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 살고 싶었지만 죽어야만 했던 향랑의 삶
善山百姓家 有女曰香娘 | 선산의 백성집에 딸이 있으니 이름은 향랑으로 |
性情和且柔 顔貌潔且方 | 성정이 온화하고 유하며 외모는 깔끔하고 반듯했다. |
嬉戱三四歲 不與男子遊 | 3~4살 때 놀 적에 남자 아이와 함께 놀지 않았는데 |
弱年哭慈母 後母多愆尤 | 어릴 때 친 엄마를 잃었고 계모는 성깔이 사나워, |
罵之如奴婢 毆之如馬牛 | 노비처럼 욕하고 마소처럼 두드려 팼다. |
爲女當如何 低頭隨所爲 | 딸이라면 마땅히 어찌해야 하나 고개를 숙이고 하는 대로 따를 뿐이다. |
及長嫁林氏 慼慼憂不弛 | 장성하여 임씨네 집에 시집갔으니 걱정 근심【慼慼: 슬퍼하고 근심하는 모습】이 풀어지지 않아 |
翁姑雖憐娘 夫心不如斯 | 시아버지는 비록 향랑을 애달파하나 남편의 마음은 이렇진 않아서 |
炊飯謂有沙 縫衣謂不愜 | 밥을 지으면 “모래 섞였다”고 말하고 옷을 기우면 “부족해”라고 말했다. |
娘雖百姓女 頗識古人法 | 향랑은 비록 백성의 딸이더라도 매우 옛 사람의 법을 알아 |
恭順爲賢女 不然爲惡婦 | 공순히 하면 어진 아내가 되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악처가 되었을 걸. |
謹心承夫意 夫曰不可久 | 마음을 삼가 남편의 뜻을 받들었지만 남편은 “오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
頗聞云云說 以我他人嫁 | 자주 이러쿵저러쿵 말 듣다가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라 하니 |
欲生生何喜 不如死之可 | 살고자 하나 사는 게 무에 기쁘겠으리오. 죽어 옳은 것만 못하다. |
九月初六日 痛哭砥柱碑 | 9월 6일에 지주비【砥柱碑: 조선 宣祖 14년(1586) 仁同縣監 柳雲龍이 監司 李山甫와 善山府使 柳德粹의 도움을 받아 善山에 세운 고려 충신 冶隱 吉再의 遺蹟碑. 前面은 중국 사람 楊晴天이 ‘砥柱中流’라 쓰고, 陰記는 柳成龍이 썼다. 『冶隱集』 下卷 「砥柱碑陰記」 『西厓集』 「碑碣ㆍ年譜」】에서 통곡하니 |
死當明白死 我死誰當知 | 죽더라도 마땅히 명백히 죽어야 하나 나의 죽음 누가 마땅히 알랴. |
采薪誰家女 有意看我哭 | 나무 채취하던 누구 집 딸, 뜻이 있어 나의 통곡함을 보았으니 |
逢汝亦天憐 我言詳記錄 | 너를 만난 것 또한 하늘이 가련히 여긴 것으로 나의 말 자세히 기록해다오. |
爾家那邊住 知是同隣曲 | 너의 집 어느 근처인가? 이제 같은 마을임을 알게 됐네. |
欲投池中死 無人知其事 | 못에 빠져 죽으려 했는데 이 일을 사람이 알지 못할까 했지. |
인용
香娘詩: 짓게 된 이유
香娘詩: 善山百姓家~
香娘詩: 吾父朴自新~
香娘詩: 敎汝山花曲~
윤광소 烈女香娘傳
이광정 林烈婦薌娘傳
이광정 薌娘謠
최성대 山有花女歌
신유한 山有花曲
이상정 書林烈婦傳後
이학규 山有花
이안중 山有花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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