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이래로 서양에서는 인간을 보통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관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공룡능선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아니면 서북주릉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무엇일까?’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그 사람은 오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등등.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인간이 분명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과연 인간은 항상 생각하는 존재일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항상’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합니까? 혹시 여러분 중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까? ‘이제 일어나야 한다. 밤사이에 내 방광은 소변으로 가득 찼다. 지금 소변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어나서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열고 방을 나가자. 그리고 아홉 걸음 정도 가서 화장실의 불을 켜자. 그리고 변기 뚜껑을 열고 앉는 거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단지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소변을 보아야 한다는 느낌을 갖게 될 뿐입니다. 또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방문 손잡이를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 가서 전등불을 켭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변기 뚜껑을 열고 그곳에 앉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침에 화장실에 갈 때 발생하는 모든 일입니다. 도대체 이 어느 부분에 우리의 생각이 개입되어 있습니까?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이란 것을 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방문 손잡이를 아무 생각없이 돌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어! 왜 문이 안 열리지? 고장이 났나?’ 또 화장실에 가서 전등불을 켜려고 하는데, 스위치를 아무리 올려도 불이 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경우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어! 불이 안 켜지네. 전기가 나갔나, 아니면 형광등이 고장 났나?’ 또 화장실 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변기 뚜껑이 망가져 떨어져 나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당혹감에 젖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뭐야? 물건을 뭐 이따위로 만들었어!!’
여기서 우리는 얼핏 생각이란 것의 비밀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하이데거는 의식의 지향성을 탐구했던 후설의 제자이자 동시에 후설을 넘어서려고 했던 현대 독일의 철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있는 의식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친숙한 관계가 와해될 때에만 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은 세계 내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는 일차적이기보다는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존재와 시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등이 있다】라는 현대철학자의 이름을 들어보았습니까? 이 사람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란 유명한 철학 책을 썼던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이 책을 보면 하이데거도 인간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은 과연 언제 사유하게 되는 가를 숙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손 안에 있는 존재자를 ‘배려함’에서 사용불가능한 것으로, [다시 말해] 특정한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작업 도구는 파손된 것으로 판명되고 재료는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난다. 도구는 여기에서도 어쨌거나 손 안에 있기는 하다. [……] 이런 사용 불가능성의 발견에서 도구는 마침내 우리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
제가 보기에 하이데거에게는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서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어휘가 아마 ‘배려함(Besorgen)’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어려운 용어가 아닙니다. ‘배려함’이란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고 어떤 것과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용어는 ‘눈에 띔(Auffallen)’이라는 말과 대조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배려함’ 그리고 ‘눈에 띔’이라는 용어와 관련해서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첫째, 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나아가 문을 연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문을 열게 되는 일상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려함’의 사례입니다. 반면 둘째로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아 문에 대해서 그리고 문을 열려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의식하게 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눈에 띔’의 사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배려함’의 경우를 ‘손 안에 있음(Zuhandenheit)’로, 반면 ‘눈에 띔’의 경우를 ‘손 안에 있지 않음(Unzuhandeness)’
으로 설명합니다. ‘손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문이 나와 너무 친숙해서 그 문을 열려고 할 때 어떤 생각도 필요하지 않은 사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손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친숙하게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사태를 의미합니다. 하이데거는 오직 ‘손 안에 있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 즉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만 우리의 생각, 즉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에 띔’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어! 어제까지 열렸던 문이 왜 지금은 열리지 않는 거지?" 이제 우리에게 친숙함이 사라지고 낯섦이 찾아옵니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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