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詩讖論)
1.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人間細事亦參差 | 인간의 잗단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 |
動輒違心莫適宜 | 일마다 어그러져 마땅한 구석 없네. |
盛世家貧妻常侮 |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 |
殘年祿厚妓將追 |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 |
雨陰多是出遊日 | 주룩주룩 비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
天霽皆吾閑坐時 |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
腹飽輟飡逢美肉 | 배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 |
喉瘡忌飮遇深巵 |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
儲珍賤末市高價 |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
宿疾方痊隣有醫 |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집이 의원이라. |
碎小不諧猶類此 | 자질구레 맞지 않음 오히려 이 같으니 |
楊州駕鶴況堪期 | 양주 땅 학 탄 신선 어이 기약하리오. |
이규보(李奎報)의 「위심시(違心詩)」이다. 세상일이 어디 뜻같이만 될까만은, 하는 일마다 하도 박자가 안 맞고 보니 이런 푸념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쉬 떠들 것은 아니다.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고, 농가성진(弄假成眞)의 성어도 있다.
시화를 읽다 보면 시를 보고 그 사람의 출처궁달(出處窮達)을 예견하는 삽화들을 뜻밖에 자주 접하게 된다. 이 가운데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일러 ‘시참(詩讖)’이라고 한다. 대개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됨을 경계한 것이다.
예전 이승만 박사가 ‘남북통일(南北統一)’ 넉 자의 휘호를 하는데, 기세 좋게 나가던 붓질이 마지막 한 일자 한 획을 힘차게 가로 긋는 순간 중간이 반으로 잘리고 말았다. 잘 나가던 붓 끝이 하필이면 한 일자의 가운데 허리에서 두 동강이 났더란 말인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남북 분단의 ‘서참(書讖)’이라고들 말했다. 예전 어느 가수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노래하더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또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라고 노래하더니 실제 그렇게 되고 말았던 일 같은 것은 ‘요참(謠讖)’이다.
人言落日是天涯 | 해 지는 저곳이 하늘가라 말하길래 |
望斷天涯不見家 | 하늘 가 바라봐도 고향 집 뵈지 않네. |
已恨碧山相掩暎 | 푸른 산막아 가려 뵈지 않음 한했는데 |
碧山更被暮雲遮 | 저문 구름 푸른 산을 다시 막아 가리우네. |
당(唐)나라 이구(李覯)의 「사(思)」라는 시다. 해가 지는 저 하늘 끝에 내 고향이 있다. 목을 길게 빼어 바라봐도 고향집은 뵈질 않는다. 나와 하늘 끝 사이에는 푸른 산이 막아 서 있어, 막아 선 푸른 산을 원망하는데 다시 저물녘 구름이 그 산마저 가리워버린다. 기가 턱 막힌다. 홍만종(洪萬宗)은 『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 이 시를 소개하고 나서, “사람들은 이 시가 겹겹으로 막혀 있는 뜻이 있어 때의 운명이 불우할 것을 염려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 말과 같이 되었다 한다”고 하였다.
또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예전 중국의 유명한 기생 설도(薛濤)가 어렸을 때 우물가 오동을 읊은 시를 소개하고 있다.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 가지는 지나는 새 마중을 하고 잎새는 오가는 바람 배웅하누나. |
송나라 때 한 소녀가 들꽃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多情樵牧頻簪髻 | 다정한 목동들이 머리에 즐겨 꽂고 |
無主蜂鶯任宿房 | 주인 없는 꾀꼬리 벌 멋대로 묵어 자네. |
결국 뒤에 모두 기생이 되었는데 대저 시란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 시구가 그의 운명을 이미 예견하였다는 것이다. 설도(薛濤)는 본래 양가의 딸이었다. 우물 가 오동을 읊는다는 것이 하필 오가는 새를 다 기뻐 맞이하고, 지나는 바람마다 잘 가라고 전송한다고 하였을까? 목동과 나무꾼이 제멋대로 머리에 꽂고, 임자 없는 벌과 꾀꼬리가 제 집인 양 묵어 잔다는 소녀의 노래도 역시 화류계(花柳界)로 나갈 그녀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우적(禹弘績)은 일찍부터 재주로 이름이 났는데, 나이 일곱 살에 어른이 노(老)자와 춘(春)자로 연구(聯句)를 짓도록 하였다. 그가 다음과 같이 지었다.
老人頭上雪 春風吹不消 |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 |
여러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지만 식자는 그가 요절할 것을 알았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머리 위에 쌓인 눈이 삶의 근심이 가져다 준 얼룩이라면, 봄바람이 불어와 마땅히 이를 녹여 주어야 옳다. 그런데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이미 녹일 수 없는 삶의 근심을 말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보면 안명세(安名世)가 아홉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진달래를 따서 연적에 끼워 놓고 시를 짓게 하니,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지었다.
杜鵑花一棋 來自碧山中 | 진달래 꽃 한 떨기 푸른 산중에서 와 |
硯滴生涯寄 他鄕旅客同 | 연적에 생애를 부치었으니 타향 나그네 신세와 한 가지로다. |
그의 아버지가 이 시를 보고 울었다. 시에 나타난 뜻이 처량하고 괴로워 멀리 현달할 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뒤에 그는 과연 사화에 연루되어 20대의 젊은 나이에 화를 당하고 말았다.
수찬(修撰) 안수(安璲)가 일찍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地下定無消恨酒 | 지하엔 한 녹여줄 한 잔 술이 없건만 |
人間難得返魂香 | 인간에도 혼 돌려줄 향 얻기 어렵구나. |
이 시를 짓고 얼마 안 있어 그는 병을 얻어 죽었다. 세상 사람들이 시참이라고 생각했다. 『청강시화(淸江詩話)』에 보인다. 지하에는 맺힌 한(恨)을 녹여 줄 한 잔 술이 없고, 인간에는 떠난 넋을 되돌릴 한 촉의 향이 없다 했으니, 그는 지하에도 갈 수 없고 인간에도 돌아올 수 없어 그저 원혼(怨魂)으로 구천(九天)을 맴돌아야 할 처지인 것이다. 도대체 그는 무슨 마음을 먹고 이런 시를 지었을까?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흔히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하여 그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니, 한 구절의 시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궁달(窮達)을 점칠 수가 있다.
양파(陽坡) 정태화(鄭泰和)가 일찍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은 춘첩(春帖)의 끝 구절에 이런 것이 있다.
關西老伯閑無事 | 관서 땅 늙은 수령 한가해 일 없는데 |
醉倚春風點粉紅 | 봄바람에 취해 눕자 분홍 꽃잎 점을 찍네. |
늙은 수령이 일이 없어 한가로우니 태평시절(태평성대를 나타낸 시: 소화시평 상권34, 상권51)이 아니고 무엇인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취흥이 도도하여 슬쩍 기대니 꽃잎은 날려와 옷깃 위에 분홍의 수를 놓는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시는 무한히 좋은 기상이 있으니, 정태화가 사십 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은 모두 이 한 연 가운데 있다고 했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보인다.
정태화(鄭泰和)는 당시 격랑의 조정에서 전후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하루는 정태화(鄭泰和)가 그 아우 정지화(鄭知和)와 함께 사랑에 앉아 있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당시 조대비(趙大妃)의 복제(服制) 문제 등으로 심각한 대립 관계에 있었다. 괄괄한 성품의 정지화(鄭知和)가 “형님! 나 그 자와 마주치기 싫소. 내 저 다락에 올라가 있다가 그 자가 가고 난 뒤 나오리다.”하고는 다락으로 올라가버렸다. 잠시 후 영문을 모르는 우암이 들어와 정태화와 수인사를 나누었다. 원체 입이 무거운 그였으므로 주인이나 손이나 피차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흘렀다. 다락에 숨어 있던 정지화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방에서 소리가 나질 않자 우암이 이미 돌아간 것으로 착각을 했다. “형님! 그 자 갔습니까?” 주객이 말없이 앉아 있는 방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질러 버린 것이었다. 난처해진 정태화는 “아! 아까 왔던 과천서 온 산지기는 돌아가고, 지금 여기 우암 송대감이 와 계시네.”하고 응변으로 둘러대었다. 우암이 돌아간 후 정태화는 아우를 불러 앉혔다. “나는 자네가 내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되어 줄줄 알았네. 그런데 오늘 하는 언동을 보니 영의정 그릇은 아닐세 그려.” 형은 혀를 차며 아우를 준절히 나무랐다. 과연 뒤에 정지화의 벼슬은 우의정에서 그쳤다. 야담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조신준(曺臣俊)은 개성 사람인데 『서경(書經)』을 삼천 번이나 읽었는데도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어렵다는 「요전(堯典)」은 수만 번을 읽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원을 여러 번 지냈고 수직(壽職)으로 정삼품에 올랐다. 그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練水淸如玉 明沙鋪似金 | 비단 같은 강물은 옥인 양 맑고 백사장은 금가루를 뿌린듯 하다. |
誰能挽數斛 淨洗世人心 | 뉘 능히 몇 말을 담아가서는 세상사람 마음을 씻어 주려나. |
옥같이 맑은 강물에 금가루를 뿌린 듯한 백사장. 이 맑은 옥과 금가루를 가득 담아 명리의 탐욕에 찌든 세상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싶다. 참으로 관후장자(寬厚長者)의 넉넉한 마음자리가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또 이런 시도 있다.
晩起家何事 南窓日影移 | 느직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고 남창에 해 그림자 옮겨 왔구나. |
呼兒覓紙筆 閑寫夜來詩 | 아이 불러 종이 붓 찾아와서는 간밤에 지은 시를 한가히 쓴다. |
늦게 일어난 것은 간밤 시상(詩想)이 해맑아 새벽까지 잠을 설친 까닭이다. 남창에 해가 들었으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떴다.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불러 먹을 간다. 깨끗한 종이를 펼쳐 놓고, 간밤 고심한 시구들을 정갈하게 옮겨 적는다. 한가롭고 구김살이 없다.
신혼(申混)이란 이가 안주(安州) 교수(敎授)로 있다가 교리(校理) 벼슬을 제수 받고는 송도를 지나는 길에 조신준(曺臣俊)의 집에 들러 시를 구하니, 조신준은 즉석에서 이런 시를 지어 주었다.
仙官瑤籍逸群才 | 요적(瑤籍) 오른 선관(仙官)이라 그 재주 빼어난데 |
何事翩然下界來 | 어인 일로 번드쳐 인간 세상 내려 왔나. |
跨鶴鞭鸞歸路近 | 학 타고 난새 모니 돌아갈 길 가깝도다 |
五雲多處是蓬萊 | 오색구름 피어나는 그곳이 봉래라오. |
한미한 지방관으로 고생하던 그대가 중앙 부서에 승진되어 가니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신혼(申混)이 사례하고 떠나갔다. 조신준이 다시 한 번 읽어 보고는 놀라 말하기를, “이 시는 신혼의 만사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신혼은 서울로 돌아간 지 몇 개월 만에 죽었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나온다.
전생에 천상 선관(仙官)이었던 그대가 적선(謫仙)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나, 이제 곧 귀양살이가 끝나 학 타고 난새 수레를 몰아 오색구름 피어나는 봉래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니, 꼭 너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 셈이 된다. 어째서 무심코 좋은 뜻으로 지어준 시가 이리 되었을까? 알지 못할 일이다.
최전(崔澱)은 소년 시절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관동 땅을 유람하면서 시를 지었다.
蓬壺一入三千年 | 봉래도 한 번 든 지 삼천년이 흘렀어도 |
銀海茫茫水淸淺 | 은빛 바다 아득하고 물결은 맑고 얕다. |
鸞笙今日獨歸來 | 난새의 피리 속에 오늘 홀로 돌아오니 |
碧桃花下無人見 | 벽도화 꽃 아래에 보이는 사람 없다. |
홀로 돌아왔지만 보이는 사람 없다는 말이 시참이 되어, 그는 나이 20세쯤에 일찍 죽고 말았다. 시어에 자못 귀기(鬼氣)가 서려 있다. 이 예화는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전한다.
허균(許筠)이 죄를 입어 갑산(甲山)으로 귀양 갈 때 친구들과 이별하는 시를 지었다.
深樹啼鴉薄暮時 | 까마귀 우는 숲에 엷은 어둠 깔려 올 제 |
一壺來慰楚臣悲 | 한 병 술로 귀양 슬픔 와서 위로 하는구려. |
此生相見應無日 | 이 인생 살아서는 다시 볼 날 없으리 |
直指重泉作後期 | 황천 길 가리키며 뒷 기약 남기노라. |
살아서는 다시 볼 날이 없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황천길을 가리키며 뒷기약을 남긴다니 완전히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 말이 아닌가? 어찌 이런 말을 했더란 말인가. 이 예화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전한다.
다시 홍만종(洪萬宗)의 『시평보유(詩評補遺)』에는 허균(許筠)이 갑산(甲山) 귀양지에서 지었다는 시가 실려 있다.
春來三見洛陽書 | 봄 들어 세 번째로 서울 편지 받아보니 |
聞說慈親久倚閭 | 어머님은 문 기대어 나를 기다리신다네. |
白髮滿頭斜景短 | 짧은 저녁 빛에 흰 머리 날리시리 |
逢人不敢問何如 | 어머님 어떠시던고 감히 묻지 못했네. |
봄 들어서만도 서울 소식은 세 번째로 날아들었다. 변방에서 고생하는 자식 걱정에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아예 마을 문에 나서 자식 돌아올 날 만을 기다리신다는 전언이다. 기우는 인생의 황혼에 자식의 봉양을 받으며 안온한 노경을 보내셔도 시원찮을 텐데 흰 머리의 노인께 이 무슨 막심한 불효란 말인가. 편지를 들고 온 사람에게 차마 어머님의 근황은 물어보지도 못했다. 뒤에 그는 비록 사면되어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앞서의 시가 시참이 되어 결국 성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길에서 죽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이항복(李恒福)이 인목대비 폐출을 간한 일로 귀양 갈 때에 시 한 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白日陰陰晝晦微 | 밝은 해 그늘져 대낮에도 희미하고 |
朔風吹裂遠征衣 | 북풍은 나그네 옷 찢을 듯 불어댄다. |
遼東城郭應依舊 | 요동 땅 성곽이야 그대로 있겠지만 |
只恐令威去不歸 | 떠나간 정령위(丁令威) 안 돌아옴 근심하네. |
대낮인데도 음음(陰陰)한 백일은 간신배의 교언영색에 이목의 총명을 잃은 임금의 암유일 터이고, 나그네 옷을 찢는 북풍은 국모(國母)를 내친 강상(綱常)의 변고를 질책함이다. 요동 사람 정령위는 신선술을 깨쳐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 800년 만에 학이 되어 돌아와 옛 살던 자취를 찾아보니, 즐비한 무덤만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허망하고 처량해서 길게 목을 빼어 울고는 그는 다시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때 그 학이 울었다는 화표주(華表柱)와 성곽의 자취는 지금도 그대로건만은 한번 간 정령위는 다시는 오질 않는 것이다. 이 시를 듣고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항복은 귀양 가서 얼마 안 있다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시참이라고 말했다. 『정창연담(晴窓軟淡)』에 나온다.
3. 대궐 버들 푸르른데
還笑遊人心大躁 | 우습다 벗님네들 마음 너무 조급해 |
一來欲上最高峰 | 단번에 최고봉에 오르려 하는 도다. |
望欲遠時愁更遠 | 멀리 바라보자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 |
登高莫上最高峰 |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지니라. |
앞의 것은 진화(陳澕)의 시이고, 뒤의 것은 정도전(鄭道傳)의 시이다. 같은 운으로 함께 ‘최고봉(最高峰)’을 노래하였다. 정상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산을 오른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할 것이 아닌가. 왜들 저리 조급하단 말인가. 이것이 진화 시가 말하고 있는 뜻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던가. 그러나 높이 올라 멀리 볼수록 자신의 왜소를 더 깨달을 뿐이니, 굳이 끝장을 보려 하지 말라. 최고봉은 아껴 두라. 이것은 정도전의 말이다.
이 두 사람의 시를 두고 이수광(李晬光)은 이렇게 말한다.
진화의 시는 말이 몹시 박절하여 남은 맛이 없으니 그가 멀리 이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정도전의 시는 마치 만족함을 아는 것 같았으나 나가기를 탐내어 그칠 줄 모르다가 스스로 화를 입었으니 역시 말할 것이 못 된다
陳作太迫無餘味, 其不能遠到宜矣. 道傳似知足者, 而貪進不止, 卒以自禍, 亦不足道也.
그런데 이제현(李齊賢)의 「등곡령(登鵠嶺)」은 다음과 같다.
烟生渴咽汗如流 | 마른 입 입김 불며 땀은 비오 듯이 |
十步眞成八九休 | 열 걸음에 참으로 여다홉 번 쉬어가네. |
莫怪後來當面過 | 뒤 오던 이 앞서감을 괴이하게 생각 말라 |
徐行終亦到山頭 | 느릿 가도 마침내는 산마루에 이를지니. |
그 조급을 모르는 원대한 기상을 볼 수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하나 더 있다. 권필(權韠)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安得世間無限酒 | 어찌하면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
獨登天下最高樓 |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 |
성혼(成渾)이 이를 듣고,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하였으니, 심히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위언(危言)이다.”라고 말하였다. 뒤에 그는 과연 시안(詩案)에 걸려 죽었다. 『시평보유(詩評補遺)』에 나온다.
권필(權韠)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시안(詩案)의 전말은 이러하다. 1611년(광해 3) 봄 전시(殿試)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포의의 선비 임숙영(任叔英)이 대책(對策)에서 외척의 교만 방자함과 후비(后妃)가 정사에 간여함을 직척(直斥)한 글을 올렸다. 이를 본 광해군이 격노하여 그의 과거 급제를 취소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권필은 분개하여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란 시를 지어 이 일을 풍자하였다.
宮柳靑靑花亂飛 | 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날리는데 |
滿城冠蓋媚春暉 | 성 가득 벼슬아친 봄볕에 아양떠네. |
朝家共賀昇平樂 | 조정에선 입을 모아 태평세월 즐거움 하례하는데 |
誰遣危言出布衣 | 뉘 시켜 포의의 입에서 바른 말 나오게 하였나. |
당시 왕비는 유자신(柳自新)의 딸 유씨였는데, 그의 아우 유희분(柳希奮)ㆍ유희발(柳希發) 등 외척들이 그 권세를 믿고 전횡을 일삼아 원성을 사고 있던 즈음이었다. 때문에 첫 구의 ‘궁류(宮柳)’는 중전 유씨(柳氏)를, ‘청청(靑靑)’은 그 득세의 형용을 뜻하는 것으로 대뜸 받아들여졌다. 또 2구의 ‘춘휘(春暉)’는 임금을 뜻하고, ‘미(媚)’는 임금을 향한 아첨으로 이해되었다.
이듬해 봄 2월에는 또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자의 문서를 조사해 보니, 권필(權韠)의 이 시가 한 관련자의 책 겉장에 써있는 것이 나왔다. 광해군이 읽고는 대노하여 전교하기를, “권필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감히 시를 지어 제멋대로 풍자하였으니, 그 무군부도(無君不道)의 죄가 크다. 마땅히 하나하나 추문(推問)하리라”하였다. 이에 권필은 광해 앞에 끌려 와 홍초(供招)를 받게 되는데, 왕은 극도로 격앙되어 궁유(宮柳)가 외척을 모독한 것이 아니냐며 힐문하였다. 이에 권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임숙영이 전시 대책에서 광망한 말을 많이 하였으나, 신이 이 시를 지은 큰 뜻은 좋은 경치가 이와 같다면 사람마다 뜻을 얻어 행할 일이지, 숙영이 포의로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 같은 바른 말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사옵니다.
대저 옛날의 시인은 흥(興)에 기탁하여 풍간한 일이 있었으므로 신이 이를 본받아서, 숙영이 포의임에도 감히 이와 같이 말하였건만 조정에는 바른 말하는 자가 없으므로 이 시를 지어 제공을 규풍하여 힘쓰는 바가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궁류’ 두 글자는 당초 왕원지(王元之)의 「전시서(殿試詩)」 가운데 ‘대궐 버들 삼월 아지랑이 속에 낮게 드리웠네[宮柳低垂三月烟].’란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시를 보는 자가 시 가운데 ‘유(柳)’자가 있는 때문에 바로 외척을 지척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지, 신의 본뜻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任叔英殿策, 多發狂言, 身臣作此詩, 大意‘好景如此, 而人人得意而行, 叔英以布衣, 何爲如此危言乎?’
大抵古之詩人, 有托興規諷之事, 故臣欲倣此爲之, 以爲: ‘叔英以布衣, 敢言如此, 而朝廷無有直言者’, 故作此詩, 規諷諸公, 冀有所勉勵矣. ‘宮柳’二字, 初取王元之「殿試詩」‘宮柳低垂三月煙’之句, 而見詩者以詩中有柳字, 故直謂指斥戚里云, 身 臣本情則不然.
이에 왕은 더욱 격노하였고, 혹독한 형벌로 석주를 신문하였다. 당시 대신으로 있던 이덕형(李德馨)과 이항복(李恒福)ㆍ최유원(崔有遠) 등이 역옥(逆獄)과 연루되지 않은 무관한 일로 신문함은 성덕(聖德)에 누가 될 뿐 아니라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두 번 세 번 사하여 줄 것을 울며 논하였으나 왕은 끝내 혹독한 매질을 하여 가두고 말았다. 그날 밤 초주검이 된 그에게 대신들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함경도 경원 땅으로 귀양 보낸다는 전교가 내렸다. 『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이다.
이튿날 권필은 혹독한 형벌로 인해 들것에 실려 동대문을 나섰다. 그는 평소 몸이 약했던 데다 상처가 심해 바로 발행하지 못하고 동대문 밖 민가에 머물고 있다가 벗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시고 장독(杖毒)이 솟구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시참(詩讖)이 전해진다. 처음 민가에 머물 때 주인 집 문짝에 시가 한 수 써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三月將盡四月來 | 삼월도 다 가고 사월이 오려는데 |
桃花亂落如紅雨 | 복사꽃만 붉은 비인 양 어지러이 떠지네. |
勸君更進一盃酒 | 그대에게 한 잔 술 다시금 권하노라 |
酒不到劉伶墳上土 | 술도 유령(劉伶)의 무덤 위에는 이르지 못하리니. |
그런데 시를 써놓은 사람이 첫 구의 ‘권(勸)’을 ‘권(權)’으로, 2구의 ‘유(劉)’를 ‘유(柳)’로 각각 잘못 써 놓았다. 이렇게 바꿔 쓰고 보니 그 내용이 흡사 권필(權韠)이 유씨(柳氏)에게 한잔 술을 올리지만 그 술을 유(柳)가 받지 않는 꼴이 되었다. 이를 본 권필은 “이것은 시참이다. 내가 죽겠구나”하고 탄식하였다. 혹은 그가 술에 취해 이튿날 죽자, 주인 집 문짝을 뜯어 시상(尸床)으로 하였는데 그 문짝 위에 이 시가 쓰여 있었다고도 한다. 그때 마침 주인 집 담장 밖에 복사꽃이 반쯤 져서 시 속의 묘사와 방불했었다고 기록이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원근이 기운이 잃었다”고 하였고, 광해 또한 “하룻밤 사이에 어찌 갑자기 죽었단 말인가?”하면서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다. 이항복은 늘 한탄하며 “우리가 정승 자리에 있었으면서 한 사람 권필(權韠)을 능히 살리지 못하였으니, 선비 죽인 책임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곤 하였다. 대개 이것이 권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의 시말이다. 바른 말을 했다 하여 임금이 매질하여 한 시인의 목숨을 앗아갔던 이 일은 뒤에 인조반정의 한 빌미를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권필이 광해 앞에 끌려가기 며칠 전 「춘일우제(春日偶題)」란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내용이 또한 심상치 않았다.
老去仍多病 生涯任陸沈 | 늙어 가매 병만 늘어가는데 생애를 티끌 세상에 내맡겨두네. |
雲山千里夢 霜鬢百年心 | 천리 먼 꿈속엔 구름에 잠긴 산 백년의 마음은 서리 센 살적일레. |
曉雨鶯聲滑 春江柳色深 | 새벽 비에 꾀꼬리 소린 매끄러웁고 봄 강의 버들 빛은 깊어만 가네. |
如何艶陽節 悄悄動悲吟 | 이렇듯 아름답고 좋은 시절에 어찌하여 구슬피 읊조리는가. |
시의 정조로 보아 권필(權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만 여겨진다. 이 시의 5ㆍ6구에서 그는 새벽 비에 씻겨 매끄러운 꾀꼬리의 소리와 봄날 강가에 휘 늘어진 짙은 버들 빛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는 봄날 약동하는 대지의 생기를 노래한 것으로 들리지 않고, 임숙영의 직척(直斥)과 자신의 풍유에도 불구하고 꾀꼬리, 즉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황금의 난무는 더욱 기세가 드세져만 가고 버들 빛, 곧 류씨의 세도와 권세는 한층 도도해져만 가는 현실에 대한 암유(暗喩)로 읽힌다. 그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시인은 계절의 아름다움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만 구슬픈 생각에 자조의 나락 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비명에 죽었다.
4.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나식(羅湜)은 시사(時事)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과거를 보지 않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는데 힘썼다. 그러나 정미년에 벽서(壁書)의 화가 일어나자 그의 형 나숙(羅淑)과 함께 화를 당했다. 일찍이 역귀를 쫓는 소리를 듣고 시를 지었다.
儺鼓鼕鼕動四閭 | 역귀 쫓는 북소리 온 마을에 울리니 |
東驅西逐勢紛如 | 이리저리 쫓는 소리 그 형세 어지럽다. |
年年聞汝徒添白 | 해마다 들었어도 흰 머리만 늘었구나 |
海內何曾一鬼除 | 나라 안의 한 귀신을 제거함 있었던가. |
구나(驅儺)의 의식을 묘사했는데, 해마다 그렇듯 열심히 역귀를 쫓았건만 정작 없애야 마땅할 나라 안의 한 귀신을 몰아내지 못해, 그 근심으로 흰 머리만 날로 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4구에서 말한 ‘나라 안의 한 귀신’은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바가 있었으므로 읽는 이들이 두려워하였다. 그 말뜻이 너무 드러나서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박수량(朴守良)은 강릉사람이다. 용궁현감(龍宮縣監)으로 있다가 고향에 물러나 은거하였다. 충암(沖菴) 김정(金淨)이 금강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들러 시 한 수와 함께 철쭉 지팡이를 주었다.
萬玉疊巖裏 九秋霜雪枝 | 옥 같은 일만 봉 쌓인 바위 속 가을의 눈서리 견딘 가지라. |
持來贈君子 歲晩是心知 | 가져와 그대에게 드리옵느니 저문 해에 이 마음 알아주소서. |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상설(霜雪)로 벗을 삼느라 외틀어지고 구부러진 가지로 만든 지팡이니,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는 뜻을 알겠는가? 박수량(朴守良)이 화답하였다.
似嫌直先伐 故爲曲其枝 | 곧아 먼저 베임을 싫어해선가 그 가지 일부러 구부렸구나. |
直性猶存內 那能免斧斤 | 곧은 성품 그래도 그 속에 있어 도끼질 면하기 어려웠도다. |
곧은 나무는 금새 도끼에 찍혀 재목이 된다. 그 가지를 일부러 구부림은 베임의 화를 면키 위해서였다. 그래도 곧은 성품은 감추지 못해 끝내 지팡이 감이 되어 도끼질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에게 화를 피할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정(金淨)은 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면하지 못했으니 애석하다. 또한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성여학(成汝學)은 시재(詩才)가 높아 일세에 대적할 사람이 적었는데도 늦도록 벼슬 한자리 못했다. 양경우(梁慶遇)의 『제호시화(霽湖詩話)』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일찍이 그의 집에 왕래한 적이 있었는데, 보면 늘 찢어진 옷에다 찌그러진 갓을 쓰고 있었으며, 귀밑머리는 더부룩하고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 홀로 한 칸의 서재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정말로 한 세상의 곤궁한 선비였다.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성여학 때문에 나온 말인가 싶다.
余嘗往來其家, 每見其破衣矮巾, 滿鬢衰髮, 獨依一間書齋, 盡日授書童子, 眞一世之窮士. 詩能窮人者, 殆爲成敎授而發也.
그의 시에 보면 다음과 같다.
露草蟲聲濕 風枝鳥夢危 | 이슬 풀에 벌레 소리 촉촉 젖었고 바람 가지 새의 꿈도 위태롭구나. |
雨意偏侵夢 秋光欲染詩 | 빗 기운 꿈길을 적시어 들고 가을 볕 내 시에 물을 들이네. |
그 말은 비록 매우 공교로우나, 춥고 쓸쓸한 것이 영달하고 귀하게 될 사람의 기상이 아니다. 어찌 유독 시만이 그를 궁하게 만들었겠는가? 시 또한 그의 궁함을 하소연한 것이다.
유몽인(柳夢寅)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만물을 빚어내어 그 형체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의 재주이다. 조화(造化)를 따라 만물의 형상을 잘 본뜨는 것은 시인의 재주이다. 하늘보다 더 공교로운 것은 없는데 시인이 어찌 하늘의 공교로움을 빼앗을 수 있다는 말인가? 재능 있는 자는 운수가 사나운데, 이는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하늘이 또한 시기심이 많음을 알 수가 있다. 재주를 주고서는 어이하여 다시 궁하게 한단 말인가?
夫雕鏤萬物, 使萬物各賦其形者, 天之才也; 擺弄造化, 能放象萬物之態者, 詩人之才也. 惟莫工者天, 而何物詩人, 奪天之工哉? 是知才者無命, 是天之所使, 天亦多猜也乎. 旣賦之才, 胡使之窮哉.
또 이정면(李廷冕)이란 사림이 있는데, 이홍남(李洪男)의 손자이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에 헌 데가 있어 단사(短㾴)라고 자칭하였다. 일찍이 그가 비 갠 뒤에 시를 지었다.
庭泥橫斷蚓 壁日聚寒蠅 | 뜰 진흙에 잘린 지렁이 가로 놓였고 벽에 비친 햇볕에 가을 파리 모여드네. |
이춘영(李春英)이 늘 그 시의 묘함을 칭찬하면서도 그 궁함을 싫어했는데, 뒤에 등과한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진흙 위에 허리가 잘린 지렁이의 형국이나, 짧은 가을 햇볕을 쬐자고 벽에 몰려든 가을 파리의 형국은 참으로 궁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대개 ‘정니(庭泥)’와 ‘단인(斷蚓)’은 천하게 될 징조였고, ‘벽일(壁日)’과 ‘한승(寒蠅)’은 요절의 징조였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그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宦遊千里甘蔗盡 | 천리라 벼슬길은 단 맛이 다하였고 |
世事一春落花忙 | 한 봄날 세상일은 지는 꽃만 바쁘도다. |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칭찬하였다. 다만 유몽인(柳夢寅)은 “나이 어린 사람이 어찌 이런 말을 짓는가[年少人何作此語]?”고 나무랐는데, 과연 오래지 않아 요절하고 말았다. 환한 봄날에 하필 떨어지는 꽃잎의 분망함을 말하며, 아직 벼슬에 올라보지도 않아 놓고 무슨 다해 버린 벼슬길의 단맛을 말했더란 말인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유몽인(柳夢寅)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시라는 것은 성정의 허령(虛靈)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먼저 요(夭)와 천(賤)을 알아 생각이 솟아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이니,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궁한 까닭에 시가 저절로 이와 같은 것이다. 다만 재주 있는 사람은 하늘이 또한 시기하나니 세상 사람을 또 어찌 허물하겠는가? 슬프다.
吁! 詩者, 出自情性虛靈之府, 先識夭賤, 油然而發, 不期然而然, 非詩能窮, 人窮也, 故詩者如斯哉. 但有才者, 天亦猜之, 於世人, 又何尤焉, 惜哉!
이상 역대 시화에 보이는 시참(詩讖)과 관련된 예화를 중심으로 옛 사람들의 언령(言靈) 의식을 살펴보았다. 말에는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 입에서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닌 것처럼, 생각도 없이 되는대로 쓴 한 편의 시가 어느 날 재앙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법이다. 말 한 마디, 시 한 구절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어찌 함부로 붓을 놀릴 것이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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