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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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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 먼 언덕에 저녁 아지랑이 일어나니 찬 강물에 흰 물결 생기네.
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 정박한 배에 사람은 보이질 않으니, 술을 사러 어부의 집에 들어갔겠지.

 

窅窅日沈夕 蕭蕭風起波 아득한 해가 저녁에 잠기고 쓸쓸한 바람이 물결에서 이네.
遙知泊船處 隔岸有人家 멀리서도 알겠지, 배를 정박한 곳, 강둑 너머엔 인가가 있다는 걸. 孤竹遺稿

 

소화시평권상 106에 두 번째로는 이달의 시(위의 시)최경창의 시(아래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두 시는 모두 같은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그림을 보고 그 상황을 묘사한 시로 제화시(題畫詩)라고 불린다. 그런데 재밌게도 두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재밌다. 때는 해질녘이고 장소는 강가이다. 강가에 배는 매여 있지만 거기엔 사람이 없다. 시선을 쭉 옆으로 훑어보니 민가가 듬성듬성 보인다. 그렇다면 뱃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 사람은 열심히 고기를 잡고서 이제 집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달과 최경창의 시각이 갈린다. 물론 같은 그림을 본 것이 아닐 테니,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지만, 그걸 논외로 놓고 생각해본다면 이달은 술을 사러 어부의 집에 잠시 들른 것으로 보았고 최경창은 아예 자기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아마도 이런 시각의 차이가 생긴 데엔 민가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 어부의 집은 겨우 한 채만 있는 집일 수 있고, 최경창이 묘사한 민가는 꽤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집일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데 홍만종은 이 시에 대해 재밌는 평을 하고 있다. ‘고죽은 인불견(人不見)’이란 세 글자를 쓰지 않았으나 사람이 없다는 뜻은 절로 그 가운데 있으니 최경창의 시가 우뚝하다[孤竹不下人不見三字, 而無人之意, 自在其中, 崔詩爲優].’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식의 평가가 자주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접적인 묘사보단 간접적인 묘사가, 직유보단 은유를 더 높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최경창은 이달과는 달리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어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간접적으로 묘사했지만 이달이 묘사한 상황을 그대로 시에서 볼 수 있으니 그런 평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알 수 있는 사실은 시에선 대상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보단 간접적으로 말하거나 아예 다른 정황을 말함으로 그 대상이 은근히 드러나도록 하는 방식이 더 선호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민 교수는 한시미학산책이란 책에서 그리지 않고 그리기라거나 말하지 않고 말하기와 같은 말을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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