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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 -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 -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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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흔히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하여 그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니, 한 구절의 시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궁달(窮達)을 점칠 수가 있다.

 

양파(陽坡) 정태화(鄭泰和)가 일찍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은 춘첩(春帖)의 끝 구절에 이런 것이 있다.

 

關西老伯閑無事 관서 땅 늙은 수령 한가해 일 없는데
醉倚春風點粉紅 봄바람에 취해 눕자 분홍 꽃잎 점을 찍네.

 

늙은 수령이 일이 없어 한가로우니 태평시절(태평성대를 나타낸 시: 소화시평 상권34, 상권51)이 아니고 무엇인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취흥이 도도하여 슬쩍 기대니 꽃잎은 날려와 옷깃 위에 분홍의 수를 놓는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시는 무한히 좋은 기상이 있으니, 정태화가 사십 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은 모두 이 한 연 가운데 있다고 했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보인다.

 

정태화(鄭泰和)는 당시 격랑의 조정에서 전후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하루는 정태화(鄭泰和)가 그 아우 정지화(鄭知和)와 함께 사랑에 앉아 있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당시 조대비(趙大妃)의 복제(服制) 문제 등으로 심각한 대립 관계에 있었다. 괄괄한 성품의 정지화(鄭知和)형님! 나 그 자와 마주치기 싫소. 내 저 다락에 올라가 있다가 그 자가 가고 난 뒤 나오리다.”하고는 다락으로 올라가버렸다. 잠시 후 영문을 모르는 우암이 들어와 정태화와 수인사를 나누었다. 원체 입이 무거운 그였으므로 주인이나 손이나 피차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흘렀다. 다락에 숨어 있던 정지화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방에서 소리가 나질 않자 우암이 이미 돌아간 것으로 착각을 했다. “형님! 그 자 갔습니까?” 주객이 말없이 앉아 있는 방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질러 버린 것이었다. 난처해진 정태화는 ! 아까 왔던 과천서 온 산지기는 돌아가고, 지금 여기 우암 송대감이 와 계시네.”하고 응변으로 둘러대었다. 우암이 돌아간 후 정태화는 아우를 불러 앉혔다. “나는 자네가 내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되어 줄줄 알았네. 그런데 오늘 하는 언동을 보니 영의정 그릇은 아닐세 그려.” 형은 혀를 차며 아우를 준절히 나무랐다. 과연 뒤에 정지화의 벼슬은 우의정에서 그쳤다. 야담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조신준(曺臣俊)은 개성 사람인데 서경(書經)을 삼천 번이나 읽었는데도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어렵다는 요전(堯典)은 수만 번을 읽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원을 여러 번 지냈고 수직(壽職)으로 정삼품에 올랐다. 그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練水淸如玉 明沙鋪似金 비단 같은 강물은 옥인 양 맑고 백사장은 금가루를 뿌린듯 하다.
誰能挽數斛 淨洗世人心 뉘 능히 몇 말을 담아가서는 세상사람 마음을 씻어 주려나.

 

옥같이 맑은 강물에 금가루를 뿌린 듯한 백사장. 이 맑은 옥과 금가루를 가득 담아 명리의 탐욕에 찌든 세상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싶다. 참으로 관후장자(寬厚長者)의 넉넉한 마음자리가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또 이런 시도 있다.

 

晩起家何事 南窓日影移 느직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고 남창에 해 그림자 옮겨 왔구나.
呼兒覓紙筆 閑寫夜來詩 아이 불러 종이 붓 찾아와서는 간밤에 지은 시를 한가히 쓴다.

 

늦게 일어난 것은 간밤 시상(詩想)이 해맑아 새벽까지 잠을 설친 까닭이다. 남창에 해가 들었으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떴다.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불러 먹을 간다. 깨끗한 종이를 펼쳐 놓고, 간밤 고심한 시구들을 정갈하게 옮겨 적는다. 한가롭고 구김살이 없다.

 

신혼(申混)이란 이가 안주(安州) 교수(敎授)로 있다가 교리(校理) 벼슬을 제수 받고는 송도를 지나는 길에 조신준(曺臣俊)의 집에 들러 시를 구하니, 조신준은 즉석에서 이런 시를 지어 주었다.

 

仙官瑤籍逸群才 요적(瑤籍) 오른 선관(仙官)이라 그 재주 빼어난데
何事翩然下界來 어인 일로 번드쳐 인간 세상 내려 왔나.
跨鶴鞭鸞歸路近 학 타고 난새 모니 돌아갈 길 가깝도다
五雲多處是蓬萊 오색구름 피어나는 그곳이 봉래라오.

 

한미한 지방관으로 고생하던 그대가 중앙 부서에 승진되어 가니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신혼(申混)이 사례하고 떠나갔다. 조신준이 다시 한 번 읽어 보고는 놀라 말하기를, “이 시는 신혼의 만사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신혼은 서울로 돌아간 지 몇 개월 만에 죽었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나온다.

 

전생에 천상 선관(仙官)이었던 그대가 적선(謫仙)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나, 이제 곧 귀양살이가 끝나 학 타고 난새 수레를 몰아 오색구름 피어나는 봉래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니, 꼭 너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 셈이 된다. 어째서 무심코 좋은 뜻으로 지어준 시가 이리 되었을까? 알지 못할 일이다.

 

 

최전(崔澱)은 소년 시절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관동 땅을 유람하면서 시를 지었다.

 

蓬壺一入三千年 봉래도 한 번 든 지 삼천년이 흘렀어도
銀海茫茫水淸淺 은빛 바다 아득하고 물결은 맑고 얕다.
鸞笙今日獨歸來 난새의 피리 속에 오늘 홀로 돌아오니
碧桃花下無人見 벽도화 꽃 아래에 보이는 사람 없다.

 

홀로 돌아왔지만 보이는 사람 없다는 말이 시참이 되어, 그는 나이 20세쯤에 일찍 죽고 말았다. 시어에 자못 귀기(鬼氣)가 서려 있다. 이 예화는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전한다.

 

허균(許筠)이 죄를 입어 갑산(甲山)으로 귀양 갈 때 친구들과 이별하는 시를 지었다.

 

深樹啼鴉薄暮時 까마귀 우는 숲에 엷은 어둠 깔려 올 제
一壺來慰楚臣悲 한 병 술로 귀양 슬픔 와서 위로 하는구려.
此生相見應無日 이 인생 살아서는 다시 볼 날 없으리
直指重泉作後期 황천 길 가리키며 뒷 기약 남기노라.

 

살아서는 다시 볼 날이 없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황천길을 가리키며 뒷기약을 남긴다니 완전히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 말이 아닌가? 어찌 이런 말을 했더란 말인가. 이 예화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전한다.

 

 

다시 홍만종(洪萬宗)시평보유(詩評補遺)에는 허균(許筠)이 갑산(甲山) 귀양지에서 지었다는 시가 실려 있다.

 

春來三見洛陽書 봄 들어 세 번째로 서울 편지 받아보니
聞說慈親久倚閭 어머님은 문 기대어 나를 기다리신다네.
白髮滿頭斜景短 짧은 저녁 빛에 흰 머리 날리시리
逢人不敢問何如 어머님 어떠시던고 감히 묻지 못했네.

 

봄 들어서만도 서울 소식은 세 번째로 날아들었다. 변방에서 고생하는 자식 걱정에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아예 마을 문에 나서 자식 돌아올 날 만을 기다리신다는 전언이다. 기우는 인생의 황혼에 자식의 봉양을 받으며 안온한 노경을 보내셔도 시원찮을 텐데 흰 머리의 노인께 이 무슨 막심한 불효란 말인가. 편지를 들고 온 사람에게 차마 어머님의 근황은 물어보지도 못했다. 뒤에 그는 비록 사면되어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앞서의 시가 시참이 되어 결국 성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길에서 죽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이항복(李恒福)이 인목대비 폐출을 간한 일로 귀양 갈 때에 시 한 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白日陰陰晝晦微 밝은 해 그늘져 대낮에도 희미하고
朔風吹裂遠征衣 북풍은 나그네 옷 찢을 듯 불어댄다.
遼東城郭應依舊 요동 땅 성곽이야 그대로 있겠지만
只恐令威去不歸 떠나간 정령위(丁令威) 안 돌아옴 근심하네.

 

대낮인데도 음음(陰陰)한 백일은 간신배의 교언영색에 이목의 총명을 잃은 임금의 암유일 터이고, 나그네 옷을 찢는 북풍은 국모(國母)를 내친 강상(綱常)의 변고를 질책함이다. 요동 사람 정령위는 신선술을 깨쳐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 800년 만에 학이 되어 돌아와 옛 살던 자취를 찾아보니, 즐비한 무덤만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허망하고 처량해서 길게 목을 빼어 울고는 그는 다시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때 그 학이 울었다는 화표주(華表柱)와 성곽의 자취는 지금도 그대로건만은 한번 간 정령위는 다시는 오질 않는 것이다. 이 시를 듣고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항복은 귀양 가서 얼마 안 있다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시참이라고 말했다. 정창연담(晴窓軟淡)에 나온다.

 

 

 

 

인용

목차

1.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3. 대궐 버들 푸르른데

4.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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