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기보다 가난한 한가함으로
불우헌기(不憂軒記)
정극인(丁克仁)
한가함이 없으면 근심이 있다
軒以不憂名, 志閒也. 人之於世, 無閒則有憂, 有閒則無憂, 從古則然.
堯以不得舜, 爲己憂, 舜以不得禹皐陶, 爲己憂, 是爲天下得人而憂之也. 孔子之去魯曰: “遲遲吾行.” 孟子之去齊, 則三宿出晝, 是行道濟時而憂之也.
태산군의 한 거사가 한가로움을 얻어 근심도 사라지다
古泰山郡, 有一居士, 其學則涉獵乎經史, 其志則師友乎聖賢, 再上疏闢異端, 依乎中庸矣. 由蓮榜捷丁科, 儒者氣像矣, 錄原從二等, 蔭子孫宥後世承天寵也. 四成均注簿, 再宗學博士, 文臣職也; 乘驄馬, 坐霜臺, 風憲之餘光也; 量田三, 敎授三, 儒林之腐者也. 浮雲乎身世, 弊屣乎軒冕, 藏器於身, 見幾而作, 欣欣然囂囂然, 朝夕於斯焉, 起居於斯焉. 奴耕婢織, 足以代其勞, 父慈子孝, 足以厚其倫, 不聞宦海之浮沈, 焉知世道之升降? 天高地下間, 一閒人也, 夫何憂哉?
古之人不云乎? 駟馬高車, 其憂甚大, 富貴之畏人, 不如貧賤之肆志焉, 其不憂軒上人之謂乎? 『不憂軒集』 卷二
▲ 정선(鄭敾), 「만천풍우(滿天風雨)」, 18세기, 20X24.5cm, 고려대박물관
해석
한가함이 없으면 근심이 있다
軒以不憂名, 志閒也.
집[軒]을 불우(不憂)라고 이름한 것은 한가함을 기록하려 해서다.
人之於世, 無閒則有憂, 有閒則無憂, 從古則然.
사람이 세상에 있어서 한가하지 않으면 근심이 있고 한가함이 있으면 근심이 없으니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다.
堯以不得舜, 爲己憂, 舜以不得禹皐陶, 爲己憂, 是爲天下得人而憂之也.
요 임금은 순(舜)을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고 순 임금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음을 근심한 것이다.
孔子之去魯曰: “遲遲吾行.” 孟子之去齊, 則三宿出晝, 是行道濟時而憂之也.
공자가 노(魯)나라를 떠나면서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걸음이여.”라고 말했고,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때 사흘 자고 주읍(晝邑)을 떠났으니 이것은 도를 실행하고 시대를 구제함을 근심한 것이다.
태산군의 한 거사가 한가로움을 얻어 근심도 사라지다
古泰山郡, 有一居士, 其學則涉獵乎經史, 其志則師友乎聖賢, 再上疏闢異端, 依乎中庸矣.
옛 태산군(泰山郡, 현재의 정읍)의 어떤 한 거사(居士)가 학문은 경전과 역사서를 섭렵했고 의지는 성인과 현인을 벗삼을 정도인데 두 번 이단을 물리치는 걸 상소하니 중용(中庸)에 의지한 것이었다.
由蓮榜捷丁科, 儒者氣像矣, 錄原從二等, 蔭子孫宥後世承天寵也.
연방(蓮榜)【연방(蓮榜): 조선 시대 생원과, 진사시의 향시(鄕試)와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의 명부.】을 거쳐 정과(丁科)에 도달하니 유학자의 기상이었고 원종(原從)【원종(原從): 공신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사호(賜號)로 임금의 잠저(潛邸) 때부터 시종해 온 공로가 있는 자에게 부여됨. 】 2등에 기록되어 자손을 음직을 받게 했고 후세을 돕게 했으니 임금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四成均注簿, 再宗學博士, 文臣職也; 乘驄馬, 坐霜臺, 風憲之餘光也; 量田三, 敎授三, 儒林之腐者也.
네 번 성균관의 주부(注簿)와 두 번 종학박사(宗學博士)【종학박사(宗學博士): 조선 초기, 종학(宗學)의 교수관(敎授官). 성균관(成均館)의 관원이 겸하였다. 】를 했으니 문신의 직책이었고 총마(驄馬)를 타고 상대(霜臺, 사헌부의 별칭)에 앉았으니, 풍헌(風憲, 사헌부의 관원)의 남은 빛이었으며 세 번 양전관(量田官)【토지를 측량하는 관리】과 세 번 교수직을 했으니 유림(儒林)의 쓸모 없는 것이었다.
浮雲乎身世, 弊屣乎軒冕, 藏器於身, 見幾而作, 欣欣然囂囂然, 朝夕於斯焉, 起居於斯焉.
신세를 뜬구름 같이 하고 높은 관직[軒冕]을 해진 짚신처럼 여기며 기량을 몸에 숨긴 채 기미를 보고 일어나 기뻐하고 자득하며 여기에서 아침저녁으로 지내고 여기에서 기거한다.
奴耕婢織, 足以代其勞, 父慈子孝, 足以厚其倫, 不聞宦海之浮沈, 焉知世道之升降?
남자 머슴은 밭 갈고 여자 머슴은 베 짜서 수고로움을 대신할 만 하고 아버지는 사랑하고 아들은 효도하니 인륜을 도톰하게 할 만하며 벼슬 바다의 뜨고 잠김을 듣지 못했으니 어찌 세상 다스리는 도리의 오르고 내림을 알겠는가?
天高地下間, 一閒人也, 夫何憂哉?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 사이에 한 명의 한가로운 사람이 무에 걱정하리오?
古之人不云乎? 駟馬高車, 其憂甚大, 富貴之畏人, 不如貧賤之肆志焉, 其不憂軒上人之謂乎? 『不憂軒集』 卷二
옛 사람인 상산사호가 「자지가(紫芝歌)」에서 ‘사두 마차와 높은 마차 타면 걱정됨이 매우 커지니 부귀해서 남을 두려워하는 것은 빈천해서 뜻을 멋대로 하는 것만 못하지’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것이 불우헌(不憂軒) 상인(上人)이 말하는 것이리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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