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과거를 회상할 이유를 알려준 이색의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과거를 회상할 이유를 알려준 이색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4:46
728x90
반응형

과거를 회상할 이유를 알려준 이색의 시

 

 

소화시평권하 64에서 네 번째로 초대받은 작가는 목은 이색이다.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대표적인 작가로 고려 말기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고려 왕들을 위해 한 몸 불살라 최선을 다했고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었다. 그는 고려 뿐 아니라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며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눈 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인용된 억산중(憶山中)이란 시는 확 와 닿는다. 그건 마치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중년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막상 젊을 때 꿈꿨던 대로 살고 있는지 회한도 들고, 그때 친구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수없이 나눴던 이야기들이 그리워지는 구만이라 말하는 넋두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구 할 것 없이 우린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기에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버티듯, 때론 삶을 누리는 듯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 있고 그에 따라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야속해서, 정처 없이 사라져 버린 젊음이 한스러워질 때가 있다. 바로 이 순간 이색이 지은 이 시와 같은 정감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가 어느 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중년 이후에 지어졌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한 게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또한 이 시에서도 사찰을 노래한 시들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정조도 느껴진다. 그건 바로 사찰은 세상일의 번잡함이 사라져 맑은 정취가 있는 곳으로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노스탤지어로 묘사된다. 그러니 언제든 사찰로 들어가 맑은 정취를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은 현실의 티끌에 한 없이 뒹굴고 있는 여리디 여린 존재로 한 없이 그리워만 한다는 점이 부각되어 있다. 바로 이 시에서도 일반적인 정조가 들어 있는 것이다.

 

 

回首山中一惘然 산 중으로 고개 돌려보니 잠시 아득하더니만
分明眼底記當年 눈앞인 듯 그때 일 기억나네.
風淸竹院逢僧話 바람 맑은 대나무 심긴 정원서 스님 만나 말을 나눴고
草軟陽坡共鹿眠 풀 아들한 양지에선 사슴이랑 함께 잠들었지.
吹徹紫簫秋景遠 붉은색 퉁소 다 불자 가을 경치 아득해졌고
讀殘黃卷午陰遷 누런 책 다 읽자 오후의 그림자 옮겨갔었네.
如今眯目紅塵暗 지금은 눈 못 뜬 채 홍진이 아득해서
方寸無端百慮煎 온갖 생각으로 끝없이 마음을 졸이네. 牧隱詩藁卷之八

 

수련(首聯)에선 마치 영화에서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리는 듯한 장면으로 서술되어 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뜬금없고 어이없는 플래시백은 부산행이란 영화에서 공유가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기 직전에 딸이 태어날 당시를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굳이 넣음으로 공유 또한 늘 딸을 사랑하는 아빠였지만 그저 현실에 치이느라 딸에게도 무관심해졌고 무심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얘기해주지만 오히려 극의 흐름을 깨버려 실소가 나오게 했으니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 시의 수련에선 매우 깔끔하게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색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공무로 바쁜 와중이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한 걸음 벗어나 시선을 돌려 산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산과 관련된 예전 일이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바로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이 산 속에서 있었던 옛날의 기억을 묘사해낸다. 함련에선 대나무 우거진 정원에서 스님과 만나 세상과는 관련 없는 인생에 대한, 또는 삶에 대한, 또는 불교의 해탈에 대한 이야기를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눴으며 그러다 볕이 좋으면 그대로 자연 속에 누워 잠들었던 기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기억의 묘사엔 현실적인 이해관계, 이해타산의 아귀다툼, 삶의 치열함 같은 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철저하게 현실은 배제한 채 노스탤지어로서 과거의 기억을 묘사해내고 있다. 이걸 과거에 대한 미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생각해보자 누구나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과거에 천진난만했던, 그리고 자신감에 차 있던, 그래서 밝은 달을 보면서도 즐거워했던 과거의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볼 때 마음이 울리는 것이고 그때 키팅 선생님이 말하는 현재를 즐기라(Carpe Diem)”이란 말에 심장에 요동치는 게 아니겠는가. 이 구절에 대해 홍만종은 일찍이 무성하고 넉넉함에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未嘗不歎其穠贍].’라고 평했다.

 

경련(頸聯)에서도 이런 회상은 이어져 아득한 가을 경치 속에서 퉁소를 불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모습을, 볕 좋던 오후에 책을 읽다가 서서히 날이 저물어갔던 추억을 그려내고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참 여유롭고 좋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그렇다면 왜 이색은 바로 이 순간에 산을 돌아보며 갑작스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미련(尾聯)에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그건 바로 지금의 자기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이고 현실에 대한 못마땅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지금 홍진이 가득한 세상에서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뒹굴고 있으며, 온갖 공무와 고려 말기의 혼란스런 시대 상황으로 맘을 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쪄들어갈 때 누구나 무지개 너머의 파란 나라를 그리듯, 이생의 팍팍함보다 저생의 천국을 희구하듯 이색은 함련과 경련에 묘사된 과거를 그리며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회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오늘 버틸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일상이 후지다고 느껴지는 그때 우리 또한 과거를 회상하며 순수했던 자신에게,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했던 그때에게 대화를 걸어볼 일이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