子曰: “在國曰市井之臣, 在野曰草莽之臣, 皆謂庶人. 庶人不傳質爲臣, 不敢見於諸侯, 禮也.” 만장이 말하였다: “서인(庶人)은 소집하여 노역을 시키 국군(國君)이면 나아가 노역(勞役)에 종사하면서, 군주가 보고 싶다고 부르면, 나아가 알현치 아니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니이까?” 萬章曰: “庶人, 召之役, 則往役; 君欲見之, 召之, 則不往見之, 何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아가 노역에 종사하는 것은 의무이다【여기 ‘의(義)’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의로움(righteousness)’의 뜻이라기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무(duty)’의 뜻이 강하다】. 그런데 나아가 알현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군주가 왜 만나려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너는 군주가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曰: “往役, 義也; 往見, 不義也. 且君之欲見之也, 何爲也哉?” 만장이 말하였다: “만나려 하는 사람이 견문이 넓어 사리를 꿰뚫 고 있기 때문이고, 또 현자이기 때문이겠지요.” 曰: “爲其多聞也, 爲其賢也.” 말씀하시었다: “견문이 넓어 사리에 통달하기 때문이라면, 천자(天子)라도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자라도 스승을 오라 가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제후가 그를 오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또한 그가 현자이기 때문이라면, 나는 여태까지 현자를 보고 싶다고 해서, 그 누구도 현자를 오라고 불렀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曰: “爲其多聞也, 則天子不召師, 而況諸侯乎? 爲其賢也, 則吾未聞欲見賢而召之也. 옛날에 목공(穆公)은 자주 자사(子思)를 뵙기 위하여 자사 있는 곳으로 빈번히 방문하곤 했다. 어느 날 목공은 이와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천승지국(千乘之國)이나 되는 대국의 군주가 자기 신분을 개의치 않고 일개 평민인 사(士)를 벗삼곤 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의 위세를 깔고 뻑시는 목공의 재세에 자사는 기분이 상하여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이런 말이 있소. 제대로된 군주라면 현자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어라! 어찌하여 현자를 친구 취급한단 말, 있을손가!’ 繆公亟見於子思, 曰: 古千乘之國以友士, 何如? 子思不悅, 曰: 古之人有言: 曰事之云乎, 豈曰友之云乎? 자사가 기분 나쁘게 생각한 것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명쾌히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위로 말하자면 너는 군주고, 나는 신하이 다. 어찌 감히 내가 그대와 더불어 친구를 하리오? 그러나 덕으로 말하자면 너는 나를 스승으로서 섬겨야 할 사람이다. 어찌하여 나하고 친구를 하겠다는 거냐?’ 천승의 대군을 거느린 대국의 군주라 할지라도 현자와 벗하는 것이 여의(如意)할 수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함부로 오라 가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子思之不悅也, 豈不曰: 以位, 則子, 君也; 我, 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 則子事我者也. 奚可以與我友? 千乘之君求與之友, 而不可得也, 而況可召與? 옛날에 제경공(齊景公)이 전렵을 나간 적이 있었다【이 이야기는 이미 3b-1에 나왔다】. 이때 그 지역 산림관리인을 장대 끝에 꿩깃털을 꼽은 정(旌) 을 휘둘러서 열심히 불러댔는데, 그는 오질 않았다. 그러자 경공은 화가 나서 그를 죽이려 하였다. 지사(志士)는 절조를 굳게 지키기에 그 시신이 계곡에 뒹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사(勇士)는 의로움을 알기에 그 모가지가 달아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는 이 산림 관리인을 찬양했는데 도대체 어떤 점을 취하신 것일까? 바로 불러도 가지 않았다고 하는 그 점을 높게 평가하신 것이다.” 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만장이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산림관리인을 부를 때는 어떻게 부르는 것이 도에 합당한 것입니까?” 曰: “敢問招虞人何以?” 말씀하시었다: “군주가 산림관리인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피관(皮冠)으로 불러야 예에 합당한 것이다【‘피관(皮冠)’은 사냥시 ‘예관(禮冠)’ 위에다가 먼지나 우설(雨雪)을 막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군주가 서인(庶人)을 부를 때는 장식 이 없는 전이라는 붉은 깃발을 사용하고, 사(士)를 부를 때는 방울을 단 기(旂)라는 쌍룡이 그려진 깃발을 사용하고, 대부(大夫)를 부를 때는 꿩깃털을 꼽은 정(旌)을 사용하는 것이 예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니 대부를 부르는 데 쓰는 정(旌)으로써 산림관리인을 불렀으니, 산림관리인이 죽을지언정 감히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사를 부를 때 써야 정당한 기(旂)라는 깃발로써 서인을 부른다고 해보자! 어느 서인이 감히 나아가려고 하겠는가? 曰: “以皮冠. 庶人以旃, 士以旂, 大夫以旌. 以大夫之招招虞人, 虞人死不敢往. 以士之招招庶人, 庶人豈敢往哉. 서인을 부르는데도 이와 같이 도가 있는 것이어늘, 지금 불현인(不賢人)을 부르는 방법으로 현인(賢人)을 부르려고 한다면 도대체 가능할 수 있는 얘기이겠는가? 현인을 만나고 싶어 하면서 정당한 도리로써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나의 집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걸어 잠그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저 의(義)라는 것은 길과 같은 것이요, 예(禮)라는 것은 문과 같은 것이다.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오직 군자만이 이 문을 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시(詩)【소아 「대동」】도 노래한다: ‘주나라의 도(道)는 숫돌과 같이 평평하고 화살과 같이 곧다. 군자는 이 길을 밟고, 소인 은 두려워 바라만 본다.’【‘소인소시(小人所視)’를 보통은 소인들은 뒤따라간다. 본받는다. 배운다 등등으로 해석하는데 내 해석은 다르다】” 況乎以不賢人之招招賢人乎?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 夫義, 路也; 禮, 門也. 惟君子能由是路, 出入是門也. 『詩』云: ‘周道如底, 其直如矢.’君子所履, 小人所視.” 만장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도 임금이 명을 내려 부르시면, 수레에 말을 매기도 전에 서둘러 외출하셨다고 들었는데【『논어(論語)』 10-13D】, 그렇다면 공자도 도에 어긋나는 사람이겠네요?” 萬章曰: “孔子, 君命召, 不俟駕而行. 然則孔子非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니다. 사리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당 시 공자는 벼슬을 하여 관직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관(官)의 소명에 따라 부르면 즉각 나가야 하는 것이다.” 曰: “孔子當仕有官職, 而以其官召之也.” |
이 장 역시 맹자의 기개가 여실히 드러나 있고, 또 논리의 전개가 구김살이 없다. 처음에는 마치 서인 즉 평민은 자격이 없어서 군주를 알현할 수 없는 것처럼, 마치 그 비천함이 강조되어 있는 듯이 말을 꺼내다가, 오히려 그 평민의 무관직의 자유로움을 강조하면서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모두 깔아뭉개는 맹자의 배포는 그가 평소 주장하는 ‘소불소지신(所不召之臣)’의 신념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언어가 때로 혼동스럽기도 하지만, 서인은 신이 아니라고 하는 맹자의 철학이 배어있다. 즉 군신관계는 오로지 관직을 지니고 봉록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서인은 군신관계로부 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 대해서도 신하와는 다른 형태의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신(臣)’과 ‘민(民)’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인은 지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서럽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자유로운 존재이다. 서인은 이 장점을 살려서 현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인이 되고 견문이 넓어 사리에 통달하는 자가 되면 임금도 오라 가라 할 수 없는 당당한 대장부(大丈夫)가 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의 요체이다. 문화의 역량으로 정치적 권위를 압도할 수 있다는 사상이 맹자에게는 배어있다. 조선의 젊은이들이여! 맹자의 대장부 기질을 배우자! 그리고 권력에 아부하는 치사한 인간이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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