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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형술 한시 특강 -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김형술 한시 특강 -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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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당나라 시를 무작정 모방하는 풍조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복고파. 복고파는 제대로 시를 지으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던 사람들이다.

 

 

 

복고파의 의의와 한계

 

 

이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은 문장은 전한 시대의 것을 따르고, 시는 성당 시대의 것을 따른다[文必秦漢, 詩必盛唐]”라는 구호를 만들어 외쳤다. 이 말을 통해 전 시대와는 두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첫째는 시든 문장이든 천부적인 재능에 따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따라 잘 쓰고 못 쓰고가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좋은 시를 짓고 싶거든 명편들을 열심히 읽고 따라 써보며 노력한다면 그만한 시를 쓸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모범이 될 수 있는 문장은 지금이 아닌 과거에 이미 있기 때문에 그때의 것을 참고하면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론들은 조선 사회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정두경으로, 그는 사람이 비록 뒤늦게 태어났더라도 옛 것을 배우면 고상해지리니, 낮은 수준에서 기어 다닐 필욘 없는 것이다[人雖生晩, 學古則高, 不必匍匐於下乘]. -東溟詩說라고 말하며 지난 시대의 문장 중 좋은 문장만을 골라서 읽어야 하고 송나라 이후의 작품들은 보지 말아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복고파는 문장을 짓는 실력이란 게 천부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고 말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점에선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최고의 작품을 정해놓음으로 그것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모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선 한계가 명확하다. ‘달은 차면 기운다[月滿則虧]’라는 말처럼 한 방향으로 귀결되어 버리면 반동이 생기게 마련이다. 복고가 유행하고 좋은 작품이란 게 확정되어 그것만을 따라 짓게 되면서, 명나라에서든 조선에서든 억압된 욕망은 더욱 꿈틀대기 시작했다. ‘따라하지 않고, 어떤 권위에 기대지 않으며 쓸 수 있는 시라는 것은 과연 뭘까?’하는 논의들이 연달아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무수한 내용들이 한 차례 지나갔다. 이에 따라 형술쌤의 강의도 점점 정점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만큼 강의실의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라 사람들은 그래서 그 다음은 뭘 어쨌다는 것이오?’라는 느낌으로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밤하늘에 뜬 별들이 아닌 109호 강의실을 가득 메운 호기심 가득한 사람의 눈이란 별들이었다.

 

어찌 보면 형술쌤도 바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꺼내고 싶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순간이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오늘 강의의 고갱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의 침묵과 잠시의 눈길이 오고간 후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복고파가 한 시대의 문학풍조를 선도하며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났다.

 

 

 

복고파의 억눌림을 뚫고 분출한 생기발랄한 목소리

 

조선 후기에 이르면 마침내 우리만의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비롯한 미술세계의 화풍 변화만큼이나 문학에서도 우리 것을 담아내기 위한 다채로운 움직임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약용홍세태조선시(朝鮮詩)’진시(眞詩)’를 말하기 시작했고, 문학에서도 이규보가 외친 창신(刱新)’에 버금갈 만한 박지원이 외친 법고이창신 능전이지변(法古而刱新 能典而知變)’ 논의가 문단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관점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면 그전까지 존재하고 있던 뭇 소리들은 더 이상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거나 뒷방 구석으로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주류적인 이야기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일수록 소수자의 목소리엔 그 사회가 감추고 있는 모순이 드러나며, 그들의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그 시대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어느 시대든 주류의 관점을 탐구하는 것 이상으로 감춰진, 사라진 소수자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때 그 시대의 분위기가 더욱 생기발랄하게 느껴지며 사람이 사는 세상의 다종다양한 감정들과 목소리들이 그대로 느껴지니 말이다.

 

그처럼 조선 후기에 불어 닥친 조선시 선언이나 각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새로운 흐름은 주류를 형성하기엔 턱 없이 부족했고, 세력 또한 구축하기에 미미했기에 주류적 관점으론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생각들이 충돌하고 여러 관점들이 살아 있음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다. 일관되지 않은, 맹목적이지 않은, 무개성적이지 않은, 그저 죽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활발발한 생동력으로 살아내는 뭇 생명체들의 아우성이 조선 후기의 문단에 파열음을 내며 등장했다.

 

 

정약용의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라는 말은 이 시기에 농암과 삼연으로 시작된 흐름의 종지부라 할 수 있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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