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6.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
다음에 소개하려는 시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족부족(足不足)」이란 작품이다. 모두 40구 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족(足)’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중국에서도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 형식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참으로 삶의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송익필(宋翼弼)의 일생 학문이 이 한 수의 시에 무르녹아 있다 해도 조금의 지나침이 없다.
君子如何長自足 |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족하며 |
小人如何長不足 | 소인은 어찌하여 늘 족하지 아니한가. |
不足之足每有餘 |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
足而不足常不足 |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
樂在有餘無不足 |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족하지 않음 없지만 |
憂在不足何時足 |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까. |
安時處順更何憂 | 때에 맞춰 순리로 살면 또 무엇을 근심하리 |
怨天尤人悲不足 |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해도 슬픔은 끝이 없네. |
求在我者無不足 | 내게 있는 것을 구하면 족하지 않음이 없지만 |
求在外者何能足 | 밖에 있는 것을 구하면 어찌 능히 만족하리. |
一瓢之水樂有餘 | 한 표주박의 물로도 즐거움은 남음이 있고 |
萬錢之羞憂不足 | 만금의 진수성찬으로도 근심은 끝이 없네. |
古今至樂在知足 | 고금(古今)의 지극한 즐거움은 족함을 앎에 있나니 |
天下大患在不足 | 천하의 큰 근심은 족함을 알지 못함에 있도다. |
二世高枕望夷宮 | 진(秦) 이세(二世)가 망이궁(望夷宮)서 베게 높이 했을 젠 |
擬盡吾年猶不足 | 죽을 때까지 즐겨도 충분할 줄 알았지. |
唐宗路窮馬嵬坡 | 당(唐) 현종(玄宗)이 마외파(馬嵬坡)에서 길이 막히었을 때 |
謂卜他生曾未足 | 다른 삶을 산다 해도 족하지 않으리라 말했네. |
匹夫一抱知足樂 | 필부의 한 아름도 족함 알면 즐겁고 |
王公富貴還不足 | 왕공의 부귀도 외려 부족하다오. |
天子一坐知不足 | 천자天子의 한 자리도 족한 것은 아닐진대 |
匹夫之貧羨其足 | 필부의 가난은 그 족함 부러워라. |
不足與足皆在己 | 부족함과 족함은 모두 내게 달렸으니 |
外物焉爲足不足 | 외물이 어찌하여 족함과 부족함이 되리오. |
吾年七十臥窮谷 | 내 나이 일흔에 궁곡(窮谷)에 누웠자니 |
人謂不足吾則足 | 남들야 부족타 해도 나는야 족해. |
朝看萬峯生白雲 | 아침에 만 봉우리에서 흰 구름 피어남 보노라면 |
自去自來高致足 |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높은 운치가 족하고, |
暮看滄海吐明月 | 저물녘엔 푸른 바다 밝은 달 토함을 보면 |
浩浩金波眼界足 | 가없는 금물결에 안계(眼界)가 족하도다. |
春有梅花秋有菊 | 봄에는 매화 있고 가을엔 국화 있어 |
代謝無窮幽興足 | 피고 짐이 끝없으니 그윽한 흥취가 족하고 |
一床經書道味深 | 책상 가득 경서(經書)엔 도(道)의 맛이 깊어 있어 |
尙友千古師友足 | 천고(千古)를 벗 삼으니 스승과 벗이 족하네. |
德比先賢雖不足 | 덕(德)은 선현에 비해 비록 부족하지만 |
白髮滿頭年紀足 | 머리 가득 흰 머리털, 나이는 족하도다. |
同吾所樂信有時 | 내 즐길 바 함께 함에 진실로 때가 있어 |
卷藏于身樂已足 | 몸에 책을 간직하니 즐거움이 족하도다. |
俯仰天地能自在 |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능히 자재로우니 |
天之待我亦云足 | 하늘도 나를 보고 족하다고 하겠지. |
달리 무슨 사족(蛇足)이 필요하랴. 다시 확인하거니와 시는 곧 그 사람이다. 굳이 알려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언어가 제 스스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언어가 그 사람의 기상(氣像)을 대변한다는 것은 그 연원이 깊다. 이는 발전하여 말에 정령(精靈)이 깃들여 있다는 언어의식(言靈意識)을 낳기도 했다. 무심히 뱉은 말이 씨가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시화(詩話)에 자주 보이는 ‘시참(詩讖)’이 바로 이를 말한다. 어찌 붓을 함부로 놀릴 것인가. 시인은 모름지기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기를 일이다.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
2. 시로 쓴 자기 소개서
4. 강아지만 반기고
5.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미학,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 -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0) | 2021.12.07 |
---|---|
한시미학,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 - 1.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0) | 2021.12.07 |
한시미학, 12. 시인과 시: 기상론 - 5.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0) | 2021.12.06 |
한시미학, 12. 시인과 시: 기상론 - 4. 강아지만 반기고 (0) | 2021.12.06 |
한시미학, 12. 시인과 시: 기상론 - 3.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