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에 신선 부르는 정자에서 지은 시를 차운하며
십육야 환선정이수 차운(十六夜 喚仙亭二首 次韻)
노수신(盧守愼)
二八初秋夜 三千弱水前
이팔초추야 삼천약수전
昇平好樓閣 宇宙幾神仙
승평호루각 우주기신선
曲檻淸風度 長空素月懸
곡함청풍도 장공소월현
愀然發大嘯 孤鶴過蹁躚
초연발대소 고학과편선
高桂長橫漢 圓蟾不沒河
고계장횡한 원섬불몰하
半空初下露 萬里摠無波
반공초하로 만리총무파
白髮當樓滿 丹心此夜多
백발당루만 단심차야다
忘言不須辨 自樂豈由他
망언불수변 자락기유타 『穌齋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二八初秋夜 三千弱水前 | 16일 초가을 밤에 3천리 약한 물【약수는 본디 서해(西海) 가운데 위치한 선경(仙境), 즉 봉린주(鳳麟洲)를 둘러싸고 있다는 강(江) 이름인데, 이 강은 기러기 털도 가라앉는다고 하여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하여 여기서는 남해(南海)를 약수에 빗대서 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금산묘고대(金山妙高臺)」 시에 의하면 “봉래산은 이르러 갈 수 없고말고, 약수 삼만 리가 가로막고 있는걸[蓬萊不可到, 弱水三萬里].”이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26】이 앞에 있네. |
昇平好樓閣 宇宙幾神仙 | 태평스레 누각이 좋아 우주가 거의 신선세상이네. |
曲檻淸風度 長空素月懸 | 굽은 난간에 맑은 바람 지나고 높은 창공에 흰 달 매달려 있네. |
愀然發大嘯 孤鶴過蹁躚 | 근심스레 큰 휘파람 부르니 외로운 학이 휘돌며[蹁躚] 지나네【소식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의하면, 임술년(1082) 10월 보름 달 밝은 밤에 객(客)과 함께 적벽(赤壁) 아래서 선유(船遊)를 하노라니, 한밤중 사방이 적막한 때에 마침 한 마리 학(鶴)이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날아와 끼륵끼륵 울면서 소식의 선유하는 배를 스쳐서 서쪽으로 날아갔는데, 이윽고 객은 가고, 소식은 잠이 들었던바, 꿈에 한 도사(道士)가 깃으로 지은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임고정(臨皐亭) 밑을 지나다가 소식에게 읍(揖)을 하며 말하기를 “적벽의 놀이가 즐거웠소?[赤壁之遊樂乎?]” 하므로, 그의 성명을 물어보니, 그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는지라, 이때 소식이 말하기를 “아, 슬프도다. 나는 알겠도다. 지난밤에 울면서 나를 스쳐 날아간 그가 바로 그대가 아닌가[嗚呼噫嘻! 我知之矣. 疇昔之夜, 飛鳴而過我者, 非子也耶?]”라고 하자, 그 도사는 고개를 돌리며 웃었고, 소식 또한 놀라 잠에서 깨어 문을 열고 내다보니,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
高桂長橫漢 圓蟾不沒河 | 높은 계수나무가 긴 은하수를 비꼈고 둥근 두꺼비는 은하에 빠지지 않았네【두보의 「월(月)」 시에 의하면 “천상에 가을 절기가 다가오니, 인간에 달빛이 맑기도 하여라. 은하에 들어가도 두꺼비는 빠지지 않고, 약을 찧는 토끼는 장생불사하누나[天上秋期近, 人間月影淸. 入河蟾不沒, 搗藥兔長生].”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5】. |
半空初下露 萬里摠無波 | 반 허공에 막 이슬 떨어지고 만리엔 모두 파도 없어라. |
白髮當樓滿 丹心此夜多 | 흰 머리는 마땅히 누각에 가득하고【두보의 「월원(月圓)」 시에 의하면 “외로운 달빛은 누각에 당하여 가득하고, 찬 강물은 밤 사립을 움직이네[孤月當樓滿, 寒江動夜扉].”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7】 붉은 마음이 오늘밤엔 많다네. |
忘言不須辨 自樂豈由他 | 말을 잊고 변론할 게 없이 스스로 즐길 것이지 어찌 다른 것 말미암으랴? 『穌齋先生文集』 卷之一 |
비평
我東中古詩, 稱湖蘇芝, 鄭湖陰盧蘇齋黃芝川也. 三家中, 蘇齋專力學杜, 爲最. 農巖謂 “此老十九年在海中, 獨學得杜詩, 如此好耳.” 海中者, 珍島也. 蘇齋謫珍島時, 有詩曰 “天地之東國以南 沃州城下數間菴 有難赦罪難醫病 爲不忠臣不孝男 客日三千四百幸 生年乙亥丙辰慚 汝盧守愼如無死 報得君恩底事堪” 愚嘗疑, 此亦爲學杜飴得者乎, 杜詩何曾有此句法? 有“曲檻淸風度 長空素月懸”, “雲沙目斷無人問 倚徧津樓八九橫” 似之耳. -『東詩話』 卷2
해설
이 시는 8월 16일 신선을 부르는 정자(亭子)인 환선정에 올라 지은 제영시(題詠詩)이다. 노수신은 오언율시를 아주 잘 지었는데, 위의 시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외에도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叟詩話)』 32번에는 노수신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의 시(詩)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이행(李荇)이 시작을 열어 눌재(訥齋) 박상(朴祥)ㆍ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ㆍ충암(冲庵) 김정(金淨)ㆍ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란히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조선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노수신(盧守愼)은 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은 당(唐)을 본받았는데 이달(李達)이 그 흐름을 밝혔다.
우리 망형(亡兄)의 가행(歌行)은 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韠)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李荇)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니, 아! 장하다[我朝詩, 至中廟朝大成, 以容齋相倡始. 而朴訥齋祥ㆍ申企齋光漢ㆍ金冲庵淨ㆍ鄭湖陰士龍, 竝生一世. 炳烺鏗鏘, 足稱千古也. 我朝詩, 至宣廟朝大備. 盧蘇齋得杜法, 而黃芝川代興, 崔ㆍ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吾亡兄歌行似太白, 姊氏詩恰入盛唐. 其後權汝章晩出, 力追前賢, 可與容齋相肩隨之, 猗歟盛哉].”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343~34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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