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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자소집서(自笑集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박지원 - 자소집서(自笑集序)

건방진방랑자 2021. 11. 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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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가 지은 문집엔 옛 문장이 실려 있다

자소집서(自笑集序)

 

박지원(朴趾源)

 

 

중국의 풍속이 사라져 연극마당에서나 찾아보게 되다

嗟乎! 禮失而求諸野, 其信矣乎. 今天下薙髮左袵, 則不識漢宮之威儀者, 已百有餘年矣. 獨於演戱之場, 像其烏帽團領玉帶象笏, 以爲戱笑.

嗟乎! 中原之遺老盡矣, 其有不掩面而不忍視之者歟. 亦有樂觀諸此, 而想像其遺制也歟.

 

옛 풍속은 기생에게만 남았고 지금 궁중의 제도는 원나라 때의 것이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 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吾聞而悲之曰: “習久則成性, 俗之習矣, 其可變乎哉? 東方婦人之服, 頗與此事相類. 舊制有帶, 而皆闊袖長裙, 勝國, 多尙元公主, 宮中髻服, 皆蒙古胡制. 于時士大夫爭慕宮樣, 遂以成風, 至今三四百載, 不變其制. 衫纔履肩, 袖窄如纏, 妖佻猖披, 足爲寒心. 而列邑妓服, 反存雅制. 束𨥁爲髻, 圓衫純. 今觀其廣袖容與, 長紳委蛇, 褎然可喜.

今雖有知禮之家, 欲變其妖佻之習, 以復其舊制, 而俗習久矣, 廣袖長紳, 爲其似妓服也. 則其有不快裂, 而罵其夫子者耶?”

 

역관 이홍재가 지은 전통 있는 문집

李君弘載, 自其弱冠, 學於不侫, 及其長, 肄漢譯, 乃其家世舌官. 余不復勉其文學. 君旣肄其業, 官帶仕本院.

余亦意謂李君前所讀書, 頗聰明, 能知文章之道, 今幾盡忘之, 乾沒可歎.

一日君稱其所自爲者, 而題之曰自笑集, 以示余. 論辨若序記書說百餘篇, 皆宏博辯肆, 勒成一家.

 

사대부에게선 볼 수 없던 옛날 문장을 이홍집의 문집에서 보다

余初訝之曰: “棄其本業而從事乎無用, 何哉?”

君謝曰: “是乃本業, 而果有用. 則蓋其事大交隣之際, 莫善乎辭令, 莫嫺乎掌故, 故本院之士, 其日夜所肆者, 皆古文辭, 而命題試才, 皆取乎此.”

余於是改容而歎曰: “士大夫生而幼能讀書, 長而學功令, 習爲騈儷藻繪之文. 旣得之也, 則爲弁髦筌蹄, 其未得之也, 則白頭碌碌, 豈復知有所謂古文辭哉? 鞮象之業, 士大夫之所鄙夷也. 吾恐千載之間, 反以著書立言之實, 視爲胥役之末技, 則其不爲戱場之烏帽邑妓之長裙者, 幾希矣.”

 

예가 상실되면 재야에서 구한다

吾故爲是之懼焉, 特書此集而序之曰: “嗟乎! 禮失而求諸野, 欲觀中原之遺制, 當於戱子而求之矣; 欲求女服之古雅, 當於邑妓而觀之矣; 欲知文章之盛, 則吾實慚於鞮象之賤士.” 燕巖集卷之三

 

 

 

 

 

 

해석

 

중국의 풍속이 사라져 연극마당에서나 찾아보게 되다

 

嗟乎! 禮失而求諸野, 其信矣乎.

! ‘예가 없어지면 재야에서 구해진다한서 30 예문지(藝文志)에 인용된 공자(孔子)의 말이다. 안사고(顔師古)는 주()에서 도읍(都邑)에서 예가 사라졌을 경우 재야에서 구하면 역시 장차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였다라고 하는데, 참이로구나.

 

今天下薙髮左袵, 則不識漢宮之威儀者,

이제 중국의 천하가 머리를 깎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니 한나라 궁궐의 위의() 나라 관리들의 위엄 있는 복식과 전례(典禮) 제도라는 말로, 중화(中華)의 예의 제도를 뜻한다를 알지 못한 지

 

已百有餘年矣.

이미 100여년이다.

 

獨於演戱之場, 像其烏帽團領玉帶象笏,

유독 연극하는 장소에서만 오모와 단령과 옥대와 상아로 만든 홀을 본떠서

 

以爲戱笑.

장난하며 웃음거리로 삼는다.

 

嗟乎! 中原之遺老盡矣,

! 중국의 남겨진 노인들한족(漢族) 왕조인 망한 명() 나라에 대해 여전히 신민(臣民)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노인 세대를 가리킨다이 죽었지만

 

其有不掩面而不忍視之者歟.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차마 그걸 보질 못하겠구나.

 

亦有樂觀諸此, 而想像其遺制也歟.

또한 연극하는 장소에서 즐거이 보면서 남은 제도를 상상하겠는가.

 

 

 

옛 풍속은 기생에게만 남았고 지금 궁중의 제도는 원나라 때의 것이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

세폐사(歲幣使)조선 후기에, 청나라에 보낸 정례 사행(定例使行). 또는 그 사신가 북경에 들어가 오지방 사람() 지방은 중국의 동남쪽 강소성(江蘇省)ㆍ절강성(浙江省) 일대를 가리킨다. 이 지역 사람들은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명 나라 말에 최후까지 만주족의 침략에 저항하여 유달리 반청(反淸) 사상이 강하였다과 말했는데

 

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오지방 사람이 우리 지방 이발 가게가 있어 성대한 세상의 즐거운 일이라 편액을 걸었네.”라고 말했다.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그 때문에 서로 보고 크게 웃다가 이윽고 은밀히 눈물 흘리려 했다고 한다.

 

吾聞而悲之曰:

내가 듣고서 슬퍼하며 말했다.

 

習久則成性, 俗之習矣, 其可變乎哉?

습관이 오래되면 본성이 완성되니 세속의 습성을 바꿀 수 있겠는가?

 

東方婦人之服, 頗與此事相類.

우리나라 부인의 옷은 매우 이 일과 서로 유사하다.

 

舊制有帶, 而皆闊袖長裙,

옛 제도엔 띠가 있었고 모두 넓은 소매에 긴 치마()()’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였지만

 

勝國, 多尙元公主,

고려말에 이르러선 대부분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어

 

宮中髻服, 皆蒙古胡制.

궁궐의 머리꾸미개와 옷장식이 모두 몽고의 오랑캐 제도가 되었다.

 

于時士大夫爭慕宮樣,

이때에 사대부들이 다투어 궁궐의 양식을 사모했고

 

遂以成風, 至今三四百載, 不變其制.

마침내 풍속을 이루어 지금까지 3~400년 동안 그 제도가 변하지 않았다.

 

衫纔履肩, 袖窄如纏,

적삼은 겨우 어깨를 가릴 정도이고 소매가 좁아 엮은 것 같으며

 

妖佻猖披, 足爲寒心.

요사하고 경망하며 창피하여 한심하기에 충분하다.

 

而列邑妓服, 反存雅制.

그러나 여러 고을 기생의 옷은 도리어 우아한 제도를 보존해

 

束𨥁爲髻, 圓衫純.

비녀를 꽂아 상투를 삼고 원삼은 순면이다.

 

今觀其廣袖容與, 長紳委蛇,

이제 너른 소매가 여유가 있고 긴 띠가 늘어져 뱀 같으니

 

褎然可喜.

짜임새가 있어 기뻐할 만하다.

 

今雖有知禮之家, 欲變其妖佻之習,

이제 비록 예를 아는 집안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과 예의 범절을 대대로 전승해 오는 명문가를 시례지가(詩禮之家)’라고 한다. 연암의 집안에서는 5대조 박미(朴瀰)의 부인 정안옹주(貞安翁主)가 중국식의 상복(上服)을 착용한 이후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가 이를 집안의 예()로 확정했으며, 조부 박필균(朴弼均)도 집안 부인네에게 이를 따르게 했다고 한다. -居家雜服攷內服이 있어 요사하고 경망한 습속을 바꿔

 

以復其舊制, 而俗習久矣,

옛날의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더라도 습속이 오래되어

 

廣袖長紳, 爲其似妓服也.

너른 소매와 긴 띠가 기생의 옷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則其有不快裂, 而罵其夫子者耶?”

상쾌하게 찢고 남편을 욕할 사람이 있겠는가?”

 

 

 

역관 이홍재가 지은 전통 있는 문집

 

李君弘載, 自其弱冠, 學於不侫,

이홍재홍재(弘載)는 이양재(李亮載, 1751~?)의 초명(初名)이다. 이양재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이언용(李彦容)의 아들이다. 1771(영조 48) 역과(譯科)에 급제하고 사역원(司譯院)에 재직하였다. -역과방목(譯科榜目)원문은 이군(李君)’인데, ‘홍재(弘載)’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아래에 나오는 이군(李君)’은 모두 같다20살 때부터 나에게 배웠고

 

及其長, 肄漢譯,

장성하여선 중국어 통역을 익혔으니,

 

乃其家世舌官.

곧 그 집안은 대대로 역관이었기 때문이다乃其家世舌官也자가 추가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余不復勉其文學.

나는 다시 문학을 권면하지 않았다.

 

君旣肄其業, 官帶仕本院.

이군은 이미 번역을 익히고 관복과 띠를 입고 사역원(司譯院)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余亦意謂李君前所讀書, 頗聰明,

나는 또한 생각했다. ‘이군은 이전에 독서한 것이 매우 총명하여

 

能知文章之道, 今幾盡忘之,

문장의 도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두 그걸 잊었을 테니

 

乾沒可歎.

총명함이 말라 사라진 게 한탄할 만하다건몰(乾沒)’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여기에서는 물속으로 침몰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一日君稱其所自爲者, 而題之曰自笑集,

하루는 이군이 스스로 지은 글을 말하며 그걸 자소집이라 이름 짓고서

 

以示余.

나에게 보여줬다.

 

論辨若序記書說百餘篇,

논변문과 서문과 기(), (), () 100여 편이

 

皆宏博辯肆, 勒成一家.

모두 굉장히 해박한 논변을 뱉어낸 것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륵성일가(勒成一家): 글을 엮어 책을 만드는 것을 륵위성서(勒爲成書)’ 륵성(勒成)’이라 하고, 특색 있는 저작을 일가서(一家書)’라고 한다.

 

 

 

사대부에게선 볼 수 없던 옛날 문장을 이홍집의 문집에서 보다

 

余初訝之曰: “棄其本業而從事乎無用,

나는 처음에 그걸 의아해하며 말했다. “번역하는 일을 버리고 쓸데 없는 일에 종사한 건

 

何哉?”

왜인가?”

 

君謝曰: “是乃本業, 而果有用.

이군이 사죄하며 말했다. “이것이 곧 본업으로 과연 쓸 데가 있습니다과유용 즉(果有用 則): ‘자가 자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이 되면 문리가 잘 통하지 않아, 이본에 따라 고쳐 번역하였다.

 

則蓋其事大交隣之際, 莫善乎辭令,

대체로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의 일을 할 때 형식적인 말을 쓰는 것보다 좋은 게 없고

 

莫嫺乎掌故,

전고를 끌어 쓰는 것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故本院之士, 其日夜所肆者, 皆古文辭,

그러므로 사역원의 선비들은 낮밤으로 익히는 것이 모두 오랜 문장의 글이고

 

而命題試才, 皆取乎此.”

문장의 제목을 명하고 재주를 시험하길 모두 오랜 문장의 글에서 취합니다.”

 

余於是改容而歎曰:

나는 이 때문에 낯빛을 바꾸고 탄식하며 말했다.

 

士大夫生而幼能讀書,

사대부는 태어나 어렸을 땐 자유분방하게 독서할 수 있지만

 

長而學功令, 習爲騈儷藻繪之文.

장성해선 과거시험을 위한 문장만 배워 변려체 문채(文彩)의 문장만을 익히고 짓는다.

 

旣得之也, 則爲弁髦筌蹄,

이미 과거에 합격하고선 쓸데없는 것변발전제(弁髦筌蹄): 무용지물을 뜻한다. 변모는 관례(冠禮)를 치르고 나면 쓸데없는 치포관(緇布冠)과 동자(童子)의 다팔머리를 말하고, 전제는 물고기를 잡고 나면 쓸데없는 통발과 토끼를 잡고 나면 쓸데없는 올가미를 말한다이라 여기고

 

其未得之也, 則白頭碌碌,

합격하지 못하면 흰 머리가 되도록 세상의 요구에 복종하기만 하니

 

豈復知有所謂古文辭哉?

어찌 다시 말했던 오랜 문장의 글이 있음을 알겠는가?

 

鞮象之業, 士大夫之所鄙夷也.

역관의 일은 사대부가 낮잡아 하찮게 보는 일이다.

 

吾恐千載之間, 反以著書立言之實,

나는 1000년 사이에 도리어 책을 저술하고 말을 세우는 실제를

 

視爲胥役之末技,

통역관의 잗다란 기술로 여길까 두려우니

 

則其不爲戱場之烏帽邑妓之長裙者, 幾希矣.”

그리되면 연극하는 장소의 오모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처럼 생각하지 않을 이 거의 드물리라.”

 

 

 

예가 상실되면 재야에서 구한다

 

吾故爲是之懼焉, 特書此集而序之曰:

나는 이런 까닭에 이것을 걱정해서 특별히 이 문집에 써서 서문을 지었다.

 

嗟乎! 禮失而求諸野,

! 예가 없어지면 재야에서 구해진다고 했는데

 

欲觀中原之遺制, 當於戱子而求之矣;

중국의 남은 제도를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연극배우에게서 그걸 구해야 하고

 

欲求女服之古雅, 當於邑妓而觀之矣;

여자 옷의 고아함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고을의 기생에게서 그걸 보아야 하며

 

欲知文章之盛, 則吾實慚於鞮象之賤士.” 燕巖集卷之三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자 한다면 나는 참으로 통역관의 미천한 선비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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