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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2.07.02 - 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2.07.02 - 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7. 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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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군생활을 2001227()에 입대해서 26개월을 꼬박 채운 후 2003426()에 마쳤다. 그후로 무려 19년이 흘러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어느새 40대 초반이 되었다.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기별 특징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어도 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도 됨에도 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것이며, 뜬금없이 지옥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군시절을 정리하려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갑작스레 하는 정리가 아니라고 말이다. 26개월의 발자취가 빼곡하게 담겨 있기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맘은 원이로되 실천하긴 쉽지 않았다. 수양록을 적을 당시엔 한정된 페이지에 많은 내용을 적고 싶었기에 글자를 최대한 작게 하고 줄간격도 최대한 밀착해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자는 마치 점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고 그걸 일일이 타이핑 친다는 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추진하진 못했던 것이다. 이런 고민들로 시작되어 이렇게 완벽하게 정리하기까지는 총 3단계의 정리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수양록의 목차만 만들던 시기이다. 수양록을 처음에 쓸 때만 해도 많은 내용을 적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적응자체가 힘들었기에 길게 적지 못했다. 하지만 자대로 옮긴 이후에 군생활의 답답함은 더욱 가중되었고 신교대와는 달리 시간도 나름 있다 보니 자연스레 더욱 더 글쓰기에 집착하게 됐고 다양한 내용들을 적게 되었다. 그러니 한 장에도 빼곡하게 내용을 적게 되었고 그에 따라 뒷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적고 싶은 건 많은 데 적을 공간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앞 부분에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며 적으면 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앞 부분에도 적다 보니까 당연히 글의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최초에 수양록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엔 뒤죽박죽인 본문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목차를 작성하며 시간대 별로 정리하는 것만을 중점으로 삼았다. 이런 작업은 어렵지 않게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건 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료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나름 타이핑을 해보려 하던 시기이다. 그런데 이때의 문제는 막상 타이핑을 해보면 어떤지를 체험해보자는 거였지, 본격적으로 정리할 생각은 아니었다. 타이핑해야 할 텍스트 양이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기에 몇 개의 글을 타이핑하다보면 과연 할 만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를 예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교대 초반 부분만 타이핑을 해봤다. 그런데 이 시기는 가장 적게 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타이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너무나 많이 들고 당연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의 조금 타이핑했던 파일은 문서파일로 고이 남겨뒀다. 이런 노력은 아마도 30대가 되면서 맘의 여유가 생기며 조금 나아간 게 아닌가 싶다.

 

세 번째 시기는 바로 지금으로, 본격적으로 정리할 생각으로 사진도 스캔을 뜨고 수양록의 문서화를 마친 시기이다. 이렇게 끝도 보이지 않는 작업에 달려들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작년부터 시작된 책을 스캔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봤기 때문이다. 여러 책들을 정리를 하며 내용이 이렇게 많은 책도 정리할 수 있는데 내가 쓴 글을 정리하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여 달려들게 됐고 2022615() 군대 사진을 스캔 뜨는 걸 시작으로 달려들어 72()인 오늘 마무리 지었으니 보름 간의 대장정을 제대로 끝낸 셈이다. 모두 타이핑을 쳐야 했다면 이 시간은 무한정으로 늘어났을 테지만, 다행히도 뒷 부분엔 글씨도 크게 쓰고 줄 간격도 더 넓게 했으며 글자도 더 또박또박 썼기 때문에 알아보기 쉬워 시간은 비약적으로 단축될 수 있었다. 역시 이것만 보아도 최첨단의 이기(利器)와 하고자 하는 열정이 결합되면 그 시너지는 장난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정리를 끝낸 기분

 

이와 같이 긴 시간을 통해 고군분투하다가 19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끝내고 보니 묵은 똥이 한 번에 쑥하고 빠진 것 같은 상쾌한 마음이 절로 든다. 솔직히 이건 누가 정리하라고 한 적도 없고 정말 이 시기의 나에게 필요한 활동인지도 알쏭달쏭했지만 이번에도 하지 않고 묵혀뒀다면 영영 하지 않았을 테고, 그만큼 찝찝한 마음을 느끼며 살아갔을 테다.

 

그걸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수양록 정리를 끝낸 건, 09년에 한 달이나 익숙한 곳을 떠나 세상을 맘껏 유영하며 다녔던 국토종단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시험을 앞에 둔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공부를 한 달이나 놓은 채 길을 떠난다는 건 도박과도 같은 일이었다. 흔히 하던 말처럼 국토종단은 교사가 된 후엔 언제나 할 수 있고, 더 나은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장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시기에 국토종단을 한다는 건 현실도피로밖에 비치지 않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때가 아니었으면 국토종단은 하지 않았을 테고, 막상 그렇게 떠난 여행은 그때야말로 딱 시기적절했다는 점이다. 그때 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며, 그 순간이었기에 내 삶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힘을 받아 2년이 지난 2011년엔 임용을 그만 두며 사람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단재학교에 들어가선 영화팀 아이들과 함께 남한강 도보여행’, ‘지리산 종주’,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등을 떠날 수 있었으니 국토종단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지닌 여행이었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처럼 수양록을 정리하는 것도 지금이었기에 할 수 있었으며 인생이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지금의 시기였기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26개월의 시간을 되짚어볼 수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름의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해묵은 과제를 보란 듯이 마무리 지은 것이니 이 기쁨을 어느 것에 비할까? 내 인생의 1막을 잘 정리해놓으므로 2막을 열 수 있는 키를 마련했다고 자평하련다

 

 

 

 

정리하며 알게 된 것

 

정리하기 전엔 수양록은 읽고 싶던 책이었다. 군생활을 기억해보면 좋았던 기억들은 딱히 남아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도 중대 군종도 해봤으며 분대장이란 직책도 달아봤다. 그 말은 곧 그래도 나름 군대에서 생활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하며 지냈다는 말도 되리라. 그러니 뭔가 인생에 답답함이 느껴질 땐 수양록을 펴서 읽으며 생각을 전환을 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보고 싶었던 거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과거의 기록 속에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갈 만한 힘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식의 원석(原石)을 발굴한다는 심정으로 수양록을 정리했던 것인데, 막상 모든 정리가 다 끝난 이 시점에 보니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점차 생활이 나아지고 나 또한 점차 안정을 되찾아간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고 이등병 때는 이등병 때의 일로, 병장 때는 병장 때의 일로 고민과 짜증과 걱정이 가득했음을 알게 됐다. 정말로 그렇다면 어른들의 젊을 때가 좋은 때지라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물론 어리다는 측면만 본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젊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40대가 40대만의 고통과 걱정을 달고 있듯 20대도 그때만의 고통과 걱정이 있는 거다. 그리고 그걸 단순히 40대의 것에 비해 덜하다고 말할 순 없는 거다. 그러므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실한 건 누구나 그때의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거겠지. 그게 나중에 좋았던 양 미화될 뿐이지, 이렇게 수양록으로 그때그때 감정을 남겨두다보면 미화될 건덕지는 하나도 없이 그 순간에 여러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 사람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나이를 대입하며, 경험을 대입하며 어리다는 이유로,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걱정도 없이 편할 거라 치부해선 안 된다. 그들 또한 그들 나름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처럼 나의 군생활도 고통과 기쁨의 연속이었지만 운 좋게도 다른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할 상황들은 있어 그림 그리는 인원으로 차출된다던지, 중대군종이 된다던지 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그와 같은 부침(浮沈)이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버텨내며 살아냈고 몸 건강히 전역까지 한 것에 대해선 정말로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바람과 기대

 

이렇게 하고 싶던 일을 한 단계 넘어갔으니, 이 기운을 그대로 받아 하고 싶던 일, 그리고 성취하고 싶은 일에 있어서 보무당당(步武堂堂)하게 넘어가서 2막의 인생을 준비하고 살 수 있길 바란다. 맞다, 나의 인생 1막은 대학시절과 임용고시 준비생시절이었고 2막은 단재학교 일하던 시기였으니 새롭게 열릴 나의 삶은 3막이라 해야 옳은 거겠지. 3막의 인생을 기대하며 40대의 새로운 삶을 희망하며, 군 생활로 다시금 여행을 떠났던 보름간의 여러 감정을 떠올리면서 힘껏 달려가 보련다. 지금껏 달려온 나의 용기를 응원하며 한 걸음씩 그렇게 나의 족적을 아로새기며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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