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달사는 적고 속인만 많다
내 조카 종선宗善은 자가 계지繼之인데 시에 능하다. 한 가지 법도에만 얽매이지 아니하여 온갖 체를 두루 갖추었으니,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된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가 되고 또 송명宋明의 시가 된다. 겨우 송명인가 싶어 보면 다시금 성당으로 돌아가 있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김이 또한 너무 심하도다. 그러나 계지의 동산에는 까마귀가 자줏빛도 되었다가 비췻빛도 된다. 세상 사람들은 미인을 재계한 듯 빚어놓은 듯 만들고 싶어 하지만 손뼉 치며 추는 춤과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는 날로 경쾌해지고 더 아름다워 질 터이고, 틀어 올린 머리와 아픈 이빨은 모두 나름대로의 태가 있는 법이다. 그 성내고 노함이 날로 심해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구나. 세상에는 통달한 선비는 적고 속인만 많다. 그럴진대 침묵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으나, 그런데도 말을 그만 둘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아! 연암노인은 연상각烟湘閣에서 쓰노라. 余侄宗善字繼之, 工於詩, 不纏一法, 百體俱該, 蔚然爲東方大家. 視爲盛唐, 則忽焉漢魏, 而忽焉宋明. 纔謂宋明, 復有盛唐. 嗚呼! 世人之嗤烏危鶴, 亦已甚矣. 而繼之之園, 烏忽紫忽翠. 世人之欲齋塑美人, 而掌舞蓮步, 日益輕妙, 擁髻病齒, 俱各有態. 無惑乎其嗔怒之日滋也. 世之達士少而俗人衆, 則黙而不言, 可也. 然言之不休, 何也? 噫! 燕岩老人書于烟湘閣. |
연암은 이제 글을 마무리 한다. 내 조카 종선의 시 속에는 다양한 광光과 태態가 담겨 있다. 따라서 한 가지 색色과 한 가지 태態만을 기호하는 자들은 그의 시를 비웃으리라. 그러나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를 동방의 대가라고 부르고자 한다. 해오라비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자들은 이를 하찮게 여겨 분노하고 성낼 테지만, 나는 그의 자줏빛 까마귀와 비췻빛 까마귀를 사랑한다. 세상 사람들은 판에 박은 미인의 모습만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정작 그들이 사랑하는 미인은 피가 돌고 살이 부드러운 미인이 아니라, 진열장의 마네킹일 뿐이다.
나는 언제 들어도 트롯트 가요가 좋은데 TV에서는 허구 헌 날 랩송과 댄스 음악만을 틀어대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주변 사람에게 저것도 노래냐고,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저 지경이냐고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배꼽티는 날로 노출이 심해질 것이고, 청소년 문제는 갈수록 점입가경일 것이다. 언제나 세상은 곧 내일 망할 것 같은 말세였었다. 젊은이들은 항상 버르장머리가 없었다. 연암의 그때도 그랬고, 지금의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직 세상이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질 않고, 젊은이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성장해간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색色만 보고 광光은 외면하고, 형形만 볼뿐 태態는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데 있다. 연암은 『열하일기』 중 「망양록亡羊錄」에서 이에 대해 다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근세의 잡극 중에 「서상기西廂記」를 공연하면 지루해서 졸음이 오는데, 「모란정牧丹亭」을 공연하면 정신이 번쩍 들어 귀 기울여 듣는다. 이것은 비록 여항의 천한 일이지만 백성들의 습속과 취향이라는 것이 때에 따라 옮기어 바뀐다는 것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사대부가 옛 음악을 회복하려고 마음먹고서 가락과 곡조가 바뀐 것은 모르고서 이에 갑자기 쇠북과 피리를 부수고 고쳐서 원래의 소리를 찾고자 한다면 사람과 악기가 모두 없어지기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어찌 화살을 따라가서 과녁을 그리고, 술 취함을 미워하면서 억지로 술 마시게 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如近世雜劇, 演西廂記, 則捲焉思睡; 演牧丹亭, 則洒然改聽. 此雖閭巷鄙事, 足驗民俗趣尙, 隨時遷改. 士大夫思復古樂, 不知改腔易調, 乃遽毁鍾改管, 欲尋元聲, 以至人器俱亡. 是何異於隨矢畵鵠, 惡醉强酒乎? |
정곡을 꿰뚫는 명궁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고 화살이 맞은 곳마다 쫓아가서 과녁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살이 과녁을 찾아가야지, 과녁이 화살을 찾아가는 법이 없다. 표적이 바뀌면 조준이 달라지듯, 시대가 바뀌면 취향도 바뀐다. 내가 쏘는 화살만은 반드시 과녁을 뚫어야 된다는 법이 없다. 여기서 억지가 생기고 무리가 따른다. 이미 달라진 옛 음악을 이제와 복원하려 한들 가능키나 하겠으며, 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래의 소리란 없다. 당시에는 그것도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있지도 않은 원래의 소리 때문에 지금 귀에 익은 소리를 버릴 수는 없다. 술 취해 비틀대는 꼴이 보기 싫거든 아예 술을 멀리할 일이다. 그런데 왜 싫은 술을 억지로 마시고 싫다는 술을 굳이 권하는가?
아! 세상에는 달사를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속물들의 속물근성만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차라리 입을 닫고 침묵하리라. 그러면 그들의 노여움을 모면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입을 열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그러나 막상 말하고 나니 답답하구나. 시인들이여! 그대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형편은 어떠한가?
▲ 전문
인용
1. 달사와 속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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