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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여행을 담는 한시의 품격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여행을 담는 한시의 품격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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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담는 한시의 품격

 

 

소화시평권하 64의 작가는 이제현이다. 이제현이 지은 팔월십칠일 방주향아미산(八月十七日 放舟向峨眉山)을 보기 위해선 그가 왜 원나라의 아미산에 갔는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15살이던 1301년에 과거에 급제했고 당시의 유력자인 권부(權溥)의 사위가 되었다. 그만큼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잘 나가며 여러 벼슬을 맡다가 28살이던 1314년에 충선왕으로 부름을 받아 원나라 연경(燕京)의 만권당(萬卷堂)에 머물게 되었고 원나라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30살이던 1316년에 충선왕을 대신하여 아미산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3개월 동안 서촉(西蜀) 지방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시의 배경인 아미산은 이때 가게 된 거라는 걸 알 수가 있고 그 이유가 단순히 놀기 위해서 유람을 떠난 것이 아닌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출장의 성격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시에 대한 감상은 과연 공적 업무를 위해 출장을 떠났음에도 얼마나 그걸 업무적인 성격 외에 다른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으냐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출장을 떠나 지은 시를 그저 출장의 영역으로 다룰 경우 아미산에 제사 지내기 위해 오니 몸은 피곤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구나라는 정형화된 워크홀릭조의 이야기만 쓰여지게 될 테니 말이다. 그것 굳이 시로 남기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들을 수 있는 개체 식별 불가능한뻔하디 뻔한 말이 될 뿐이고 당연하지만 문학적인 가치는 제로에 가까워지게 된다. 과연 공무로 떠난 아미산 여행을 이제현은 한시라는 작품에 녹여낼 것이며, 어떤 메시지를 담아낼 것인가?

 

 

錦江江上白雲秋 가을 금강 강 머리로 흰 구름 피었는데
唱徹驪駒下酒樓 여구곡(驪駒曲)다 부르고 주루를 내려오니,
一片紅旂風閃閃 한 조각의 붉은 기 바람 따라 펄럭이고
數聲柔櫓水悠悠 몇 가락 뱃노래 강물 따라 아득하네.
雨催寒犢歸漁店 비에 쫓긴 찬 송아지 어점으로 돌아가고
波送輕鷗近客舟 파도에 뜬 가벼운 갈매기는 객주로 다가오니,
孰謂書生多不偶 누가 서생이 대부분 불우하다고 말했는가.
每因王事飽淸遊 매번 왕의 일로 인해 맑은 유람 실컷 하는데. 益齋亂稿卷第一

 

수련(首聯)에선 시를 지을 당시의 분위기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때 계절은 가을이었고 강 저편에선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때 이제현은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이별가여구곡(驪駒曲)을 부르며 누각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구절만 보아도 마치 공무를 떠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유람을 떠난 것 같은 한가로움과 운치가 깃들어 있다. 이렇게 퍽이나 주변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때의 여유로운 행동을 묘사한 것만으로도 위에서 얘기한 배경을 모르고 본다면, ‘이제현은 지금 중국에 유람 중이구나하는 감상을 갖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만큼 이제현은 이렇게 착각하도록 이 시를 구성하고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구성은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함련을 보도록 하자. 주루에서 내려오니 한 조각 붉은 깃발이 바람 따라 펄럭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읽으면 그저 한가롭게 주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본 후 내려왔더니 그곳에 설치된 깃발이 나부끼는 정도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로부터 깃발은 어느 곳에나 꽂혀 있는 단순한 시설물은 아니다. 그러니 어렴풋하게나마 붉은 기라는 소재를 통해 이곳이 임금의 업무와 관련 있는 곳이란 걸 짐작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암시만을 살짝 던졌을 뿐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듯, 바로 다음 구절에선 강가에서 울려 퍼지는 뱃노래로 감각을 옮긴다. 펄럭이던 깃발을 보던 시각적 감각은 어느새 뱃노래를 듣는 청감각으로 급히 전환되니 말이다. 뱃노래를 듣는다는 건 역시나 한가로운 운치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깃발을 통해 잠시 공무 중이라는 걸 엿볼 수 있을 듯했지만 이제현은 그걸 자연스럽게 넘기며 유람하는 사람의 심정을 담은 것처럼 묘사해내고 있다.

 

이런 풍조는 경련(頸聯)에선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경련의 묘사는 매우 고민하며 대구를 맞춘 흔적도 보이기 때문에 이 구절을 쓸 당시 이제현이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지 알 수도 있다. 송아지들이 어점으로 돌아오는 걸 보고 이제현은 마치 비를 피하기 위해 몸이 차가워진 송아지들이 어점으로 들이닥치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광경과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고 표현해내는 사이의 괴리를 통해 시적 화자에게 송아지는 단순히 저 멀리 있는 송아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파도에 둥둥 떠 있는 갈매기를 이제현은 파도가 가벼운 갈매기를 내가 타고 가는 배 쪽으로 밀어 보내주는 구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이 바다에 떠있는 갈매기임에도 이제현은 동일시를 하며 물아일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홍만종은 경련에 대해 일찍이 정밀함과 치밀함에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未嘗不歎其精緻].’라고 평했는데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부분이 정밀하고 치밀한지는 느껴질 것이다.

 

수련(首聯)부터 경련(頸聯)까지 읽는 내내 어디서든 공무 수행 중이란 단서를 찾기는 힘들었고 이제현도 전혀 그런 팍팍한 느낌으로 시를 짓지 않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저 유람하는 정서로 이 시를 마무리 지으려는 것일까? 그래서 공무 수행 중임에도 마치 유람하는 것 같이 착각하도록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일까? 바로 이런 오해는 미련(尾聯)에서 확실히 불식시킨다. 완벽하게 시상이 전환되어 지금까지 말한 유람하는 것 같은 정조를 뒤엎기 때문이다. 7구에선 갑자기 서생(書生)’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고 서생=불우하다는 한 쌍의 고정화된 짝말을 끄집어낸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이라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정도로 글을 짓는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고 그건 고려 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서생=불우라는 관념화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에 대해 이제현은 거부를 하고 있다. 그는 매번 왕의 일로 인해 맑은 유람 실컷 하는데[每因王事飽淸遊]’라고 말하며 자신은 불우한 서생이 아님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린 왜 수련(首聯)부터 경련(頸聯)까지 공무 중임을 감추고 마치 유람을 온 것처럼 서술했는지도 확실히 알게 된다. 그건 청유(淸遊)’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전개해나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왕사(王事)’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넣음으로 이 여행이 단순한 유람이 아닌 공무임도 확실히 알 수 있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홍만종은 경련만을 평하며 정치(精緻)’하단 평을 내렸지만 이 시 전체가 매우 정치하게 아구를 맞춰 지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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