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선군의 시고詩稿는 몹시 적어서, 고체와 금체시 모두 50수 뿐이다. 고체시는 오로지 한유韓愈를 배웠는데 기이하고 험벽하기는 그보다 더 해서, 정경情境은 핍근하고 필력이 막힘이 없다. 율시와 절구 등의 시는 항상 성률에 구속되어 마음 속에 말하려는 것을 그대로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히 여기셨다. 그래서 왕왕 한 두 구절만 이룬 채 그만 둔 것이 많다.
-김윤조 역, 『역주 과정록』(태학사, 1997), p.279
연암이 시 짓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그러니까 운자니 평측이니 하는 성률에 얽매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싫어서였다. 이번에 보려고 하는 연암의 시 「증좌소산인贈左蘇山人」은 몇 십수밖에 남지 않은 연암의 시 중에서도 험벽한 운자를 한 번도 환운하지 않고 단숨에 내달은 5언 92구, 460자에 달하는 장시이다. 좌소산인은 서호수徐浩修의 장남 서유본徐有本(1762-1799)으로, 당대에 석학으로 이름 날렸던 서유구徐有榘의 형이다. 이 시는 연암이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작품인데, 표현이 난삽하고 비유가 까다로와 아직껏 전편이 논의된 적이 없다. 이제 작품의 단락에 따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시구 앞에 번호를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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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8구까지는 ‘문필진한文必秦漢, 시필성당詩必盛唐’, 즉 문장을 하려면 선진양한을 본받아야 하고, 시를 지으려면 盛唐을 모범 삼아야 한다는 상투적인 주장에 대한 일침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미 ‘비슷한 것은 가짜다’란 말은 「공작관집서」를 비롯하여 여러 글에서 되풀이해 강조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연암은 양한이나 성당과 비슷해지려 해서는 결코 한당漢唐도 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왜 남과 비슷해지려 하는가? 비슷하다는 말에는 이미 진짜는 아니라는 뜻이 들어 있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내가 그때 거기를 모방해서 방불해진다고 한들, 지금 여기가 그때 거기로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때 거기가 된다 한들 지금 여기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터이니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을 좋아하니 그 하는 말이 날이 갈수록 촌스러워 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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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을 흉내 내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누가 양한과 같다 하고 성당에 핍진하다고 하면 너무 기뻐 침을 흘리며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멍청이도 있고, 손을 저어 그렇지 않다고 짐짓 물러서며 겸손한 체 하는 교활한 자들도 있다. 아니면 그런 칭찬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감당할 수 없다고 발뺌하는 못난 친구도 있고, 또 그것을 선망해서 나는 언제 그런 시를 써보나 하는 사람, 그렇게 못하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나서 공연히 심통을 부리며 싸움을 거는 인간도 있다.
2. 칭찬을 듣고도 기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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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에서 28구까지 연암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나도 예전에 이런 칭찬을 들은 일이 있었다. “자네의 문장은 꼭 양한의 풍격이 있네 그려. 시는 꼭 성당의 시와 같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두 번 듣고는 배를 잡고 뒹굴며 웃다가 엉덩이 뼈가 쑤실 지경이었다. 자꾸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엔 아예 심드렁해져서 밀랍을 씹는 듯 아무런 느낌도 없어졌고, 그런대도 사람들이 자꾸 칭찬을 해대자 참으로 견딜 수가 없어 마침내는 바람 맞은 사람처럼 멍하게 되고 말았다.
29구에서는 말머리를 슬쩍 자신을 질투하는 자들에게로 돌렸다. 자! 자네들 누가 더 잘하는지 솜씨 겨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내 말을 잠깐만 들어보게나. 자네들 속이 편안해질 테니. 내 말을 듣고 보면, 자네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문학의 길이 판연히 다른 줄을 알게 될 것일세. 내가 설사 자네들 보다 옛 사람 흉내를 더 잘 낸다 해도 그것이야 부러워 할 것이 뭐란 말인가? 질투할 것은 또 뭔가? 나는 오히려 그런 말 듣는 것이 부끄럽기만 한 것을. 나는 애초에 자네들과 경쟁할 생각이 조금도 없단 말일세.
우리의 흉내란 것은 연나라의 소년이 조나라 사람들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흉내 낸답시고 따라 하다가 종당에는 배우지도 못하고, 제 본래의 걸음마저 잊어버려 마침내 엉금엉금 기어서 연나라로 돌아갔다는 저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고사와 다를 것이 뭐 있겠나. 미녀 서시西施가 가슴 아파 찡그리니 그 아름다움이 매우 고혹적이었겠지만, 못생긴 동시東施가 그 흉내를 그대로 내게 되면 보는 이의 혐오감만 더하게 될 뿐이 아니겠나. 중요한 것은 찌푸리는 것이 아닐세. 서시가 찌푸린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아무나 찌푸리기만 하면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은, 옛 사람의 시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아무나 흉내 내기만 해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너무도 간단하고 단순한 이 이치를 자네들은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가?
계수나무야 고귀하지만, 그림 속의 계수나무야 향기도 없고 실체도 없으니 차라리 뒷뜰에 심어진 개오동나무만도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왜 눈앞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살아있는 오동나무는 낮고 더럽다 하면서, 굳이 보지도 못한 그림 속의 계수나무만을 선망하는가 말일세. 우리가 오동나무를 외면하고 계수나무만을 꿈꾼다 해도, 이 땅에선 계수나무를 흔히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초나라 재상 손숙오가 죽었을 때 그 자식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본 우맹이 그를 도우려고 손숙오의 분장을 하고 들어가 그 흉내를 낸 일이 있었지. 그 흉내가 하도 진짜 같아서 초나라 임금도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내던 신하들도 모두 죽은 손숙오가 살아서 돌아온 줄로만 알았다지 뭔가. 우맹의 분장과 연기야 과연 일품이었겠지만, 우맹은 종내 우맹일 뿐 손숙오는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 때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을 뿐이었겠지. 그럴진대 자네들은 왜 옛것과 비슷해지려고만 하는가?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예전 燕나라 소년이 趙나라 邯鄲으로 가서 그 나라 사람이 잘 걷는 것을 보고 그 걸음걸이를 흉내내다가 제 본래의 걸음걸이를 잃고서 엉금엉금 기어서 제 나라로 돌아갔다는 고사. 『장자』「秋水」에 나온다. 맹목적으로 남을 흉내 내다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 西施가 가슴이 아파 이마를 찌푸렸는데, 그 마을의 醜女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흉내내어 이마를 찌푸리자, 마을사람이 문을 닫아 걸고 마을의 거지가 그 마을을 떠나 갔다는 고사. 찌푸림이 아름다운 것은 알았지만 왜 아름다운지는 몰랐던 것이니, 내면의 실질을 외면하고 겉모양만 흉내내는 것의 폐단을 말함. 東施效顰. [본문으로]
- 초나라 재상 孫叔敖가 죽었는데 優孟이 손숙오의 의상을 입고서 그의 행동을 흉내내자 초나라 왕과 신하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손숙오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는 고사. 『사기』「골계열전」에 나온다. 겉모습은 흡사하지만 실질은 같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말. [본문으로]
3. 전적이 있다면 뭐든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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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구에서 52구까지는 옛것을 추구한다는 자들의 행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장자』 「외물」에 보면 시례詩禮를 외우면서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두 명의 유자가 나온다. 무덤 속 시체의 입에서 미처 구슬을 빼내지 못했는데 동녘이 터오자, 대유大儒가 근엄한 목소리로 『시경』의 시를 한 수 외운다. 그 시는 이렇다. “푸릇푸릇 보리는 언덕에 돋아났네. 살아 베풀지 않았으니 죽어 어이 구슬을 머금으리오. 靑靑之麥, 生於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焉.” 그리고는 냉큼 이렇게 말한다. “『시경』에도 이렇게 적혀 있느니라. 그러니 시체의 살적을 움켜잡고 아래턱 수염을 누르고 쇠망치로 그 턱을 두들겨 천천히 두 뺨을 벌려 입 속에 구슬이 상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야.” 아아! 그는 남의 무덤을 도굴하면서도 『시경』의 말씀에 따라 하고 있구나. 『시경』에도 이미 ‘죽어 어이 구슬을 머금으리오’라고 했으니 그의 도적질은 조금도 죄될 것이 없고 거리낄 것이 없다. 시체의 턱뼈를 부수더라도 입안의 구슬은 깨지면 안 된다.
오늘날 옛것을 모의하여 흉내 내는 자도 이 도둑놈이나 무엇이 다른가? 두보가 말하고 이백이 말했으니 괜찮고, 『사기』에 나오고 『한서』에 나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것이 내 말이 아니고 그들의 말인데도 그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다. 왜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것은 옛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가? 『시경』에만 나오면 시체의 입을 벌리는 도둑질도 합리화될 수 있는가?
가슴 속에는 온통 구린내가 나는데 붓만 좋고 벼루만 좋으면 무얼 하는가? 43, 44구에서 연암이 던지는 질문이다. 붓만 좋으면 그저 명필이 되는 법이 있던가? 벼루만 훌륭하면 시도 저절로 훌륭해지는가? 찌푸리기만 하면 나도 아름다워 질 수가 있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붓과 벼루가 아니다. 정작 관건은 시를 쓰는 이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에 있다. 훌륭한 벼루에 좋은 먹을 갈아도 생각이 속되고 보면 그 벼루 그 먹이 빛을 잃고 만다. 나는 없고 옛 사람의 망령만 득실대는 그런 시는 아무리 때깔이 좋더라도 나는 취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육경의 글자를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제 글인양 으스댄다. 그들은,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빌붙어 사는 지라 불을 지를 수도 없고 물을 들이부을 수도 없어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다. 그래도 곧 죽어도 입만 열면 경전의 말을 주워 섬기고, 붓만 들면 훈고의 문자를 늘어놓으니 무식한 촌놈들은 그저 주눅이 들어 예예 하고 굽신거릴 도리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면목을 보자면 참으로 가관이다. 제관이 종묘 제례에 쓸 제사 음식을 진열하면서 절인 고기와 젓갈 따위를 마구 얹어 놓아 온갖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꼴이나 진배없으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 왔지만, 애초에 놓일 자리가 아니고 보니,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오사리 잡탕이 되고 만 것이다. 그도 아니면 시골 무지랭이 농사꾼이 창졸간에 벼슬아치의 인끈을 매달고 혁대고리를 걸어 온갖 치장을 하고 으스대는 모양과 진배없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얼굴이 까맣게 탄 시골 농부가 부시시한 머리로 턱시도에 넥타이를 매고 때 빼고 광낸 꼴이라는 말이다. 인끈과 혁대 고리가 훌륭한 장식이긴 하지만 시골 농사꾼에게는 어울리지 않듯이, 옛 것이 아무리 좋아도 제 깜냥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작정 옛날만 흉내 내면 제 촌스러움만 더 드러내게 되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詩禮로 남의 무덤을 파혜치는 위선적인 儒者의 허위를 풍자한 『장자』 「外物」에 나오는 이야기. 시체의 입안에 있는 구슬을 훔치기 위해 남의 무덤을 파던 儒者가 “푸릇푸릇 보리는 언덕에 돋아났네. 살아 베풀지 않았으니, 죽어 어이 구슬을 머금으리오. 靑靑之麥, 生於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焉?”라는 시를 읊으면서 시체의 턱을 망치로 깨서 입 속의 구슬을 꺼내는 이야기다. 입으로는 詩禮를 논하면서 뒤로는 남의 墓穴이나 파헤치는 위선적인 유자들을 풍자한 것이다. [본문으로]
- 사당에 사는 쥐는 사당에 불이 날까봐 연기로 내쫓지도 못하고, 바닥이 더러워 질까봐 물을 붓지도 못하므로 죽일 수가 없다. 『晏子春秋』에 나오는 고사로, 城狐社鼠는 교활하게 남의 세력에 의지하여 나쁜 짓을 하는 간사한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본문으로]
- 夏畦는 여름날 농사짓는 농사꾼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하에 “어깨를 수굿이 하고 아첨하며 웃는 것은 여름날 밭가는 사람보다 수고롭다. 脅肩諂笑, 病于夏畦”라 하였다. [본문으로]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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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53구에서 64구까지 연암의 도도한 논설이 이어진다. ‘진취眞趣’, 즉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멀고 아득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와 당나라는 지금 세상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노래는 중국과는 다르다.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바뀌고, 언어도 바뀐다.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그들은 지금 여기의 문장을 쓰려 할 터이지 예전 제가 썼던 문장을 모의하려 들진 않았으리라. 비록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예전에 없던 새 글자를 만들어 쓰지는 못한다 해도, 옛 사람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정작 제 할 말은 한 마디도 못하는 그런 글을 쓴대서야 말이 되는가. 지금 것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 천년 뒤엔 이것이 옛 것으로 될 터이니. 지금 사람이 지금 것에 충실할 때, 그것이 뒷날에는 훌륭한 고전이 된다. 지금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양한과 성당도 모두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지금 사람이 지금 것을 버리고 옛 것에만 충실할 때, 뒷날에 그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쓰레기가 될 뿐이다. 남의 흉내만 내며 정작 제 목소리 한마디 내보지 못하는 ‘지금의 옛날’들은 새겨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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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배움은 어찌 해야 하는가? 한신이 배수진을 치듯이 해야 한다. 장수치고 孫吳兵法을 안 읽은 자가 어디 있었으랴만, 진을 치는 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야 하는 줄만 알았지, 오합지졸을 이끌고 싸울 때는 ‘죽을 땅에 둔 뒤에 산다’는 병법을 응용해 거꾸로 ‘배수진’을 치는 것이 승리의 요체가 되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옛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옛것을 오늘에 맞게 응용하는 정신이다. 옛것은 쓸모 있고 유용한 가치이지만, 털도 안 뽑고 통째로 가져다 써서는 지금에 맞을 수가 없다. 옛것은 적재적소에 변통할 줄 아는 안목과 만날 때라야 비로소 쓸모 있는 지금 것이 된다.
여불위는 왕위 후계 서열에서 한참 떨어져 남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천덕꾸러기로 구박받던 자초子楚에게 투자하여 마침내 그를 진나라의 왕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는 제 씨앗을 잉태한 초희楚姬를 자초에게 바쳐 그 아들이 뒤에 결국 진나라의 대통을 이었다.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67, 68구에서 한 연암의 말뜻은 여불위의 행위가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다. 여불위가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이다. 남들이 눈앞의 득실에만 마음이 팔려 작은 이익에 일희일비할 때, 그는 원대한 포부로 마음먹은 제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전혀 별 것도 아닌 듯이 보이는 심상한 것에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남들이 보면서도 못보는 사실, 늘 마주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자아내어 내 삶과 연관 짓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초정집서」에도 나온다. 한신이 병법과 반대로 배수진을 쳐서 이기자, 여러 장수들이 이긴 연유를 물었는데, 이때 한신이 “죽을 땅에 둔 뒤에 살고, 망할 당에 둔 뒤에 남는다. 置之死地以後生, 置之亡地以後存”라 한 병법을 썼던 것이라고 한 것을 두고 하는 말. 因循姑息의 융통성 없는 法古보다. 임기응변의 變通을 강조한 것이다. [본문으로]
- 陽翟의 장사꾼 呂不韋가 趙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秦王의 서자 子楚를 후원하여 그로 하여금 왕비의 양자가 되게하여 진나라의 후사를 잇게 했던 일. 子楚는 秦始皇의 아버지이다. 남들이 미처 미치지 못한 생각을 해서 큰 일을 이룬 것을 말함. [본문으로]
5. 큰 학자가 되려면 품이 넉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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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구에서 끝까지는 서유본과 만나 이야기한 기쁨과 그에게 주는 당부로 시를 맺었다. 적막히 혼자 병 앓고 있던 나를 그대가 찾아주니 참으로 기쁘고 반가웠네. 얌전한 아가씨 같은 앳된 모습의 자네가 나를 찾아와 둘이 앉아 시 이야기를 하다가 몇날 며칠 날 가는 줄도 몰랐네 그려. 자네의 품은 생각이 꼭 내 생각과 같고 보니 오랫동안 막힌 체증이 하루아침에 쑥 내려간 듯 뻥 뚫리고 말았네. 두 사람 대화의 상쾌함은 마치 생강을 입에 씹고 있는 것만 같았지 뭔가. 그간 그 답답하던 세월이 하도 분해서 시리게 푸른 가을 하늘 보며 한 바탕 통곡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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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목수가 나무를 깎고 아로새기는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대장장이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법이 있던가? 대장장이가 없고 보면 나무 깎는 대패는 누가 만들며 톱이나 칼은 또 누가 만든단 말인가? 집을 지으려면 미장이가 있어야 하고 기와장이도 있어야 하질 않겠나? 솜씨가 좋으면 미장일을 하고, 근력이 좋으면 지붕을 잇는 법이니, 제각금 역할을 나눠야 한 채의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다네. 만일 목수가 대장장이를 우습게 알고, 미장이가 기와장이를 필요 없다고 한다면, 대패질은 무엇으로 하며 지붕은 누가 인단 말인가? 미장이가 지붕 위까지 흙으로 발라 버린다면 그 집이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말일세. 이래서야 어찌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겠나. 이와 같이 문학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야 하네. 이것은 옛것이니 따르고 저것은 지금 것이니 배척한다면, 대장장이가 필요 없다고 떠드는 목수와 다를 바 없을 걸세. 그래서야 어떻게 훌륭한 문학을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문학 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녀야 하네. 자기의 특장을 잘 알아 미장일이 알맞은지 기와 이는 일이 제격인지를 판단해야 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겠나?
제 뜻과 같지 않다 해서 성을 내서도 안 될 것이고, 너무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도 큰 그릇은 되지 못한다고 보네. 제가 가는 길만 길이고, 제가 하는 문학만 문학은 아닌 것이야. 그렇지만 세상은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대로, 목수쟁이는 목수쟁이대로 다들 저만 잘나고 옳다고 떠들어대고 탈일세. 미장장이는 기와장이 알기를 우습게 알고, 기와장이는 미장장이 보기를 하찮게 보니 하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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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학을 하려면 품이 넉넉해야지. 여보게, 좌소산인! 자넨 아직 젊으니 타고난 제 본바탕을 잘 지키고, 교만한 기운을 가라앉혀서, 이 나라의 문학을 올바로 세워 주시게. 발 아파 끙끙 앓으며 적막히 지내는 이 늙은이가 하는 간곡한 부탁일세.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解頤匡鼎: 『漢書』 「匡衡傳」에 “아무도 詩를 말함이 없었는데, 그때 마침 匡衡이 왔다. 광형이 시를 말하자 듣는 사람이 입이 벌어졌다. 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라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시에 대해 설명을 너무 잘하여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 [본문으로]
6.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시인의 고약한 입냄새
시대마다에는 참으로 다른 그 시대의 정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생각하는 방식이나 표현 방법, 좋은 문학에 대한 기준이 그렇게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가? 비슷한 것은 가짜다. 눈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가 있다. 집 짓는 데는 미장이도 필요하고 기와장이도 필요하다. 이 단순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한국 한시사는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같은 시대 이용휴李用休는 “시를 지으면 당시唐詩가 아님이 없는 것이 근래의 폐단이다. 당시의 체를 흉내 내고 당시의 말을 배워서 거의 한 가지 소리에 가깝다. 이것은 앵무새가 하루 종일 앵앵거려도 자기의 소리는 없는 것과 같으니 나는 이것을 몹시 혐오한다”고 했다.
飢食而渴飮 歡笑而憂顰 |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즐거우면 웃고 걱정되면 찡그리네. |
吾詩觀於此 隨境意自眞 | 나의 시는 이런 것을 살펴보나니 경계 따라 생각이 절로 참되다. |
水流而山峙 魚潛而鳥飛 | 강물은 흘러가고 산은 우뚝 솟았네 물고긴 잠기고 새는 날아 오르지. |
有形交吾目 何者非吾詩 | 내 눈 앞에 스쳐가는 형상 있으니 무엇인들 그 모두 내 시 아니랴. |
이것은 이정섭李廷爕의 「오시吾詩」 연작 가운데 두 수이다. 배고파 밥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듯 쓴 것이 내 시다. 즐거워 웃고 근심 겨워 찌푸린 것이 내 시다. 눈앞에 펼쳐지는 온갖 형상들이 모두 내 시다. 죽은 옛 경전 안에 내 시는 없다. 앵무새 흉내 속에 내 시는 없다. 나는 오직 내 가슴의 진실만을 노래할 뿐이다.
食經夜便嫌敗 衣經歲便嫌古 | 음식도 밤 지나면 상해 버리고 옷도 해가 바뀌면 헌 옷이 되네. |
文士家爛口氣 漢唐來那不腐 | 글짓는 자 입 냄새 진동을 하니 한당 이래 글인들 어이 썩지 않으랴. |
이것은 이언진李彦瑱의 작품이다. 하루 밤만 지나면 맛있는 음식도 부패해 먹을 수가 없다. 자드르 하던 새 옷도 일 년만 입고 나면 후줄근한 헌 옷이 된다. 한당漢唐의 문장인들 왜 썩지 않으랴. 그런대도 옛것만을 옳다고 하고 제 길로만 따라오라 하니, 아! 시인의 입 냄새가 참으로 고약하구나. 그렇지만 정작 이 시를 쓴 이언진은 그 시대에 절망하고 인간들에게 절망해서, 세상에 남겨 두어야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며 제가 쓴 시 원고를 죄 불질러 버리고 스물 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어느 시대고 저만 잘난 미장이 시인의 입 냄새는 주변을 질식시킨다. 그들은 썩은 음식을 맛있다고 하고, 꾀죄죄한 헌옷 입고 멋있다고 우긴다. 그래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패거리 지어서 내 가슴의 진실을 핍박한다. 그 구석에서 절망하는 정신들이 제 원고를 불지르며 시대를 온몸으로 증거할 뿐이다. 오늘의 시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시대정신을 어디가 찾을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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