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정감으로도, 시원한 정감으로도 읽히는 기이한 김종직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두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김종직이다. 이미 권상 62번에서 그의 시 세계와 왜 그런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본 적이 있으니, 그 내용과 함께 이번 편에 소개된 시를 본다면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차청심루운(次淸心樓韻)」이라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청심루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주에 있는 누각으로 한양에서 머물던 그가 선산부사로 가기 위해 한양을 떠나며 여주 청심루에 들러 그곳 누각의 주인을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그때의 누각에 오른 소감을 적은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쓰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관수루 제영시(觀水樓 題詠詩)」를 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維舟茅舍棘籬端 | 울타리 끝의 띠집 가시에, 배를 묶어뒀으니 |
魚鳥何曾識我顔 | 새와 물고기가 어찌 일찍이 나의 얼굴 알랴. |
病後猶能撰杖履 | 병 앓고 난 뒤라 그래도 지팡이와 짚신을 갖출 수 있고 |
謫來纔得賞江山 | 폄적(貶謫)되어서야 겨우 강산을 즐길 수 있구나. |
十年世事孤吟裏 | 10년의 세상일은 홀로 읊조리는 속에 있고, |
八月秋容亂樹間 | 8월의 가을모습은 어지러운 숲 사이에 있네. |
一霎倚欄仍北望 | 잠깐 동안 난간에 기댔다가 임금 생각하고 있자니, |
篙師催載不敎閑 | 뱃사공이 어서 타라고 가만두질 않는 구나. 『佔畢齋集』 卷之十二 |
수련에선 청심루로 내려가던 당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구에선 청심루에 오르기 위해 배를 묶어뒀다는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2구에선 문맥에 흐르는 정조가 확연히 바뀐다. 새와 물고기와 같이 어느 곳에서든 흔히 볼 수 있던 것들조차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슬픈 정조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이곳에 오기 이전에 김종직이 유배를 갔기 때문에 세상에 감춰져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자신이 은둔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했을 거란 얘기를 했었다. 둘 중에 어떤 사연일지라도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으니 2구에선 약간의 서글픈 정도를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서글픈 정조는 함련과 경련에선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함련과 경련을 볼 때 2구에서 얘기한 서글픈 정도를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 볼지, 그런 정조를 얘기한 후에 ‘그래도 지금은 다시 관직을 맡아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됐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그런 마음으로 청심루에 올라서 세상을 대하니 좋구나’라는 반전된 정조로 볼지에 따라 시의 정감은 확연히 달라진다.
함련에선 ‘병이 그나마 나았기에 행장을 갖출 수 있었고 이렇게 좌천이 되어서야 겨우 강산을 즐길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이야기를 했다. 슬픈 정조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자신의 처지를 여전히 비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인생이 곁 잡을 수 없게 꼬여서야 겨우 떠날 수가 있었고 그제야 겨우 강산을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퇴임하고 봉화로 돌아가 처음 기차에서 내렸을 때 “야~ 좋다!”라고 말한 것처럼 시원한 기분 그대로 읊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경련에서도 어느 감정의 발로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슬픈 정조로 볼 경우 10년의 다사다난한 일은 이렇게 읊조리는 속에 있고 8월 가을의 모습은 어지러운 산 속에 있듯, 나의 인생도 어지러운 인생이었다는 회고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정조로 읽을 경우 10년의 주마등같던 세월이 이곳에 올라보니 한 눈에 흭 하고 지나가듯 눈앞에 선히 보이고, 8월의 모습도 이곳에 올라서 보이는 숲속의 경치에 고스란히 있다는 말이 된다.
미련에서도 두 가지 감정에 따라 보는 시각은 확연히 달라진다. 슬픈 정조로 볼 경우엔 막상 한양을 떠나 주상 곁을 멀리하고 보니 주상이 그리워져 북쪽을 바라보게 되어 정감에 빠져들려던 찰나에 뱃사공은 어서 갑시다라고 재촉하니 말이다. 자신이 슬픈 정조에 빠져들어 한없이 서글퍼지려 하고 있을 때 뱃사공은 그런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반대되는 정서로 읽을 경우엔 미감이 확 달라진다. 애초에 자신이 선산부사로 가겠다고 주상께 적극적으로 청한 덕분에 떠나게 됐으니 ‘북쪽을 바라본다’는 말은 으레 조선시대 문인이면 한양을 떠날 쓰는 관습적인 표현일 뿐 임금에 대한 그리움까진 담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관습적인 표현을 쓰며 7구를 써놓고선 8구에선 뱃사공이 재촉한다는 말을 썼으니 관습적인 표현마저 비틀었다고 할 수도 있다.
위에서 쭉 살펴봤듯이 이 시를 슬픈 정감으로 썼느냐, 상쾌한 정감으로 썼느냐는 읽는 사람의 감정과 깊이 맞닿아 있고 분명한 건 어느 쪽으로 감상을 할지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시를 다 읽고 나서 교수님은 “이 시를 읽어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해 나는 “청심루에 올라 시원한 느낌이 가득 느껴집니다.”라고 대답했고 현종이는 “서글픈 느낌이 가득 듭니다. ‘오히려[猶]’, ‘겨우[纔]’, ‘외로운 읊조림[孤吟]’, ‘어지러운 숲[亂樹]’과 같은 시어를 보면 서글픈 감정이 더욱 확연히 느껴집니다.”라고 말했다. 교수님도 이 시를 슬픈 정감을 담아 썼으며 수미상관(首尾相關)이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련의 구조를 보면 자신은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는 마음이 한껏 담겨져 있는데 뱃사공은 그런 자신을 몰라주고 재촉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시에 대해 홍만종의 평가는 ‘일찍이 상쾌하고 명랑함에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未嘗不歎其爽朗].’라고 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건 곧 나와 비슷한 정감으로 홍만종도 이 시를 읽고 비평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건 곧 좋은 영화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볼 때마다 새로운 메시지가 읽히고 그때 감정이 배가 되듯이 김종직의 이 시도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읽힐 소지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덧붙여 시엔 하나의 해석만이 있지 않고 자신이 느낀 그대로 감상하며 그걸 풀어낼 수 있으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이란 교사가 시를 이해하는 척도를 다루고 있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했던 장면이 겹치며, 고(故) 신영복 선생이 “시는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상투적인 방식을 전복하고, 상투적인 언어를 전복하고, 상투적인 사유를 전복하고, 가능하다면 세계를 전복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카타콤이며 그 조직 강령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담론』, 26쪽)”라고 했던 말이 겹친다. 시를 분석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정감 그대로 읽어보고 감상해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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