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전향서
그러던 중 급기야 1791년 진산에 사는 윤지충, 권상연이 조상의 신주를 불살라버린 사건이 일어난다. 그 신앙의 강도가 한층 고조된 것이다. 두 장본인을 처형하고 천주교 서적을 압수하여 불사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 종결되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때문일까? 이번에도 명청문집을 걸고 넘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회적인 엄포로 넘어가지 않았다. 10월 19일 서곡이 울린 이후 문체를 둘러싼 소용돌이가 권력의 한복판에서 거세게 몰아쳤다. 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이란 이 시기를 전후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지칭하는 역사적 명칭이다. 반정의 총지휘자 정조는 서적 수입금지를 강경하게 몰아붙이는 한편, 과거시험을 포함하여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을 실시한다.
성균관의 시험 답안지에 조금이라도 패관잡기에 관련되는 답이 있으면 전편이 주옥같을지라도 하고(下考)로 처리하고, 이어 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여 조금도 용서가 없어야 할 것이다. 『정조실록』 16년 10월 19일
泮試試券, 若有一涉於稗官雜記者, 雖滿篇珠玉, 黜置下考, 仍坼其名而停擧, 無所容貸.
첫 번째 희생타로 이옥(李鈺)과 남공철이 먼저 걸려들었다. 심각한 국면이긴 하지만, 농담 한 마디. 이옥은 여성이 아니다. 문무자(文無子)라는 좀 썰렁한 호를 가진 어엿한 남성이다. 이름이 하도 아리따운 데다, 지명도가 낮아 가끔 황진이랑 비슷한 기생 출신이거나 ‘조선 후기에 배출된 뛰어난 여성 문인인가보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어 하는 말이다. 하긴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 틀림없지만, 글을 보면 ‘혹시 여자 아냐?’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성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여성보다 더 여성적 비련과 애수를 잘 드러낸, 아주 특이한 작가이다.
그러니 그의 글이 정조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옥의 감수성이야말로 정조를 분노하게 했던 ‘난세번촉지성(亂世煩促之聲)’,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그가 처음 받은 벌은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짓는 것. 매 맞는 거나 유배를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문인들에게 있어 체질에 맞지 않는 글을 대량으로 써야 하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다. 이후 이옥의 궤적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벌을 통해 문체를 완전히 고쳤음이 보증되어야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니,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전향서 비슷한 걸 요구했던 셈이다.
이옥(李鈺)은 한낱 새파란 유생이었던 데 비해, 남공철은 정조의 스승 남유용의 아들이자 고위관료였다. 그에게는 반성하기 전에는 경연(經筵)에 나오지 말라는 조처가 내려졌다.
그 다음에 걸려든 인물이 이상황(李相璜)과 김조순(金祖淳)인데, 이들의 경우는 약간 코믹하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인 1787년, 두 사람은 예문관에서 숙직하면서 당송시대의 소설을 보다가 발각되어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소설에 빠진 인물들로 분류된 것이다. 실제로 이상황은 밥 먹을 때에도, 측간에 가서도 소설을 손에서 떼지 못할 정도로 ‘소설광’이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마니아’인 셈이다. 그런 처지니 마침내 근무를 하면서도 소설을 보다 국왕에게 들키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소설은 이미 그 이전에도 여러 번에 걸쳐 금수령(禁輸令)이 내려진 바 있다. 하지만 금기의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몸은 더 달아오르는 법. 소설은 사라지기는 커녕, 이렇게 고위관료들에게까지 퍼저 나갔던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춰내 죄를 묻는 건 이런 말폐가 여전히 차단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 다 반성문을 써올리라는 조처가 내려졌다.
이러한 조치와 함께 정조는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전교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① 선비들이 모이는 곳에 죄과를 쓴 판자를 매달아 둘 것,
② 심한 자는 북을 치며 성토하게 할 것,
③ 더 심한 자는 매를 치고 사실을 기록하여 괄목할 만한 실효가 있도록 할 것
을 지시하고, 자신이 결정한 사항을 대과(大科) 및 소과(小科)의 과거 규정에 기록해둘 것을 예조에 명령했다. 아예 과거에 입문하기 전 유생 시절부터 단단히 길들이겠다고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