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서글픈 환경이 스산한 봄으로 남아
1. 김종직(金宗直)의 「화홍겸선제천정차송중 추처관운(和洪兼善濟川亭次宋中 樞處寬韻)」
吹花擘柳半江風 | 강바람이 꽃에 불고 버들개지 쪼개었고, |
檣影搖搖背暮鴻 | 돛대 그림자는 흔들흔들 저물녘 기러기를 등져 있네. |
一片鄕心空倚柱 | 한 조각 고향생각에 부질없이 기둥에 기대니, |
白雲飛度酒船中 | 흰 구름은 술 싣고 가는 배를 지나 날아가네. |
1) 시원한 봄바람이 버들가지 가르게 하는데 한강엔 호화로운 배가 떠있음. 그러나 고향에 가고 싶은 맘에 기생들과 술은 눈에 들어오지 않음.
2) ‘술 실은 배’엔 서거정 같은 권세가가 타 있고 자신은 묵묵히 쳐다볼 뿐임.
3) ‘백운(白雲)’은 청운(靑雲)과 대비되는 은자의 삶을 상징하며,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함.
문학을 겸비한 대학자 | 학문을 겸한 뛰어난 시인 |
좋은 화장품으로 곱게 단장하여 화려함 지향 | 화장기가 전혀 없는 청담함 지향 |
2. 이행(李荇)의 「사월이십육일 서우동궁이어소직사벽(四月二十六日, 書于東宮移御所直舍壁)」
衰年奔走病如期 |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
春興無多不到詩 |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
睡起忽驚花事晩 |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
一番微雨落薔薇 |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
1) 15세기 관각 문인들은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16세기 관각 문학은 잦은 사화로 누릴 수 없게 됨.
2) 이 시는 1523년 종1품 의정부 우찬성에 있을 때 지은 시로 노쇠한 데다 병마까지 겹친 상태에서 쓴 것임.
3) 서거정이나 성현처럼 무료함에 낮잠을 잔 건 같지만, 깨어났을 때 산뜻한 장미가 아닌 져버린 장미만 보인다는 싸늘함이 다름. 낙관적 세계관은 거세되고 인생의 비애가 자리함.
田園蕪沒幾時歸 | 전원이 거칠어졌으니, 어느 때에 돌아갈꼬? |
頭白人間官念微 | 흰머리 난 인간은 벼슬하려는 생각이 적기만 하네. |
寂寞上林春事盡 | 적막한 숲에는 봄 일이 다하였고, |
更看疎雨濕薔薇 | 다시 부슬비가 장미를 적셨다는 걸 보았네. |
1) 나른함과 무료함이 잘 나타남.
2) 대궐의 온갖 꽃들이 지는 모습을 보니,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 봄빛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임.
3) 보슬비에 젖은 채 곱게 핀 장미꽃이 그나마 위안을 줌.
4) 40대의 이행은 진 장미에 파리한 자신의 모습을 포갰지만, 30대의 허균은 싱싱한 장미에 자신을 포갬.
가진 자의 화려한 장미 | 가진 것조차 지겨워져 파리한 장미 |
무소유의 맑은 장미 | 가지려는 의지는 없지만 해맑은 장미 |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