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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6. 시와 문자유희: 한시의 쌍관의 - 3. 견우와 소도둑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6. 시와 문자유희: 한시의 쌍관의 - 3. 견우와 소도둑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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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견우(牽牛)와 소도둑

 

 

기관염(氣管炎)과 처관엄(妻管嚴)

 

앞서 본 여러 예화들은 모두 희필(戱筆)에 불과한 것이지만, 언어를 구사하는 재치가 뛰어나고 기지가 반짝인다. 대개 시와 문자유희는 엄격하게 다르지만, 언어를 주된 질료로 삼는 시는 본질적으로 얼마간은 유희적 기분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동음사(同音詞)나 다의사(多義詞)를 활용한 쌍관(雙關), 즉 말장난 펀(Pun)은 현대시에서도 흔히 접하게 되는 기교인데, 예전 한시에도 이러한 펀(Pun)의 예는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중국 사람들이 쓰는 은어 가운데 기관지염에 걸렸다는 말은 공처가(恐妻家)라는 의미로 쓰인다. 왜냐하면 기관염(氣管炎)’처관엄(妻管嚴)’의 중국 발음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아내의 관리가 지엄지엄(至嚴)하니 바로 공처가(恐妻家)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단[]’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가운데서도 걸작으로 꼽는 것 중의 하나가 항우본기(項羽本紀)이다. 앞서 본 시에서도 나란히 등장하고 있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홍문연(鴻門宴) 대목은 긴박과 스릴이 넘치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유방(劉邦)의 군대가 먼저 함양(咸陽)을 점령하는 개가(凱歌)를 올리자, 항우(項羽)의 진노는 극에 달하였다. 이에 항백(項伯)의 주선으로 유방(劉邦)은 겨우 수백 기만을 거느리고 항우(項羽)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 아닌 사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함양(咸陽) 정벌 이후 유방(劉邦)의 야심을 이미 꿰뚫어 본 범증(范增), 굽실대는 유방(劉邦)의 자세에 도취되어 기고만장해 있던 항우(項羽)를 향해 자신이 차고 있던 옥결(玉玦)을 세 번씩이나 들어보였다. 항우(項羽)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부관 번쾌(樊噲)의 용맹과 기지로 이날 유방(劉邦)은 화장실에 가는 체하고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달아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범증(范增)옥결(玉玦)’을 세 번 씩이나 들어 보인 것은 무슨 뜻이었던가. ‘()’()’과 음이 같으므로 어서 결단(決斷)을 내려 유방(劉邦)을 죽이라고 신호한 것이다. 이날 항우(項羽)의 우유부단은 결국 뒷날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비극으로 끝맺고 말았다.

 

 

 

고리[]’돌아감[]’

 

또 한() 나라의 장수 이릉(李陵)5천의 보병으로 흉노의 본진을 유린하고 돌아오다가 사막 가운데서 흉노의 8만 기병과 장렬히 싸우다가 투항하자, 격노한 한() 무제(武帝)는 릉()의 어머니와 처자를 족멸(族滅)하였다. 반면 흉노의 왕은 그의 딸을 이릉(李陵)의 아내로 주고 우교왕(右校王)을 삼는 등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무제(武帝)가 세상을 뜨고 여덟 살 난 불능(弗陵)이 왕위에 올라 흉노와의 화평 교섭이 재개되자, 한나라에서는 이릉(李陵)을 다시 불러오려고 임입정(任立政)을 흉노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마침내 한나라의 사신을 환영하는 흉노의 연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임입정(任立政)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릉(李陵)에게 함께 돌아가자는 뜻을 전하려 하였지만 좀처럼 기회를 만들 수 없었다. 답답하기 그지없던 그는 다만 이릉(李陵)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짓을 하며 칼 고리의 환을 만질 수밖에 없었다. ‘()’()’과 음이 같으니 함께 돌아가자는 뜻을 그렇게 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릉(李陵)은 대장부가 어찌 두 번 욕을 당할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흉노의 땅에서 비운의 생을 마쳤다.

 

이렇듯 ()’()’을 나타내고, ‘()’으로 ()’을 전달하는 것은 한자의 동음사(同音詞)를 활용하여 쌍관의(雙關義)를 나타낸 예이다. 예전 한시에서는 이러한 쌍관의(雙關義)의 활용을 통해 시적 함축을 제고시키는 기법이 널리 활용되어 왔다.

 

실제 한 행동 쌍관의 전하고자 한 내용
범증이 항우에게 옥결(玉玦)을 세 번 들어보임. = 얼른 결단내려유방을 죽이십시오.
임입정이 이릉을 보며 칼 고리() 만짐 = 함께 한나라로 돌아가자’.

 

 

조원(趙瑗)의 첩 이씨(李氏, 이옥봉)가 능히 시를 잘 지었다. 마침 시골에 어떤 남자가 소를 훔친 혐의로 관가에 끌려갔다. 답답한 그 아낙이 이웃의 이씨(李氏)에게 남편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소장(訴狀)을 써달라고 부탁하니, 이씨(李氏)는 그 말미에 이렇게 써 놓았다.

 

妾身非織女 郞豈是牽牛 첩의 몸이 직녀(織女)가 아니옵거늘 낭군이 어찌 견우(牽牛)시리요.

 

견우(牽牛)는 글자 그대로 풀이 하면 소를 끌다가 되니 소를 끌고 간 도둑이 된다. 자신이 직녀(織女)가 아니니 낭군이 견우(牽牛)일 까닭이 없다는 말은, 곧 낭군은 결코 소를 끌고 가지 않았다는 호소가 되는 것이니, 그 언어의 재치가 놀랍고 뛰어나다. 이 시를 본 태수는 기특하게 여겨 그 사람을 바로 풀어주었다. 이수광(李晬光)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 나라 때 사람 정민정(程敏政)은 어려 신동(神童)으로 소문나 한림원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재상 이현(李賢)이 그의 재주를 몹시 아껴 사위로 삼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짐짓 그를 초청하여 대접하고는 상 위에 있던 연근(蓮根)을 가리키며 시를 지었다.

 

因荷而得藕 연꽃을 인하여 연뿌리를 얻었도다.

 

그러자 정민정(程敏政)은 식탁 위에 있던 살구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대구하였다.

 

有杏不須梅 살구가 있으니 매실(梅實)은 필요 없네.

 

겉으로 보면 상 위의 음식을 놓고 한 마디씩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지만, 속으로는 나는 너를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한 말에 영광입니다라고 대답한 내막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현(李賢)이 던진 인하이득우(因荷而得藕)’인하이득우(因何而得偶)’와 쌍관(雙關)되어 어디에서 짝을 얻으려는가?”라는 질문이 되고, 정민정(程敏政)유행불수매(有杏不須梅)’유행불수매(有幸不須媒)’와 쌍관(雙關)되어 다행히도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되어, 당신의 딸을 주신다면 중매 없이 혼인할 수 있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얼마 뒤 정민정(程敏政)은 재상 이현(李賢)의 사위가 되었다.

 

因荷而得藕 有杏不須梅 연꽃을 인하여 연뿌리를 얻었도다. 살구가 있으니 매실(梅實)은 필요 없네.
因何而得偶 有幸不須媒 어디에서 짝을 얻으려는가? 다행히도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

 

또 명말(明末)의 소설가 김성탄(金聖嘆)이 죄를 입어 사형을 당하기 직전 아들에게 두 구절을 지어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蓮子心中苦 梨兒腹內酸 연밥은 그 속이 매우 쓰고 배는 속살이 맛이 시다네.

 

다 죽어가는 마당에 웬 연밥과 배 맛 타령이란 말인가? 김성탄의 이 구절은 그가 유난스런 미식가(美食家)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속뜻은 다음과 같다.

 

憐子心中苦 離兒腹內酸 너희들 보고파서 내 마음 괴롭고 헤어질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쌍관의(雙關義)의 활용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비통한 심정을 심상한 언어의 포장 속에 감추고 있는 절묘한 표현이다.

 

 

 

[]’()’

 

楊柳靑靑江水平 수양버들 파릇파릇 강물은 넘실넘실
聞郞江上唱歌聲 강 위에선 그 님의 노래 소리 들리네.
東邊日出西邊雨 동쪽엔 해가 나고 서쪽에는 비 오니
道是無晴却有晴 흐렸나 하고 보면 어느새 개였구나.

 

유우석(劉禹錫)죽지사(竹枝詞)이다. 수양버들 가지에 물이 오르니, 강물도 넘실넘실 물이 불었다. 청춘의 봄날, 사랑의 단꿈이 익어가는 강변의 스케치이다. 연잎 사이로 배를 띄웠던 아가씨는 저 건너 방죽가에서 그 님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듣고 있다. 아가씨는 갑자기 화제를 돌려 날씨 타령을 늘어놓는다. 저편에선 비가 오는데 또 이편에선 햇살이 비친다. 개였나 싶으면 흐린 날씨처럼, 아가씨의 마음도 싱숭생숭 한 게다. 요랬다조랬다 하는 날씨처럼, ! 제까짓 게 하다가도 어느새 어떤 멋진 도련님일까 싶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그 심정.

 

이때 4구의 ()’은 개인다는 뜻이지만 애정의 ()’과는 중국음으로 발음이 같다. 개였다 흐렸다 하는 날씨를 가지고 무정(無情)한듯 유정(有情)한 알 수 없는 봄날 아가씨의 마음을 절묘하게 집어낸 절창이다. 한시(漢詩)에 있어서 쌍관의(雙關義)란 이렇듯 하나의 글자가 동음(同音)이나 다의(多義)에 의해 한 가지 이상의 뜻을 함축하게 되는 경우를 이른다. 이러한 쌍관의(雙關義)의 활용은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漢字)의 특성상 한시에서 매우 빈번하게 활용된다.

 

 

 

연밥[蓮子]’그리움[憐子]’

 

秋淨長湖碧玉流 가을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 연꽃 깊은 곳에 목란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허난설헌(許蘭雪軒)채련곡(采蓮曲)이란 작품이다. 가을날 푸른 창공처럼 아스라이 펼쳐진 파아란 강물 위로 배를 띄웠다. 벽옥처럼 흐르는 강물. 하늘과 물이 어우러져 시릴 듯 푸른빛이다. 아가씨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연꽃이 무성한 속에다 타고 온 목란배를 가만히 매어두고는, 만나기로 한 님을 기다렸다. 배를 숨겨 놓은 것은 혹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이윽고 방죽 위로 님이 나타나고, 님은 내가 연꽃 속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까맣게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가 하는 양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안타까운 나머지 그녀는 님의 발치에 연밥을 던지고 말았다. 수줍어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은 못하고 말이다.

 

3구의 연자(蓮子)’는 연밥, 곧 연꽃의 열매를 뜻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연자(蓮子)’련자(憐子)’ 그대를 사랑한다는 속뜻을 담아 사랑의 고백이 된다. 말하자면 그녀가 물 건너로 던진 것은 그저 심상한 연밥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한시에서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 천사(千絲)’천사(千思)’로 쌍관(雙關)하여 두서없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야릇한 봄 마음을 나타내는 것도 모두 비슷한 예이다.

 

 

만해 한용운의 심은 버들이란 작품도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을 잡아맵니다.

 

 

위 시에서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님을 향한 남은 생각 천만사(千萬思)’와 쌍관(雙關)된다. 그러므로 보낸 한()’을 잡아매는 것은 천만사(千萬絲)’의 얽히고설킨 버들가지이면서 동시에 천만사(千萬思)’의 부질없는 기다림과 집착이 된다.

 

甲日花無乙日輝 오늘 핀 꽃이 내일 빛남 없음은
一花羞向兩朝暉 한 꽃으로 두 아침 햇살 부끄럽기 때문이라.
葵傾日日如馮道 해바라기 날마다 기움을 업신여겨 말한다면
誰辨千秋似是非 천추(千秋)의 옳고 그름을 뉘 있어 분별하리.

 

윤선도(尹善道)목근(木槿)이란 작품이다. 목근(木槿)은 무궁화다. 무궁화는 꽃의 생리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까닭에 흔히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 불린다. 이를 두고 일일영(一日榮)’이라 하여 덧없는 소인배의 작태에 견주기도 하나, 시인은 오늘 아침에 핀 꽃이 내일 아침까지 빛나지 않은 것은 두 아침의 햇살과 마주 향해 서기가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렇게 본다면 날이면 날마다 태양만을 향해 하염없이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의 줏대 없는 일편단심(一片丹心)도 하냥 기릴 것은 없겠다. 따지고 보면 천추(千秋)의 시비(是非)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니던가. 오늘의 ()’가 내일엔 ()’가 되고, 어제 쏟아지던 비난이 오늘은 기림이 되어 쏟아진다. 어찌 이깟 시비(是非)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것이랴.

 

무궁화를 두고 소인배라 비웃으면 씩 웃어줄 일이요, 두 조정을 섬기지 않는 충신(忠臣)으로 기리면 고개를 돌리고 말 일이다. 해바라기의 일편단심을 충신으로 기리면 침을 뱉을 일이요, 줏대 없는 아첨배라 한대도 상관 말 일이다. 인간 세상의 시비곡직(是非曲直)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여기서 2구의 양조(兩朝)’두 아침이면서 동시에 두 조정의 의미를 쌍관(雙關)하고 있다. 열녀(烈女)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했던가. ‘근화일일영(槿花一日榮)’의 상식을 뒤엎어 여기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미를 읽고 있는 시인의 독법(讀法)은 그의 평생을 따라다녔던 훼예곡절(毁譽曲折)을 떠올리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다. 이와 같이 쌍관의(雙關義)는 시의 함축미를 효과적으로 제고시켜주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된다.

 

 

 임태(任態), 요대매시의도(姚大梅詩意圖), 19세기, 27.3X32.5cm.

쪽배를 탄 소녀들이 저마다 연밥을 딴다. 경황없는 중에도 오가는 대화가 흥겹다. 노래가 구성지다 

 

 

인용

목차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2. 장님의 단청 구경

3. 견우(牽牛)와 소도둑

4.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

5.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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