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종이 잘난 체를 하는 방법
『소화시평』 권하 90번은 김석주와 자신이 친한 관계였으며 김석주의 문장을 짓는 자질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에 관해선 자신을 칭찬했었다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그러면서 홍만종은 “아마도 사백은 사와 부에는 뛰어나지만 느지막이 시를 썼기 때문에 이런 지나친 허여함이 있었던 것이리라[蓋斯伯工於詞賦, 晩業於詩, 故有此過許].”라고 김석주가 자신을 칭찬한 이유를 대고 있다.
이런 구절에서 드러나는 심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이 시를 잘 짓는다는 것을 자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케스트를 통해 유명해진 말 중에 ‘깔때기’라는 말이 있다. 그건 어떤 주제의 말을 하던지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잘난 척할 수 있는 주제로 빨아들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 주제를 그대로 자신의 잘난 점을 얘기하는 것으로 받으면 장난스레 “어디서 깔때기를 대세요.”라는 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위의 구절에선 홍만종이 김석주의 장점을 이야기하다가 갑작스레 방향을 전환하여 자신에 대한 깔때기를 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깔대기에 자신도 좀 너무하다 싶었나 보다. 그러니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를 대며 무마하는 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그래서 둘째 심성은 겸손의 마음이다. 김석주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추켜세운 이유는 문장 짓는 재주가 특출 난 사람임에도 그게 시가 아닌 사(詞)와 부(賦)에 한정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인 詩에 있어선 자신을 지나치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학에서 정의적 특성을 평가할 때 문제점으로 ‘대비의 착오’라는 것이 있다. 그건 객관적인 시험에 의해 평가하는 것이 아닌, 면접이나 관찰을 통해 누군가를 평가할 때 자신이 가지지 못한 특성이 상대방에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면 느긋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을 좋게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처럼 김석주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인 시(詩)를 짓는 분야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홍만종을 좋게 평가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김석주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홍만종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이라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건 곧 갑자기 등장한 자신의 깔때기에 대해 그대로 어물쩍 넘어갈 경우, ‘뭐야 결국 자기 자랑이잖아’라는 혐의를 벗기 어려웠기에 애써 부정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거만해 보이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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