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님의 단청 구경
고려 때 이색(李穡)이 중국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여 성명(聲名)이 천하에 크게 떨쳤다. 그가 한 절에 이르니 스님이 마중 나와 말하기를, “그대가 동방의 문장사(文章士)로서 중국의 과거에 장원하였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이제 직접 만나 보니 큰 기쁨입니다[飽聞子東方文章士, 爲中國第一科, 今何倖見之].”라고 하였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떡을 가지고 와서 대접하니, 스님이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僧笑少來僧笑少 | 승소(僧笑)가 적게 오니 스님 웃음도 적네. |
대개 ‘승소(僧笑)’는 떡의 별칭인데, 쟁반에 떡[僧笑]이 조금 밖에 없으니 스님의 웃음[僧笑] 또한 적다고 말한 것이다. 이색(李穡)이 갑작스레 대구를 지으려 하였으나 도저히 짝을 맞출 수가 없는지라 사과하며 “뒷날 마땅히 다시 와 알려 드리지요[異日當更來報之].”하고 물러 나왔다. 뒤에 천리 밖을 노니는데, 그곳 주인이 호리병에 무엇인가를 담아 가지고 나왔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니 ‘객담(客談)’이라고 하였다. ‘객담(客談)’은 술의 별명이었다. 이색은 환호작약하여 다음과 같이 지었다.
客談多至客談多 | 객담(客談)이 많이 오니 객의 말도 많아지네. |
이 구절을 얻어 전날의 구절에 대(對)를 맞추었다. 반년 뒤에 절에 돌아가 스님에게 말하자, 스님은 크게 감탄하며, “무릇 대구(對句)는 정밀함을 귀히 여기니 기일이 늦은 것쯤이야 무슨 상관이리요. 또한 천리를 멀다 않고 와서 알려주니 이 더욱 기이하고 기이한 인연입니다[凡得對貴精, 晩暮何傷. 得一語之工, 而不遠千里來報, 此尤奇之奇也].”라 하였다 한다. 한 구절의 시구를 두고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았던 고인의 미담도 미담이려니와, 쌍관(雙關)의 묘미를 십분 활용한 멋드러진 응수가 절묘하다.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명(明) 나라 때 이몽양(李夢陽)이 강서(江西) 땅에 제학부사(提學副使)로 있을 때,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서생(書生)을 만났다. 이몽양(李夢陽)은 다짜고짜 이렇게 읊었다.
인상여 사마상여 명상여 실불상여
藺相如 司馬相如 名相如 實不相如
그 뜻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 나라의 대신이었던 인상여(藺相如)와 서한(西漢)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이름은 서로 같지만[相如], 실지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몽양은 서생(書生)에게 네가 나와 비록 이름은 같지만, 두 사람의 상여(相如)가 다른 것처럼 실지는 같지 않다고 하여 은근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자 서생이 즉시 대답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위무기 장손무기 피무기 차역무기
魏無忌 長孫無忌 彼無忌 此亦無忌
위무기(魏無忌)는 신릉군(信陵君)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 나라의 귀족이고, 장손무기(長孫無忌)는 당초(唐初) 대신(大臣)의 이름이다. 내용은 위무기(魏無忌)나 장손무기(長孫無忌)나 저 사람도 거리낌이 없었고[無忌], 이 사람 또한 거리낌이 없었다는 뜻이다. 서생(書生)이 말하려 한 속뜻은 두 무기(無忌)는 이름도 같았고 둘 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권면이 된다. 네가 나와 이름이 같다고 해서 나와 같은 줄 알면 큰 오산이라는 식으로 말을 던졌던 이몽양(李夢陽)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사과하였다. 고인(古人)의 이름을 두 가지 뜻으로 쌍관(雙關)하여 대구한 조어(造語)가 몹시 교묘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광해군 때 평양 관찰사 박엽(朴燁)이 손과 함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 수가 자꾸 막히자 박엽은 곁에 앉아 시중을 들고 있던 기생 소백주(小栢舟)를 쿡 찌르며 그러고만 있지 말고 노래나 한 수 지어 불러보라 하였다.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사사(事事)를 믿자오매
졸직(拙直)한 마음에 병들까 염려러니
이리마 저리차 하시니 백년동포(百年同胞)하리이다.
나는 당신을 만난 뒤로 모든 일을 당신께 의탁고자 해도, 혹 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하여 병이 될 지경인데, 당신은 이리하마 저리하자는 딴청만 하시니 그러지 말고 함께 품어 백년해로하자는 말씀이다. 그런데 다시 시의 원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장기판의 짝패인 상(象)ㆍ사(士)ㆍ졸(卒)ㆍ병(兵)ㆍ마(馬)ㆍ차(車)ㆍ포(包)의 음이 다 들어 있다. 그뿐 아니라 더 잘 음미해보면 절묘하게도 지금 그녀는 능청스레 훈수를 두고 있는 중이었다. 재치가 넘쳐흐른다.
조선시대 권필(權韠)이 지은 시에 이런 것이 또 있다.
遠客來山寺 秋風一杖輕 | 먼 나그네 산사에 오니 가을바람에 지팡이 가볍구나. |
直入沙門去 丹靑四壁明 | 곧장 절문을 들어서니 사방 벽엔 단청이 환하더라. |
가을 산사에 놀러 온 나그네의 절 구경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시적 진술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싱겁다. 남용익(南龍翼)은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위 시를 소개하면서, 권필이 절에서 놀다가 마침 장님이 절구경을 온 것을 보고 희롱 삼아 지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먼 나그네 원객(遠客)’는 곧 ‘눈먼 나그네 맹객(盲客)’이다. ‘눈이 멀었다[盲]’를 ‘먼[遠] 나그네’로 농친 것이다. ‘멀다’의 동음이어를 활용, ‘원(遠)’에 이중자의를 부여하였다. 남용익(南龍翼)은 그 밖의 구절도 시속에서 흔히 쓰는, ‘장님의 지팡이’, ‘장님 곧장 문에 들어가기’, ‘장님 단청 구경’ 등의 말을 조합하여 배열한 것이라고 부연하였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위의 진술이 왜 시답지 않았는가를 깨닫게 된다. 표면적 진술은 풍자 의도를 감추기 위한 사탕발림이다, 즉 사탕발림이다. 표면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이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이때 표면적 진술과 실질적 의미사이에 의도적인 괴리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언어적 아이러니가 발생된다. 독자의 연상능력을 자극하여 시인의 교묘한 말장난을 깨닫도록 유도함으로써 지적 쾌감을 제공하는 경우이다.
역시 권필(權韠)이 장님을 두고 지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百中經事業 三尺杖生涯 | 백중에 사업을 경영하고 삼척에 생애를 의지하네. |
백중은 음력 칠월 보름이다. 무더운 때 생업에 열중하는 지팡이 짚은 늙은이의 모습을 말하는 듯하나, 위 번역으로는 작가의 진의가 파악되지 않는다.
百中經事業 三尺杖生涯 | 백발백중 점치는 사업을 한다면서 지팡이를 짚고서야 살아간대나. |
이것을 위와 같이 풀이하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봉사가 다른 사람의 미래는 백발백중 맞춘답시며 점쟁이 행세로 떠듬떠듬 지팡이를 짚고 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드러난다. 점치는 행위에 일부러 거창하게 ‘사업’을 갖다 부쳐, 독자들이 금방 의도를 간파하기 못하도록 우회하였다. ‘백중(百中)’과 ‘삼척(三尺)’은 쓰이는 용례의 여러 의미 때문에 처음 독자에게 모호성을 유발시킨다.
인용
2. 장님의 단청 구경
3. 견우(牽牛)와 소도둑
5.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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