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18세기 이후 조선풍이 담기다
1. 18세기 이후 이어 사용의 경향
1) 이때부터 이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조선의 풍물을 핍진하게 담아내려 함.
2) 이옥은 시를 쓰면서 족두리(簇頭里), 아가씨(阿哥氏), 가리마(加里麽), 사나이(似羅海) 등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여 시어로 활용했고, ‘무자식 상팔자[無子反喜事]’라는 속담으로 한 연을 구성하기도 함.
早習宮體書 異凝微有角 | 어려서 궁체를 익혀 ‘이응’에 살짝 뿔이 났죠. |
舅姑見書喜 諺文女提學 | 시부모님 글을 보고 기뻐하며 “한글 여제학이로다”라 하시네. |
1) 막 시집간 새댁이 시부모 앞에서 한글을 쓴다. 궁체를 배워 ‘o’ 위의 꼭지가 예쁘게 튀어 올라와 있다. 시부모는 한글 쓰는 여자 제학이 시집왔다 기뻐한다. 훈훈한 백성들의 삶을 운치 있게 그림.
2) 이응(異凝)이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뿐만 아니라, ‘궁체’ ‘언문’ ‘제학’ 등 시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을 대거 수용했다.
3) 양반들이 보면 여전히 비속하다 여길 테지만, 이로 인해 조선의 풍경이 더욱 핍진하게 다가옴.
3. 조선풍의 대두
1) 조선 후기 조선풍이 유행하며 변방의 풍속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 혹은 민간의 노래인 악부의 틀을 채용하되 자신의 시대, 자신의 땅을 두고 시를 짓게 됨.
2) 『영처고서(嬰處稿序)』와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에서 박지원(朴趾源)과 정약용(丁若鏞)이 우리 시에 대한 선언을 함.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 나는 조선 사람으로, 달게 조선의 시를 짓겠노라. |
3) 중국과 다른 조선의 민물과 풍속이라는 우아하지 못한 소재를 이용하여 참신한 표현을 만들어 낸 작품이 많이 창작함.
羊皮褙子壓身輕 | 양 가죽 속적삼을 여미니 몸은 가볍고, |
月下西廂細路明 | 달이 서쪽 행랑으로 지니 골목길 분명쿠나. |
暗入冊房知印退 | 통인(通引)이 가자 몰래 책상으로 들어가니 |
銀燈吹滅閉門聲 | 은촛대의 등불이 문 닫는 소리에 꺼지네. |
1) 신광수는 평양감사로 가는 체제공을 위해 평양의 풍속을 소재로 한 108수의 연작시를 지음.
2) 배자는 털을 대어 만든 조끼 모양의 옷으로, 배자를 꼭꼭 여며 입은 것은 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몰래 밤길을 가는데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3)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이 퇴근한 것을 알고 몰래 책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이는 바람에 촛불이 꺼졌다고 했지만, 마음이 급한 책방 도령이 문을 닫자마자 불을 끈 것으로 보아야 더욱 풍치가 있음.
4) 배자ㆍ통인ㆍ책방과 같은 어울리지 않은 시어를 구사하여 18세기 조선의 풍속을 운치 있게 그려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