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종, 윤두수 시 평론에 실수를 하다
關外羈懷不自裁 | 변방에서 나그네 회포를 스스로 다잡지 못했는데 |
一春詩興賴官梅 | 봄 내내 시 흥취는 관청의 매화에 의지했었다네. |
日長公館文書靜 | 날은 길고 공관의 문서작업은 뜸한데 |
時有高僧數往來 | 마침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
『소화시평』 권하 9번에선 윤두수의 시를 다루고 있고 홍만종은 이에 대해 ‘시(時)와 삭(數), 두 글자는 말의 뜻이 서로 반대된다[其時ㆍ數二字, 語意相反].’라고 평가를 했다.
홍만종은 위 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발견한다. ‘시(時)와 수(數), 두 글자는 말의 뜻이 서로 반대된다.’고 본 것이다. 물론 두 글자엔 상반된 의미가 담겨져 있긴 하다. 시(時)엔 간헐적으로라는 뜻이, 삭(數)엔 자주라는 뜻이 있으니 홍만종이 저렇게 해석한 것도 전혀 문제는 되지 않는다. 홍만종의 해석방법대로 해석해보면 아래와 같다.
時有高僧數往來 | 때때로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두 시어가 충돌하는 상황이 되니, ‘이렇게 기본도 안 된 시를 지었단 말야’라는 황당한 기분이 들 법도 하고 그러니 당연히 ‘허균은 왜 이런 기본도 안 된 시를 자신의 시선집에 넣기까지 했던 거지?’라는 불평까지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한자엔 여러 가지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비율의 한자들엔 아예 상반되는 의미가 담겨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한문을 해석할 땐 더욱 더 일반론에 갇힐 게 아니라 신중을 기하며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보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첫 번째 문제점은 여기서 기인한다. 바로 이런 상황이라면 ‘時 : 數’의 관계를 상반되는 의미를 담은 글자로 보지 않아야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더욱이 한시처럼 글자수가 제한된 경우엔 더욱 글자 한 자 한 자를 최대한 고민하여 쓰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아예 이곳을 위에서 의미 풀이를 할 때 해석했던 것처럼 해석해줬었다.
時有高僧數往來 | 마침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내용상으로도, 한자 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처음에 얘기했다시피 판본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오음유고(梧陰遺稿)』에 실린 시를 보면 아예 ‘시(時)→유(惟)’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석은 아래와 같이 바뀐다.
惟有高僧數往來 | 오직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
그러면 ‘공무가 한가할 때 오직 쌍익스님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했었죠’라는 내용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예 홍만종의 문제제기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 원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판본부터 확정지어야 하며 그럴 때 중요한 건 그게 공인된 판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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