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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비슷한 것은 가짜다 - 8. 심사(心似)와 형사(形似) 본문

책/한문(漢文)

비슷한 것은 가짜다 - 8. 심사(心似)와 형사(形似)

건방진방랑자 2020. 3. 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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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같아지려 하면 할수록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는 진짜와 가짜,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은 글의 처음을 방고倣古’, 즉 옛날을 모방하는 문제로 시작한다. 글을 짓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말과 뜻으로 하지 않고 옛것을 모방하여 짓는다. 옛것을 모방함은 옛 사람과 거의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꼭 같게 하면 되는가? 그 결과 읽는 이가 이것이 옛글인지 지금 글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우리의 글쓰기는 성공한 것일까?

 

 

옛것을 본떠 글을 지음을 마치 거울이 형상을 비추듯 하면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니 어찌 비슷함을 얻으리요.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그려내듯 한다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말이 거꾸로 보이니 어찌 비슷하다 하리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할진대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한낮에는 난장이 땅달보[각주:1]가 되고, 저물녘에는 꺽다리 거인[각주:2]이 되니 어찌 비슷하다 하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 한다면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길가는 자가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자는 소리가 없으니 어찌 비슷함을 얻겠는가.
倣古爲文, 如鏡之照形, 可謂似也歟? 曰左右相反, 惡得而似也; 如水之寫形, 可謂似也歟? 曰本末倒見, 惡得而似也; 如影之隨形, 可謂似也歟? 曰午陽則侏儒僬僥, 斜日則龍伯防風, 惡得而似也; 如畵之描形, 可謂似也歟? 曰行者不動, 語者無聲, 惡得而似也歟.

거울에 비추듯 하면 될까 싶어도,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왼손잡이다. 물 위에 어리는 모습은 항상 거꾸로 보이니 탈이고, 그림자는 해의 길이에 따라 난장이도 되었다가 꺽다리가 되기도 한다. 그림으로 꼭 같이 그린다 해도 그림 속의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이것들은 모두 즉 비슷하기는 해도 진짜는 아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옛것을 흉내 내봐도 결국 비슷함에 그칠 뿐 종내 옛것은 될 수가 없다.

 

 

같아지려 닮으려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끝내 비슷함은 얻을 수가 없는 것일까? 말하기를 대저 어찌하여 비슷함을 구하는가?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두고 반드시 꼭 닮았다고 하고 구분하기 어려운 것을 또한 진짜 같다고 말한다. 대저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가짜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때문에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완전히 다른데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통역과 번역으로도 뜻을 통할 수가 있고, 전서篆書와 주문籒文, 예서隸書와 해서楷書로도 모두 문장을 이룰 수가 있다. 왜 그럴까? 다른 것은 겉모습이고, 같은 것은 마음이기 때문일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뜻이고, 겉모습이 비슷한 것[形似]은 피모皮毛일 뿐이다.
然則終不可得而似歟? 曰夫何求乎似也? 求似者, 非眞也. 天下之所謂相同者, 必稱酷肖, 難辨者, 亦曰逼眞. 夫語眞語肖之際, 假與異, 在其中矣. 故天下有難解而可學, 絶異而相似者. 鞮象寄譯, 可以通意, 篆籒隸楷, 皆能成文. 何則? 所異者形, 所同者心故耳. 繇是觀之, 心似者, 志意也, 形似者, 皮毛也.

그러면 어찌할까? 글쓰기를 그만 둘까? 곤혹스러워 하는 내게 연암은 이렇게 찔러 말한다. “! 진짜 같다. 정말 꼭 같다.” 이런 말들 속에는 이미 가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다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왜 비슷해지려 하는가? 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를 찾아 헤매는가? 비슷한 것은 이미 진짜가 아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그러니 비슷해지려 하지 말아라.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알고 보면 너무도 분명한 것들이 있다. 겉보기에는 하나도 같지 않은데 실제로는 꼭 같은 것도 있다. 모르는 외국어는 알아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다. 한문으로만 된 연암의 원문은 모르는 이에겐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통역이 나서서 돕거나 번역을 통해 읽으면 큰 어려움 없이 의미가 통한다. 이것이 이른바 난해하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문장도 전서篆書나 초서草書는 모양이 조금도 닮은 데가 없다. 그러나 담긴 의미는 서로 꼭 같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겉모습은 하나도 같지 않은데 담긴 뜻은 조금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거꾸로만 간다. 옛 사람의 정신은 저만치 놓아두고 겉모습만 그대로 본뜨려 한다. 그러니 겉모습이 같아지면 같아질수록 정신은 점점더 달라만 진다. 옛 사람과 비슷해지고 싶어서 옛 사람을 흉내냈는데, 그 결과는 옛 사람과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여기서 연암은 다시 심사心似형사形似라는 두 개념을 이끌어낸다. 심사心似란 표현은 달라도 정신이 같은 것이고, 형사形似란 겉모습은 같지만 실질은 다른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외모는 꼭 같은데 사람은 영 딴판인 것이 형사이고, 겉모습은 전혀 다른데 마음가짐은 진실되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은 심사이다. 형사는 결국 에 그치지만, 심사는 끝내 에 도달한다.

 

 

같아지려 닮으려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비슷하게 하면 할 수록 오히려 가짜가 되어 간다.     

  1. 주유侏儒는 난장이다. 초요僬僥는 중국에서 동족으로 40만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난장이 나라로,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1자 5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열자列子』「탕문湯問」에 보인다. 『국어國語』「진어사晉語四」에는 “僬僥不可使擧, 侏儒不可使援”이라 했다. [본문으로]
  2. 용백龍伯은 고대 전설상의 거인국이니,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30자나 되고 만 8천살을 살고 죽는다고 한다. 『열자列子』「탕문湯問」에 보인다. 방풍防風은 우禹임금 때 왕망씨汪芒氏의 추장 이름이나, 여기서는 엄청난 거인의 뜻으로 쓰였다. 『국어國語』「노어하魯語下」에 보인다. [본문으로]

 

 

2. 옛 것을 배우는 두 가지 방법

 

 

 

어떻게 하면 새로우면서 예로울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본받지 않으면서 본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것이 옛것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당나라 유지기劉知幾사통史通』 「모의模擬에서 옛 것을 배우는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모동심이貌同心異의 방법과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방법이 그것이다.

 

 

대저 작자들이 위나라 이전에는 삼사三史를 많이들 본받았고, 나라 이래로는 오경五經 배우기를 즐겼다. 대저 사서史書의 글은 얕고 모방하기가 쉽지만, 경전經典의 글은 뜻이 깊고 모의하기가 어렵다. 이미 어렵고 쉬운 차이가 있고 보니 얻고 잃음 또한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대개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이 같은 것은 모의의 윗길 가는 것이고, 겉모습은 같지만 마음이 다른 것은 모의의 아랫길이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모동심이貌同心異만을 좋아하고 심동모이心同貌異는 숭상치 아니하니 어찌된 것일까? 대개 안목이 밝지 않고 기호하는 것이 치우침이 많아 사사似史를 기뻐하며 진사眞史는 미워하기 때문이다.
大抵作者, 自魏已前, 多效三史; 從晉已降, 喜學五經. 夫史才文淺而易模, 經文意深而難擬; 旣難易有別, 故得失亦殊.
蓋貌異而心同者, 模擬之上也; 貌同而心異者, 模擬之下也. 然人皆好貌同而心異, 不尙貌異而心同者, 何哉? 蓋鑑識不明, 嗜愛多僻, 悅夫似史而憎夫眞史.

모동심이貌同心異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속 내용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옛 책에서 베껴와 말투를 흉내내 겉모습의 비슷함은 얻었지만 그 정신의 실질은 갖추지 못한 경우이다. 심동모이心同貌異는 그 전달코자 하는 알맹이는 같지만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모동심이가 하급의 모방이라면, 심동모이는 상급의 모방이다. 뒷사람이 앞사람을 배우는 방법은 심동心同이어야지 모동貌同이어서는 안 된다. 연암식으로 말하면 심사心似라야지 형사形似로는 안 된다. 같기를 추구하면서도 똑같아서는 안 되며, 다름을 추구하되 실질은 다르지 않은, 이른바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진정한 닮음이란 껍데기에 있지 않다. 껍데기는 전혀 다른데도 알맹이는 같은 그런 닮음이라야 한다.

그런데 문화가 경박해질수록 모동심이貌同心異의 저급한 모방만이 판을 친다. 항상 새롭고 전과 다른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그거일 뿐이다. 영화도 댄스 뮤직도 만화도 다 그렇다. 요즘 서점에는 온통 제목에 몇 가지란 말이 들어간 책뿐이다. 하나가 인기를 끌면 말만 조금 바꾸거나, 겉치장만 조금 달리하여 내용과는 관계도 없이 그 비슷함에 편승한다. 이리로 우루루 몰려왔다가는 어느새 저리로 줄을 선다. 잠시도 쉴 새 없이 변화하지만 실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동심이貌同心異의 저급한 모방에 대해 홍길주洪吉周여인논문서與人論文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겉모습만 같아지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정작 자신은 사라져 버린다.

 

 

 

오직 문장 또한 그러하다. 그 반드시 힘껏 빠르게 내달려 이르지 않은 곳이 없은 뒤에야 그 화려함을 없애 질박해지고, 그 맛을 죽여 담백하게 된다. 만약 처음부터 육경을 배운다면 그 자리에서 힘이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혈기가 방장한 사람이 스스로를 기르기를 늙은이가 앉고 눕는 것 같이하여 사람을 시켜 밥을 떠먹이게 하고 고기를 빻아 오게 하며 미음만을 마신다면 일 년이나 반년이 못가 지체가 약해져서 마침내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든 사람이 되어 죽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은데도 스스로 나의 생활과 섭양이 아무 늙은이와 같으니 장수하는 것도 또한 마땅히 그 노인과 같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을 옳다 하겠는가?
唯文章亦然. 其必馳騁奔軼, 無所不至而后, 乃泯其綵而樸, 去其味而淡. 若自始而學爲六經, 未有不居然而竭, 是猶血氣方壯之人, 自養如耆老坐臥, 使人扶飱搗肉, 吸糜粥, 不至一秊半秊, 肢體痿弱, 遂爲廢疾人而止耳. 如是而自以爲吾居養, 如某老, 壽亦當如某老, 其可乎哉!

나는 오래 살고 싶다. 그러니 80 노인의 섭양 방법을 그대로 따르면 80세까지는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가 하는 것처럼 사람을 시켜 밥을 떠먹이게 하고, 고기는 빻아와 먹고, 밥을 버려 미음만 먹었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80 노인과 같이 오래도록 장수할 수 있는 건강이 아니라, 80 노인의 늙음 뿐이었다.

80 노인의 건강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가 하는 대로 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가 나만 했을 때 어떻게 건강을 유지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낫다. 똑같이 하지 말아라. 똑같이 해서는 똑같이 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방법이다. 심동모이의 모방은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의 장애를 극복해낸다. 아득한 과거가 지금과 나란히 만나고, 지구 저편의 일이 바로 내 일로 된다. 이것이 바로 연암이 말하고 있는 심사心似.

 

 

 

3. 제 목소리를 담아 문집을 지은 낙서야

 

 

 

이씨의 아들 낙서洛瑞가 나이 열 여섯인데, 나를 좇아 배운 지 여러 해이다. 심령이 맑게 열려 지혜가 구슬 같다. 한 번은 자신의 녹천고綠天稿를 가지고 와 내게 물었다.
! 제가 글 지은 것이 겨우 몇 해이지만 남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습니다. 한마디 말만 새롭고 한 글자만 이상해도 문득 옛날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낯빛을 발끈하며 어찌 감히 이 따위를 하는 게야?’ 합니다. 아아!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다시 합니까? 원컨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두 손을 이마에 얹고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며 말하였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창힐蒼頡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옛날을 모방했던가? 안연顔淵은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유독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진실로 옛것을 좋아하는 자로 하여금 창힐이 글자 만들 때를 생각하면서 안자顔子가 미처 펴지 못했던 뜻을 짓게 한다면 글이 비로소 바르게 될 것이다. 네 나이 아직 어리니, 남이 성냄을 당하거든 공경하며 사과하여 배움이 넓지 못해 미처 옛것을 살피지 못했습니다라고 하거라. 그런데도 힐문하기를 그치지 않고 성냄을 풀지 않거든 조심스레 이렇게 대답하여라. ‘서경書經은고殷誥주아周雅는 삼대三代 적의 당시 글이고, 이사李斯와 왕희지王羲之도 진나라와 진나라의 시속 글씨였습니다라고 말이다.
李氏子洛瑞, 年十六, 從不侫學, 有年矣. 心靈夙開, 慧識如珠. 嘗携其綠天之稿, 質于不侫曰: “嗟乎! 余之爲文, 纔數歲矣, 其犯人之怒多矣. 片言稍新, 隻字涉奇, 則輒問古有是否, 否則怫然于色曰: ‘安敢乃爾?’ ! 於古有之, 我何更爲? 願夫子有以定之也.” 不侫攢手加額, 三拜以跪曰: “此言甚正. 可興絶學. 蒼頡造字, 倣於何古, 顔淵好學, 獨無著書, 苟使好古者, 思蒼頡造字之時, 著顔子未發之旨, 文始正矣. 吾子年少, 耳逢人之怒, 敬而謝之曰: ‘不能博學, 未攷於古矣.’ 問猶不止, 怒猶未解, 嘵嘵然答曰: ‘殷誥周雅, 三代之時文, 丞相右軍, 秦晋之俗筆.’”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16세의 소년 문사이다. 그가 자신이 쓴 글을 모아 녹천관집綠天館集이라 하고는 연암에게 들고 왔다. “선생님!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제가 한 마디만 새로운 말을 하거나 못 듣던 이야기를 하면, 자꾸 화를 내니 말입니다. 조금만 낯설면 그들은 제게 이렇게 말을 하지요. ‘옛날에 이런 게 있었니?’ ‘없었는데요.’하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어찌 감히 이 따위 짓을 하는 게야?’ 합니다. 아아, 선생님! 참으로 답답합니다.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또 한답니까?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선생님!”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다시 합니까?” 당돌한 제자가 이렇게 물어오자, 연암은 자못 과장스런 제스처를 보이며 이를 부추긴다. “네 말이 참 옳구나. 예전 창힐蒼頡은 천지만물을 관찰하여 그 결과를 글자로 만들었다. 창힐이 이전에는 글자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창힐이가 만든 글자는 어떤 옛날을 본받았더란 말이냐? 그럴진대 창힐이 글자 만든 일도 어찌 감히 이 따위 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면에 안연顔淵은 그렇게도 학문을 좋아했건만, 단 한권의 저서도 남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성인聖人에 버금간다고 높이는 것은 왜일까? 안연의 학문은 문자로 고정되지 않았기에 여태도 살아 있다. 그것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열려진 텍스트이다. 제자야! 내 말을 잘 들어라. 네가 창힐이 글자를 만들던 관찰의 정신으로, 안연이 미처 글로 펴지 못했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면, 네 글이 비로소 바르게 설 것이니라.”

여기서 연암이 말하고 있는, 안연이 미처 글로 펴내지 못했던 생각이란 무얼까? 그것은 바로 변치 않는 알맹이, 즉 성인聖人의 가르침이요 정신이다.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이전에는 있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형식을 뜻한다. 그러기에 창힐이 글자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서 안연이 미처 펴지 못했던 뜻을 지으라는 말은 옛 사람의 썩지 않을 정신을 너 자신의 형식에 담아내는 심동모이心同貌異의 심사心似를 추구하라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연암은 한편으로 부추기며 다른 한편으로 제자를 어른다. “얘야! 네 나이 아직 어리니, 사람들이 성을 내거든 공부가 부족해 그렇다고 공손히 사과하거라. 그래도 상대방이 노여움을 풀지 않거든 이렇게 대답하렴. ‘지금 볼 때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서경書經은고殷誥주아周雅도 삼대三代 적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이 알아듣던 보통 글에 지나지 않았고, 이사李斯의 전서篆書나 왕희지王羲之의 초서草書도 다 그때에는 시속時俗 글씨에 지나지 않았었지요라고 말이다.”

오늘날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를 금과옥조로 떠받든다. 이것을 모르고는 행서를 말할 수가 없다. 그뿐인가. 십칠첩十七帖과 상란첩喪亂帖을 곁에 끼고서 초서草書의 교범으로 삼는다. 왕희지 이전에는 전서와 예서 뿐이었다. 당시에 그것은 시쳇말로 젊은 애들 사이에 유행하던 글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치는 분명하지 않은가? 진정한 고전은 옛날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에 있다. 우리가 옛것을 흠모하여 그것을 따르고 흉내 낼수록 우리는 옛것에서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정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담는 그릇인 형식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려 들지 말아라. 헌 부대는 새 술의 신선한 맛을 묵은 술처럼 만들고 말 것이다. 제 목소리를 찾아라. 그 안에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을 정신의 빛을 깃들여라.

 

 

 

한자의 역사는 직선화, 간략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뜻이 통하는 건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4. 하늘이 저렇게 파란 데도

 

 

다시 여기서 본편의 주제(心似形似)와 관련된 연암의 짧은 글 세 편을 함께 읽기로 하자.

 

 

마을의 꼬맹이가 천자문을 배우는데, 그 읽기 싫어함을 꾸짖자,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라고 합디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이를 기죽일만 합니다.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我聰明, 餒煞蒼頡.

전문이래야 34자에 불과한 엽서로, 답창애答蒼厓즉 창애蒼厓에게 답한 세 번째 편지이다. 마을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꼬마 녀석 하나가 자꾸만 딴청을 한다. 화가 난 훈장이 이놈! 하고 야단을 치자 그 대답이 맹랑하다. “선생님! 저 하늘을 보면 저렇게 파랗기만 한데,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왜 맨날 하늘을 검다고만 한답니까?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이야기를 소개한 후 연암은 시치미를 뚝 떼고 요 꼬마 녀석의 총명함이 글자 만든 창힐이를 기죽일 만하지 않습니까?”하고는 글을 맺어 버렸다. 무슨 뜻으로 보낸 편질까? 전후 사정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요컨대 사물 보는 것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가슴의 진실에 입각해야지, 남들 하는 대로 머리로만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모두들 아무 의심 없이 관성적으로 읽어오던 천자문을 두고 꼬마는 처음부터 헛소리만 가르치는 것으로 여겨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연암에게서 이 엽서를 받은 창애蒼厓는 연암 당대에 일세독보一世獨步의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유한준兪漢雋(1732-1811)의 호인데, 문맥으로 보아 연암은 뭔가 그에게 충고 비슷한 것을 던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한준은 진한고문秦漢古文에 문장의 모범을 두었던 형사形似 추구의 의고주의자였다. 심사心似를 추구했던 연암과는 젊어서부터 교유하였으나 문학에 대한 생각은 각기 판이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쳐 충돌하는 현장을 우리는 다음 글에서 다시금 목도하게 된다.

 

 

 

 

5. 유한준의 문집에 혹평을 날리다

 

 

부쳐 보내신 글 묶음을 양치하고 손 씻고 무릎 꿇고서 장중히 읽고는 말하기를, “문장은 모두 기이하다. 그러나 이름과 물건을 많이 빌려와 인용하고 근거로 댄 것이 꼭 맞지가 않으니 이것이 흠결이 된다고 하였지요. 청컨대 노형老兄을 위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寄示文編, 漱口洗手, 莊讀以跪曰: “文章儘奇矣. 然名物多借, 引據未襯, 是爲圭瑕. 請爲老兄復之也.

답창애지일答蒼厓之一이다. 아마도 유한준이 자신의 문집 엮은 것을 연암에게 보내 평해줄 것을 요청했던 모양이다.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유한준에게 연암은 대뜸 좋기는 좋은데 이름을 자꾸 빌려오고, 여기저기서 인용을 끌어온 것이 맞지 않아 그게 흠이라고 지적하였다. 형사形似 추구의 지나침을 나무란 것이다.

 

 

문장에는 방법이 있으니, 마치 소송하는 자가 증거를 들이대고, 장사치가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비록 말의 이치가 밝고 곧아도 만약 다른 증거가 없다면 무엇으로 재판에서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글 짓는 자는 경전經傳을 널리 인용하여 자기 뜻을 밝히는 겝니다. 성인聖人께서 지으시고 현인賢人이 풀이하셨으니 이보다 더 미덥겠습니까만, 그래도 오히려 강고康誥에 말하기를 밝은 덕을 밝히라고 했다고 하고, “제전帝典에 이르기를, ‘높은 덕을 환히 밝히라고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文章有道, 如訟者之有證, 如販夫之唱貨. 雖辭理明直, 若無他證, 何以取勝? 故爲文者, 雜引經傳, 以明己意. 聖作而賢述, 信莫信焉, 其猶曰: “康誥曰: ‘明明德.’” 其猶曰: “帝典曰: ‘克明峻德.’”

소송이 붙어 재판에 이기려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는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정직한 사람이니 믿어달라고만 호소한다면 어찌 재판에 이길 수 있겠는가? 땔감 파는 장수가 땔감을 지고 가며 소금 사려!”하고 외친다면 어찌 땔감 한 단인들 팔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증거 없이는 안 된다. 꼭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글 짓는 사람들이 경전에서 말을 끌어와 제 뜻을 밝히는 것도 이와 꼭 같다. 꼭 맞는 인용은 글에 신뢰와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지만 벼슬이름과 땅이름만은 서로 빌려 써서는 안 됩니다. 섶을 지고서 소금 사려! 하고 외친다면 비록 하루 종일 길을 가더라도 땔감 한단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황제가 사는 도읍을 모두 장안長安이라 일컫고, 역대 삼공三公을 죄다 승상丞相이라고 부른다면 명실名實이 뒤죽박죽이 되어 도리어 비루하게 될 뿐이지요. 이는 곧 좌중을 놀래키는 진공陳公이요[각주:1], 찡그림을 흉내내는 서시西施일 뿐입니다[각주:2]. 그래서 글 짓는 사람은 더러워도 이름을 감추지 아니하고, 비루해도 자취를 숨기지 않습니다. 맹자가 성씨는 함께 하는 바이지만, 이름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또한 다만 말하기를, “글자는 함께 하는 바이지만, 글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말해봅니다.
官號地名, 不可相借, 擔柴而唱鹽, 雖終日行道, 不販一薪. 苟使皇居帝都, 皆稱長安, 歷代三公, 盡號丞相, 名實混淆, 還爲俚穢. 是卽驚座之陳公, 效顰之西施. 故爲文者, 穢不諱名, 俚不沒迹. 孟子曰: “姓所同也, 名所獨也.” 亦唯曰: “字所同而文所獨也.”

그런데 고금의 서울을 모두 장안이라 하고, 역대의 정승을 무조건 승상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름만 같은 진공陳公이요, 찡그림만 흉내 낸 동시東施에 지나지 않는다. 찡그려 아름다웠던 것은 서시西施의 본바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찡그림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찡그렸는데도 서시가 찡그리면 온 나라 사내들이 가슴을 설레었고, 동시가 흉내 내자 부자는 문을 닫고, 거지는 그 마을을 떠났다. 모동貌同만 있었지 심동心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서울은 개성이고, 조선의 서울은 한양인데 이를 모두 장안이라 하고, 영의정을 일러 승상이라 한다면, 과연 이 글이 조선의 글인가 진한秦漢 적 글인가? 조선 사람이 지금의 생각을 쓰면서, 진한 적의 말투나 흉내 내고 있으니 이래서야 어찌 가슴으로 전해오는 느낌이 있으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씨姓氏는 누구나 같지만 이름은 다르다고.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글자는 누구나 공유하지만 문장은 자기만의 것이어야 한다고. 누구나 같이 쓰는 성씨나 글자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공변된 의미 자질이요 보편 가치이다. 그러나 그 공변된 의미와 보편 가치가 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성 뒤에 붙은 이름에서이다. 글자를 조합해서 엮은 문장에서이다. 이름이 놓이고서야 수많은 같은 성씨 중에서 단 한 사람이 떠오른다. 누구나 항용하던 말인데도 내가 글로 쓰게 되니 전혀 새롭게 되었다. 남의 이름이 멋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쓰지 않듯이, 다른 이의 글이 훌륭하대서 남의 옛 글을 그대로 베껴 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글은 내가 썼는데 정작 내 생각은 찾을 데가 없고, 옛 귀신의 공허한 중얼거림만 남게 된다. 베낄 것을 베껴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껴야 할 것은 안 베끼고, 베끼지 말아야 할 것은 굳이 베낀다. 그래서 자꾸 글쓰기가 꼬인다.

칭찬을 듣자고 보낸 자기 글을 두고 이런 혹평을 받은 유한준의 기분이 좋았을 턱이 없었겠다.

 

 

 

 

  1. 한나라 때 진준陳遵은 모습이 장대하고 문사文辭에 능하였다. 당시 그와 이름이 꼭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자신의 이름이 진맹공陳孟公이라고 소개하면 좌중이 모두 놀라 어쩔줄 몰랐는데, 막상 이르러 보면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그 사람을 일러 ‘진경좌陳驚坐’라 한데서 나온 말. 『한서漢書』 유협전游俠傳, 「진준전陳遵傳」에 보인다. [본문으로]
  2. 춘추시대 월越나라 미녀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마을에 사는 못생긴 여자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똑깥이 찡그리고 다니자, 그 마을의 부자는 문을 닫아걸고 나오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처자를 이끌고 마을을 떠나갔다는 고사. 『장자莊子』「천운天運」편에 보인다. [본문으로]

 

 

6. 지금을 담아내자 말하던 유한준의 아들

 

 

다시 연암이 그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글을 한 통 더 읽어보자.

 

어제 아드님이 와서는 글 짓는 것에 대해 물어 보길래, “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랬더니 자못 기뻐하지 않고 돌아가더군요. 모르겠습니다만 아침저녁 문안을 여쭐 적에 이 말을 하던가요?
昨日令胤來, 問爲文. 告之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動, 非禮勿言.’ 頗不悅而去. 不審, 定省之際, 言告否.

답창애지사答蒼厓之四이다. 아마도 유한준의 아들이 아버지 편지 심부름으로 연암을 찾아왔다가 문장의 방법을 물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글은 어떻게 써야 합니까?” 아버지와의 불편함을 눈치 챈 아들의 물음이었으니, 아마도 연암의 귀에 그 말은 순순하게 들리질 않고, “당신이 그렇게 잘났으면 도대체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이랍니까?” 쯤으로 들렸을 법도 하다. 연암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간단하지.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게나.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야.”

아마도 연암의 본래 뜻은 문장의 테크닉을 향상시키는 기교보다는 마음자리를 바로 갖는 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던 듯하다. 문장의 방법을 묻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니, 아들은 이 양반이 날 무시해서 놀리나 싶어 화가 나서 갔을 터이고, 연암은 이 일을 편지에서 유한준에게 묻고 있다.

이런 저런 일로 유한준은 연암에게 깊은 유감을 품어, 훗날 그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오랑캐의 연호를 쓴 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 극력 비방하는데 앞장섰고, 뒤에 연암이 포천에 묘지를 만들자 일족을 시켜 고의로 그 묘자리를 파내 집안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대립을 빚기까지 하였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때 일을 두고 유한준이 연암이 젊었을 때 자신의 글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일에 원망을 품어 꾸민 일이라고 적고 이 자는 우리 집안 백세의 원수라고까지 적고 있다.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 하여 글 쓰는 이들이 남을 서로 우습게 보는 경향은 늘상 있어온 것이지만, 문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이렇듯 가문간의 극한 대립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드물게 보는 심상찮은 일이다.

앞서 불쾌해져 돌아갔던 유한준의 아들은 바로 유만주兪晩柱(1755-1788)였다. 최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그가 21세 나던 177511일에서부터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엔 17871214일까지 쓴 13년간의 일기, 흠영欽英이 모두 여섯 책으로 영인되어 나왔다. 기록이란 참으로 긴 생명력을 지닌다는 말을 실감케 된다.

이 책에는 흥미롭게도 연암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언급들이 꽤 많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가 쓴 문장에 관한 언급을 보면 오히려 아버지 유한준의 편이 아니고 연암의 생각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끝으로 인용하는 한 단락은 앞서 본 답창애지일答蒼厓之一에서 유한준을 공박하던 연암의 논리와 꼭 같다. 앞으로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

 

 

이른바 문장을 함에 지금 것을 피하고 말은 반드시 진한秦漢의 옛스러움을 답습하며, 우리의 시속時俗을 버리고 이름은 반드시 중국의 고아한 것만을 모방하니 그 촌스러움이 크다 하겠다. 진실로 그 이치를 얻기만 한다면, 비록 우리나라의 일을 기록하고, 우리나라의 사물을 적으며, 우리나라의 말을 쓰더라도 절로 뒷날 반드시 전해질 훌륭한 글이 되기에 해될 것이 없다. 그럴진대 이른바 지금 것이라 해서 반드시 옛것만 못하지 않고, 이른바 시속時俗의 것이라 해서 반드시 고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것을 가지고 촉 땅에 전하게 하면, 촉 땅 사람이 한 번 보고는 문득 우리나라의 글임을 알게 될 터이고, 땅에 전하게 하면 민 땅 사람이 한 번만 보고도 바로 우리나라의 글임을 알게 될 터이니, 이러한 뒤라야 이를 진문장眞文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所謂文章, 避今時而語必襲秦漢之古, 舍東俗而名必倣中國之雅, 其野大矣. 苟得其理, 雖記東方之事, 書東方之物, 用東方之言, 而自不害爲必傳之治文. 則所謂今者, 未必不古, 而所謂俗者, 未必不雅矣. 使如此而傳之蜀, 蜀人一見, 便知其爲東方之文, 傳之閩, 閩人一見, 便知其爲東方之文, 然後斯可謂之眞文章云. (177725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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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목차 / 한시미학 / 연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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