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관아에서 짓다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허균(許筠)
田園蕪沒幾時歸 頭白人間官念微
寂寞上林春事盡 更看疎雨濕薔薇
懕懕晝睡雨來初 一枕薰風殿閣餘
小吏莫催嘗午飯 夢中方食武昌魚 『惺所覆瓿藁』
해석
田園蕪沒幾時歸 전원무몰기시귀 | 전원이 거칠어졌으니, 어느 때에 돌아갈꼬? |
頭白人間官念微 두백인간관념미 | 머리 세니 인간세상 벼슬생각이 옅어지네. |
寂寞上林春事盡 적막상림춘사진 | 적막해라. 상림원에 봄 풍경 끝났지만, |
更看疎雨濕薔薇 갱간소우습장미 | 보슬비가 다시 장미를 적셨구나. |
懕懕晝睡雨來初 염염주수우래초 | 나른한 낮잠은 비 오고 막 |
一枕薰風殿閣餘 일침훈풍전각여 | 베개엔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 전각엔 여운이 있구나. |
小吏莫催嘗午飯 소리막최상오반 | 아전들아 일찍이 점심 먹으라 재촉하지 말게, |
夢中方食武昌魚 몽중방식무창어 | 꿈속에서 곧 무창의 물고기【무창어(武昌魚): 삼국 오(吳) 손호(孫皓)가 도읍을 건업(建業)으로 옮길 때에 백성들도 무창에 머물러 살고 싶어 하여 아래의 동요를 부름.‘三國吳嗣主孫皓從建業遷都武昌,丞相陸凱進諫,疏中引童謠:“寧飲建業水,不食武昌魚” / 소동파가 즐겼을 적벽강의 물고기라는 말이다. 『전적벽부』에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을 바라보니, 산천은 서로 엉켜서 울울창창한데, 여기가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곤욕을 치렀던 곳이 아닌가?’라는 말이 나옴.】를 먹으려던 참이니, 『惺所覆瓿藁』 |
가진 자의 화려한 장미 | 가진 것조차 지겨워져 파리한 장미 |
무소유의 맑은 장미 | 가지려는 의지는 없지만 해맑은 장미 |
해설
이 시는 1603년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있을 때 초여름 관아에서 지은 시이다.
전원(田園)이 거칠어졌는데 언제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른밖에 안 되었지만 머리가 허연 백발인 자신은 벼슬에 뜻이 없다(당시 許筠은 서울에서의 벼슬살이에 지겨운 듯, 얼마 되지 않아 파직되어 금강산으로 떠난다). 대궐에 봄이 가려 하니, 빨리 전원으로 돌아가 봄을 감상하고 싶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슬비에 젖은 장미를 보는 것이다. 빗방울이 내릴 때 낮잠에서 깨었는데, 전각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잠에서 깨니 서리가 점심을 내오고 있다. 그런데 꿈속에서 무창의 물고기를 먹었으니, 그렇게 일찍 밥을 내오지 않아도 될 것을.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교산억기시(蛟山臆記詩)」에 자신의 학시(詩學)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젊었을 적에 시를 할 줄 알아서 이손곡(李蓀谷)에게 이백(李白)을 배웠고 당(唐) 및 한유(韓愈)ㆍ소식(蘇軾)을 중씨(仲氏)에게서 배웠었다. 그리고 난리 속에서 비로소 두보(杜甫)를 익혀 부질없이 소기(小技)에다 공력을 허비한 지도 이미 일기(一紀)가 지났다. 그 사이 소득으로 말하면 비록 옛사람의 영역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성정을 읊조리고 물상을 아로새김에 있어서는 마음을 괴롭히고 힘을 쓴 것이 역시 얕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장정(章程)에 발로됨에 있어서는 혹 조려(藻麗)가 볼 만한 것도 있으니 비교하면 연석(燕石)을 깊이 감추고 서박(鼠璞)을 남 몰래 보배로 여김과 같아서 끝내는 식자의 한번 웃음거리에도 차지 않을 것이다. 승평(昇平)한 때에 『북리집(北里集)』ㆍ『섬궁뢰창록(蟾宮酹唱錄)』이 있었는데 난리통에 소실되어 버리고 관동에 와서 『감호집(鑑湖集)』을 지었는데, 친구들이 돌려보다 잃어버리고 『금문잡고(金門雜稿)』 한 책은 아이들이 보다가 망가뜨려 버렸으니, 수염을 꼬부려가며 애를 무진 쓴 것들이 거의 다 유실된 셈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어찌 아까운 생각이 없을 수 있으랴. 접때 낙가사(洛迦寺)에 있으면서 우연히 기억난 것이 있었는데 이미 열에 일여덟은 잊어버린 나머지였다. 세월이 오래가면 기억난 것마저도 차츰 잊게 될 것이므로, 책자에 써서 파한(破閒)거리로 삼으며 이름을 억기시라 했다. 기억나는 대로 따라 썼기 때문에 일월(日月)의 선후로 써 서차하지 않았으니 보는 자는 눌러 짐작함과 동시에 이로써 장항아리나 덮지 말아주었으면 다행일 따름이다[余少小知爲詩].”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 시를 신고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태사 주지번(朱之藩)이 ‘단보는 중국 사람으로 태어났다 해도 뛰어난 문인 8.9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단보는 바로 허균(許筠)의 자이다. 그런데 단보는 형벌을 받아 죽었기 때문에 문집이 세상에 유통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에 특별히 시 몇 수를 가려 싣는다. …… 평자들이 말하길, ‘동악 이안눌(李安訥)의 시는 유연의 소년배들【중국 유주(幽州)는 전국시대의 연조(燕趙)의 땅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슬픈 노래를 부르고 기절(氣節)을 숭상하고 협객(俠客)을 우대하는 것으로 이름 높다】과 같아서 벌써 침울한 기상을 짊어지고 있고, 석주 권필(權韠)은 낙신이 파도를 타면서 가벼운 걸음을 내디디며 눈길을 이리저리 둘 때 그 눈빛이 기상을 토해내는 것과 같고, 허균의 시는 페르시아 장사꾼이 저자에 보물을 진열해 놓고 있는 것과 같은데 비록 하품의 물건이라도 목난이나 화제(목난과 화제는 모두 보물) 정도는 된다.’라 하였다[朱太史之藩, 嘗稱端甫雖在中朝, 亦居八九人中, 端甫, 許筠字也. 第以刑死, 文集不行, 人罕知之, 特揀數首. 其「有懷」詩, “倦鳥何時集, 孤雲且未還. 浮名生白髮, 歸計負靑山. 日月消穿榻, 乾坤入抱關. 新詩不縛律, 且以解愁顔.” 「初夏省中」詩曰: “田園蕪沒幾時歸, 頭白人間宦念微. 寂寞上林春事盡, 更看疏雨濕薔薇. 懕懕晝睡雨來初, 一枕薰風殿閣餘. 小吏莫催嘗午飯, 夢中方食武昌魚.” 評者謂: “東岳詩如幽燕少年, 已負沈鬱之氣; 石洲詩如洛神凌波, 微步轉眄, 流光吐氣; 許筠詩如波斯胡陳宝列肆, 下者乃木難火齊].”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30~13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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