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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까마귀의 날갯빛 - 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본문

책/한문(漢文)

까마귀의 날갯빛 - 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건방진방랑자 2020. 3. 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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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가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나타낸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만약 그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한 것 같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빚어놓은 것 같지 않다고 나무란다면, 이것은 양귀비가 이빨이 아파 찌푸림[각주:1]을 나무라는 격이요, 번희樊姬가 쪽진 머리를 감싸 쥠[각주:2]을 못하게 하는 격이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의 아름다움[각주:3]을 야단하고, 손뼉 치며 추는 춤의 경쾌하고 빠름[각주:4]을 꾸짖는 격이라 하겠다.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彼低頭, 見其羞也; 支頤, 見其恨也; 獨立, 見其思也; 顰眉, 見其愁也; 有所待也, 見其立欄干下; 有所望也, 見其立芭蕉下.

若責其立不如齋, 坐不如塑, 則是罵楊妃之病齒, 而禁樊姬之擁髻也, 譏蓮步之妖妙, 而叱掌舞之輕儇也.

이제 연암은 형과 태의 관계를 부연하기 위해 미인을 끌어들인다. 그림 속에 그려진 미인은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구나. 그녀는 지금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괴고 넋을 놓고 있구나. “내 님은 누구실까? 어디 계실까?” 그녀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을 게다. 달빛 아래 홀로 선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멀리 떠나간 님을 향한 그리움을 읽는다. !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 알지 못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그늘을 드리운 것이다. 높은 난간에 올라 먼데를 바라보는 그 뜻은 님이 이제나 저제나 오실까 해서임을 나는 안다. 파초 그늘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는 그녀. 그녀는 무언가 잘 이뤄지지 않는 바램을 지니고 있구나.

만약 그 많은 미인도의 모습이 한결같이 금세 깨끗이 재계하고 나온 듯 하고, 흙으로 빚어놓은 조각처럼 단정해야만 한다고 우긴다면, 나는 그런 사람과 더불어 그림을 이야기할 마음이 없다. 미인은 단정해야 한다. 덕성이 넘쳐흘러야 한다. 서 있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런 미인을 나는 진흙으로 빚은 미인이라고 부르련다. 만 있고 태는 없는 미인은 미인이 아니다. 분칠한 아름다움만으로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예쁘고 화려한 옷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자태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태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그림 속 미인의 자태를 보고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가 있다. 하나의 몸짓 속에 서로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청나라 때 장조張潮유몽영幽夢影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습이 추한대도 볼 만한 사람이 있고, 비록 추하지 않지만 볼 만한 구석이라곤 없는 사람이 있다. 글이 문리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고, 비록 문리는 통하지만 지극히 혐오스러운 것도 있다. 이것은 천박한 사람에게는 쉽게 알려주지 못하는 이치이다.

貌有醜而可觀者, 有雖不醜而不足觀者; 文有不通而可愛者, 有雖通而極可厭者. 此未易與淺人道也.

사람들은 형만 보고 태는 보지 않는다. 겉모습에만 현혹된다. 그래서 언제나 허전하다. 늘 속고만 산다. 치통을 앓아 뺨에 한 손을 가볍게 대고서 살짝 찌푸린 양귀비의 표정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슬픈 이야기에 젖어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쪽진 머리를 매만지는 번희樊姬, 그녀의 눈가를 촉촉히 적시는 눈물은 얼마나 고혹적이었을까? 그녀에게 왜 빚어 놓은 듯이 단정하게 앉아 있지 않느냐고 나무랄 것인가? 그녀더러 어째서 얌전히 머리를 길게 늘이지 않느냐고 야단할 것인가? 그래도 화가들은 굳이 양비병치도楊妃病齒圖를 즐겨 그리고, 연극 작가들은 번희의 쪽진 머리 매만지던 일을 소재로 희곡을 썼다[각주:5]. 사뿐사뿐 걸어가는 여인의 요염한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점잖지 못하다고 무조건 나무랄 것인가? 장중한 아악雅樂의 정무正舞만을 옳다하여 빠른 박자로 손뼉 치며 휘휘 돌아가는 북방 호무胡舞의 날렵하고 경쾌한 춤사위를 거부할 것인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한시미학산책

1. 달사와 속인의 차이

2. 하나의 꼴 속에 수없이 많은 태가 깃들어 있다

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4. 달사는 적고 속인만 많다

 

 

 

 

 

  1. 양귀비가 이빨이 아파 손을 뺨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니 그 자태가 더욱 고혹적이었음을 두고 한 말. 이 일을 두고 풍진馮振의 「양비병치도楊妃病齒圖」에는 “화청궁에서는 이빨만 아팠으나, 마외파에서는 한 몸이 아팠고, 어양 땅서 북소리 울려 오더니만 천하가 아팠도다. 華淸宮一齒痛, 馬嵬坡一身痛, 漁陽鼙鼓動地來, 天下痛”이라 하였다. 명明 도종의陶宗儀의 『철경록輟耕錄』「제발題跋」에 보인다. [본문으로]
  2. 한나라 영현伶玄의 첩 번통덕樊通德이 재색才色이 있었는데, 조비연趙飛燕 자매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 하다가 촛불을 돌아보고 손으로 쪽진 머리를 감싸 쥐며 구슬피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조비연외전趙飛燕外傳』에 붙은 「영현자서伶玄自序」에 보인다. 소동파蘇東坡의 「구일주중망견유미당상노소경음처이시희지九日舟中望見有美堂上魯少卿飮處以詩戱之」에 “번통덕의 처량히 여김 심함을 알겠거니, 쪽진 머리 만지며 말없이 돌아가지 못함 원망했네. 遙知通德凄凉甚, 擁髻無言怨未歸”라 하였고, 명明 서위徐渭도 「연자루燕子樓」에서 “지난번 몇 줄기 눈물은 쪽진 머리 감싸쥠을 인함이니, 그때에 한 번 돌아봄 나라를 위태롭게 했었지. 昨淚幾行因擁髻, 當年一顧本傾城”이라 한 것이 있다. 여기서는 촛불을 향해 고개 돌려 쪽진 머리를 매만지며 눈물을 떨구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말함. [본문으로]
  3.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 붙여두고 애첩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고는 걸음걸음 마다 연꽃이 피어난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연보蓮步는 사뿐사뿐 걷는 미인의 걸음걸이를 말한다. 『남사南史』 「제기齊紀」 하下에 보인다. 후촉後蜀 모희진毛熙震의 「임강선臨江仙」에서 “흐트러진 자태도 마음 어지럽히긴 부족하건만, 풍류는 그때에 아낄만 했네. 가는 허리 어여쁘게 금련金蓮 위를 걷더니만, 임금 그르치고 나라 위태롭게 한 일, 오히려 지금까지 전해온다네. 縱態迷心不足, 風流可惜當年. 纖腰婉約步金蓮. 妖君傾國, 猶自至今傳”이라 하였는데, 그 아름다운 자태로 결국 임금을 그르치고 말았음을 두고 한 말이다. [본문으로]
  4. 장무掌舞는 한漢나라 때 북방에서 수입된 춤사위로, 손뼉을 치며 빠른 템포로 추는 호선무胡旋舞를 가리킴. 재래의 아무雅舞가 장엄 엄숙했던데 반해, 옷자락을 땅에 끌며 경쾌한 스텝과 빠른 박자로 빙빙 돌며 추는 호무胡舞는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백거이白居易의 「호선녀胡旋女」는 그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본문으로]
  5. 청나라 서위舒位는 『번희옹계樊姬擁髻』라는 희곡을 남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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