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의 귀정문적(龜亭聞笛)시가 좋은 이유
斷橋平楚夕陽低 | 끊어진 다리, 저편 평평한 들판에 석양이 내려앉고 |
政是前山宿鳥棲 | 앞 숲으론 잠 잘 새가 깃드네. |
隔水何人三弄笛 | 건너편 강에서 어떤 사람이 「매화삼롱(梅花三弄)」 부는데, |
梅花落盡故城西 | 매화는 고성 저편 모두 다 저버렸네. |
『소화시평』 권하 84번의 두 번째 시는 읽고 있으면 그 상황이 절로 그려지는 시다.
1구에선 귀정에 올라 보인 광경을 서술하고 있다. 귀정이 어느 곳에 있는 정자인 줄은 모르겠지만 1구에 묘사된 정황을 통해 평평한 들판의 우뚝 솟은 곳에 있는 정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끊어진 다리가 보이고 그곳 근처엔 평평한 들판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석양이 질 때라 들판엔 석양빛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이 광경만으로도 마치 황홀한 분위기가 절로 연출된다.
그런 정적인 분위기를 질투라도 했듯이 2구에선 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앞 숲으로 날아가는 새를 등장시킨 것이다. 1구의 정적 이미지와 2구의 동적 이미지는 그렇게 하나로 어우러지며 이곳이 곧 신선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세계임을 환기시켜주는 것이다.
3구에선 시적 전환이 일어난다. 시각에만 머물던 감각을 청각으로 옮겨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귀정 근처에 강 건너편에서 누군가 젓대를 불어대고 있다. 어떤 곡조인지 분명하진 않았겠지만 김득신은 그 가락을 ‘매화삼롱(梅花三弄)’으로 들었다. 그건 서리와 이슬에서 꿋꿋이 펴 있는 매화의 절개를 칭송한 노래다. 그만큼 매화를 닮아 굳은 절개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곡이란 소리다. 여기까지 읽으면 김득신이 하고 많은 가락 중에 ‘매화삼롱(梅花三弄)’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데엔 자기도 절개를 지키겠다는 각오처럼 읽혀지긴 한다.
하지만 재밌게도 4구에선 이런 기대를 한 순간에 비웃어주고 있다. 3구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가려면 당연히 4구에선 이곳 어딘가에 피어 있을 매화를 얘기하거나 자신의 다짐을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질 않은 것이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돌아와 마치 3구의 내용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 저편의 매화는 모두 졌는데, 웬 「매화삼롱(梅花三弄)」을 부는가’라고 얘기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두 편의 시 모두 나름의 운치가 확실히 있다. 우리가 읽기엔 그 상황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기에 둘 다 당시풍의 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홍만종은 이 두 편의 시를 보며 첫 번째 시보다 두 번째 시가 더 당풍에 가깝다고 평을 하고 있다. 왜 이런 평을 했는지 지금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교수님은 자신의 생각임을 전제하며 해설을 해줬다.
첫째로, 첫 번째 시를 송시로 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김득신이 눈앞에 보인 진실을 말한 게 아니라, 어떤 이치를 전하기 위해 이 시를 지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풍랑에 배를 돌린다’는 것은 직유가 아니라, 은유로 본다면 그건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한 사람을 표현한 것이 된다. 그러니 현실에 사는 사람치고 힘겨운 상황에 놓이지 않은 이는 없기 때문에 첫 번째 시에서 마치 자신이 처한 난처한 상황이 느껴졌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유행하게 됐을 거라는 설명이다. 첫 번째 시를 송시로 본다면, 두 번째 시는 당연히 당시가 되어 홍만종의 비평은 쉽게 이해가 된다.
둘째로, 첫 번째 시를 만당풍의 시로 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당 시인의 대표주자인 두보의 「악양루에 올라[登岳陽樓]」와 만당 시인의 대표주자인 최치원의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題伽倻山讀書堂]」이란 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두보의 시에선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고 지금의 이 상황을 슬퍼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만 마지막 구절에선 나라 걱정을 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그건 곧 자신의 감정에만 빠지지 않고 그걸 사회적 아픔으로까지 승화하여 표현함으로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감정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에 반해 최치원의 시는 1구부터 4구까지 개인적인 슬픔과 격정에만 침잠해 들어갈 뿐 감정을 승화하거나 확대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 이렇게 성당풍과 만당풍의 시풍을 구별할 수 있다면 김득신이 쓴 첫 번째 시 또한 개인의 정감에만 충실한 만당풍의 시라는 걸 알아챘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당풍에 좀 더 가까운 두 번째 시를 홍만종은 좋게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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