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이란 시간에 왕소군과 의순공주를 담아내다
순발력 테스트식으로 2분 만의 시간 동안에 홍석기가 짓게 된 시가 바로 『소화시평』 권하 85번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라 가지 않는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전구(轉句)는 기구와 승구에서 전개한 시상을 완전히 뒤바꾸며 환기를 시키고 결구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결구의 내용을 강화하기에 위해 1~3구까지 감정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래서 한 구 한 구 읽을 때마다 깊은 울분과 회한이 짙게 느껴지며 결구에 이르고 보면 그 감정이 제대로 폭발되는 것이다.
千秋哀怨不堪聞 | 천추토록 애절한 원망 차마 듣질 못하겠는데, |
落月蒼蒼萬壑雲 | 지는 달이 희끄무레한데다 온 골짜기엔 구름까지 꼈네. |
莫向樽前彈一曲 | 술잔 앞을 향하여 한 곡조도 타지 마시라. |
東方亦有漢昭君 | 동방에도 또한 한나라 왕소군이 있으니. |
1구에선 ‘달밤에 비파소리를 듣고[月夜聞琵琶]’라는 제목을 그대로 받아 거문고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감정은 그대로 드러난다. 작년 1월에 제주도에 가서 이중섭 미술관에 갔었을 때 그의 작품을 보고 꺼이꺼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았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의 감정 속에 어떤 울분 같은 게 있었고 그게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터져 나온 것이다. 그처럼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즐거울 땐 아주 밝고도 경쾌한 음악이 귀에 들려와 기쁨을 배가 시키지만, 슬플 땐 우울한 노래가 귀에 들려와 울분을 한껏 고양시킨다. 그러니 음악이야말로 자기 감정의 정확한 외재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당시에 홍석기의 심정도 한껏 울분에 차 있었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렇기에 거문고 소리 처량하여 듣질 못하겠다고 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2구에선 그런 심리 상태는 그대로 자연환경에 투사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할 땐, 울분에 쌓여 있을 땐 세상조차 환해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울적해 있을 땐 해 뜬 날조차 ‘시린 잿빛하늘’로 보이게 된다. 더욱이 이때엔 하늘이 달이 옅은 구름에 가려졌는지 희끄무레한데도 주위의 골짜기에선 안개 비스무레한 것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나 보다. 이쯤 되면 정말로 이 순간은 절망스런 내 마음을 그대로 광경이 표현해줬다고 할 만하다. 무에 얼마나 이 날 밤이 그리도 절망스러웠겠냐만은 시인의 감정은 배경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한껏 서글픈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감정 상태이기에 3구에선 명령하듯 ‘한 곡조도 타지 말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땐 어떤 곡조를 들어도 우울한 심사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아예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만 진행되었다면 ‘도대체 홍석기는 무엇이 그리도 울화통이 치밀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그리고 그건 자기의 개인사와 관계되어 있나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답을 홍석기는 4구에서 친절하게 해주고 있다. 그건 바로 한나라의 왕소군 같은 사람이 지금 조선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소군은 전한시대 효원제(孝元帝) 후궁으로 모연수라는 화가에게 뇌물을 쓰지 않아 예쁜 미모를 황제에게 알릴 길이 없었으며 왕비로 삼을 여자를 보내달라고 하자 보낸 사람이다. 왕소군은 흉노족의 왕비가 되어 비파를 타며 함께 온 한족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그곳에서 존경을 받다가 죽었다고 한다. 물론 그곳에서의 대우는 한나라에 있을 때보다 좋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고향을 등져야 했던 울분은 비파소리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홍석기가 비파소리 듣기가 버겁다고 말하는 표현에선 이미 왕소군의 일화가 숨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이 당시 조선의 의순공주는 청나라 왕 도르곤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통해 치욕적인 패배를 했던 조선왕실에선 청나라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들의 명령은 거부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청나라와 조선은 군신관계로 새롭게 관계가 정의되면서 의순공주도 어쩔 수 없이 청나라의 요청에 의해 조선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2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비파소리 - 왕소군 이야기 - 의순공주의 일화’를 28글자에 오롯이 담아냈으니 홍석기의 순발력과 시를 짓는 재능이 어땠을 거라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때 홍석기의 마음엔 의순공주의 일화를 들 정도로 기쁜 심사보다 울적한 심사가 강했다는 것도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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