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유종원(柳宗元)의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영주(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법화사(法華寺) 서정(西亭)에 앉았다가 서산(西山)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상강(湘江)을 건너 염계(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잡고 올라가 걸터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구덩이 같았다. 척촌(尺寸)에 천리를 빽빽히 쌓아 놓은 듯 가리워 보이지 않음이 없었다. 푸르고 흰빛으로 둘려 있어 멀리 하늘가와 더불어 사방을 둘러봐도 한결 같았다.
今年九月二十八日, 因坐法華西亭, 望西山, 始指異之, 遂命僕人過湘江, 緣染溪, 斫榛莽, 焚茅茷, 窮山之高而止, 攀援而登, 箕距而遨. 則凡數州之土壤, 皆在衽席之下, 其高下之勢, 岈然窪然, 若垤若穴. 尺寸千里, 攢蹙累積, 莫得遯隱. 縈靑繚白, 外與天際, 四望如一.
이 뒤에야 이 산이 특출하여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작은 산과는 류(類)가 되지 않고, 유유하게 맑은 기운을 갖추었으나 그 끝간 데를 얻을 수 없고, 아득히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되 그 다함을 알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술잔을 당겨 가득 따르고 거나히 취하여 해가 지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푸르스름한 땅거미가 먼 데로부터 밀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마음은 엉겨 붙은 듯 형체는 놓여 사라진 듯 만화(萬化)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然後知是山特出, 不與培塿爲類, 悠悠乎與灝氣俱, 而莫得其涯, 洋洋乎與造物者遊, 而不知其所窮. 引觸滿酌, 頹然就醉, 不知日之入. 蒼然暮色, 自遠而至, 至無所見, 而猶不欲歸. 心凝形釋, 與萬化冥合.
서산(西山)의 정상 위에서 영주(永州)의 여러 고을을 굽어보면 지금껏 보아왔던 산들은 모두 흙무더기를 쌓아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 천리의 시야를 척촌(尺寸)에 압축시켜 놓은 듯, 산은 개미둑 같고 골짝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호연한 경계 앞에 그는 돌아옴을 잊고서 저 멀리서 땅거미가 밀려와 눈 아래 펼쳐진 경물을 지워 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지워 버릴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심응형석(心凝形釋)’ 마음은 그대로 엉겨붙어 찾을 길이 없고, 형체는 그대로 기화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만화명합(萬化冥合)’하는 물아(物我)의 일체감을 황홀하게 맛보았던 것이다.
옛 사람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에 많은 산수유기(山水遊記)와 만나게 된다. 유기(遊記)는 산수(山水)를 향한 고인(古人)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遊記)는 고작 수필의 대접 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도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고목(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보는 것 같고,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는데,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 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내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듯 하였다. (중략)
古木衣絶壁而枯, 兀如鬼身. 蟹如灰色, 剝如老蛇縣退, 禿如病䲭蹲顧. 腹穿而枵, 旁無一枝. 依山之石黑, 沿逕之石白, 浸溪之石靑綠. 其疑澼之所摩, 疏之所渡, 石光如舐, 潤赤而滑. 一匹秋暉, 遙鋪楓間, 叉疑洞沙皆淡黃也.
우러러 토령(土嶺)을 보니 오리 쯤 되겠는데, 잎진 단풍나무는 가시와 같고 흘러내린 자갈돌은 길을 막아선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덮였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왔다. 벌렁 나자빠질 뻔하다가 일어나느라 손을 진흙 속에 묻고 말았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웃을까봐 부끄러워 단풍잎 하나를 주어 들고서 그들을 기다리는 체하였다.
仰見土嶺, 可五里. 禿楓如棘, 流礫橫逕. 尖石冒葉, 遇足而脫, 幾跌而起. 手爲搨泥, 羞後人嗤笑, 迺拾一紅葉以待之.
만폭동(萬瀑洞)에 앉으니 석양이 얼굴에 비추인다. 거대한 바위는 산마루 같은데 긴 폭포가 바위를 타넘고 흘러 내려온다. 물굽이는 세 번을 굽이쳐서야 비로소 바닥을 짓씹는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 순이 주먹을 말아 쥔 것 같고, 용의 수염 같기도 하며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 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데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이 듣고 있으려니까 나 또한 숨이 차다. 이윽고 잠잠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더니 조금 있자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坐萬瀑洞, 夕陽映人. 巨石如嶺, 長瀑踰來. 流凡三折, 始齧於根, 凹而湍起, 如蕨芽叢拳, 如龍鬚, 如虎爪, 如攫而止. 噴聲一傾, 下流徐溢, 縮而復泄, 如喘息. 靜聽久之, 身亦與之呼吸. 小焉闃然無聞, 又小焉, 益厲漰湱也.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붙이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말아 올리고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던져두고 둥근 돌에 엉덩이를 고여 고요한 물가에 걸터앉았다. 작은 잎이 떴다 가라앉는데 배 쪽은 자줏빛이고 등 쪽은 누런빛이었다. 이끼가 엉겨 돌을 감싸니 이들이들 한 것이 마치 미역 같았다.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하니 비는 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 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褰袴至脛, 擖袂過肘, 脫巾與襪, 投之淨沙. 圓石支尻, 踞水之幽, 小葉沈浮, 腹紫背黃, 凝苔裏石, 燁如海帶. 以足割之, 瀑激于爪, 以口潄之, 雨瀉于齒. 雙手泳之, 有光無影, 洗眼之白, 醒面之紅, 時秋雲照水, 弄余之頂也.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의 한 도막이다.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볼 길 없는 묘향산(妙香山)의 구비구비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다.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요, 한편의 시가 아닌가.
다시 한 대목을 보자.
금표(禁篻) 스님과 더불어 『법화경(法華經)』의 화택(火宅)의 비유를 강론하였다. 스님은 오십여 세로 송경(誦經)은 잘 하지만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꺼리는 듯했다. 그 형인 혜신(慧信) 또한 중이 되어 극락전(極樂殿)에 거처하는데 불경의 조예가 금표(禁篻)보다 낫다 한다. 내가 물어 보았다.
“중 노릇이 즐거운가?”
“제 한 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 번 가보았지요. 티끌만 자옥히 날려 도저히 못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 산에 산 것이 40년 올씨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칠정(七情)이 다 말라버려, 비록 속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속인이 된다 해도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끝까지 부처님을 의지타가 적멸(寂滅)로 돌아갈 뿐입지요.”
“대사는 처음에 왜 중이 되시었소?”
“만약 자기가 원심(願心)이 없다면 비록 부모라 해도 억지로 중 노릇은 시키지 못하지요.”
이날 밤 달빛은 마치도 흰 명주 같았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술도 한 순배 하였다. 먼데 바람소리가 잎새를 살랑이니 쏴-아 하고 쏟아내는 듯 쓸어내는 듯하였다.
與禁寰師, 講正法華火宅喩. 師五十餘臘, 口能誦經, 向人疑疑. 其兄慧信亦爲僧, 住極樂殿, 經旨多於寰云, 問: “爲僧樂乎?” 曰: “爲一身則便.” “曾到京否?” 曰: “一人其中, 萬塵奔汩, 似不可居之地也.” 又問 : “師肯還俗否?” 曰: “十二爲僧, 獨住空山四十歲, 囊時猶遇侮則忿, 自願則憐. 今則七情枯矣. 雖欲俗不可得, 爲俗亦無用. 將終始依佛, 以歸于寂.” 曰: “師初何爲僧.” 曰: “若己無願心, 雖父母不能强此也.” 是夜望月如素. 繞塔三匝, 酒盃一巡. 遠籟在葉, 如瀉如掃.
객수(客愁)에 잠을 못 이루던 서울 선비가 탑 둘레를 맴돌다가 초로의 스님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명주를 펼쳐놓은 듯 희고 고운 달빛, 바람은 쏴-아 물결 소리를 내고, 도도한 흥취는 몇 잔의 술로도 잠재울 수가 없다. 먼지만 날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됩디다 하고 스님은 고개를 내젓는다. 환속을 말하는 짓궂은 농담에는 칠정(七情)이 다 말라버렸다고 대답한다. 달빛 아래 담소의 광경이 꿈속 같이 아련하다.
정지상(鄭知常)의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를 연상시킨다.
古徑寂寞縈松根 | 옛길은 적막해라 솔뿌리 얽혀 |
天近斗牛聯可捫 | 낮은 하늘 북두 견우 손 뻗으면 닿겠네. |
浮雲流水客到寺 |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 |
紅葉蒼苔僧閉門 | 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고. |
秋風微凉吹落日 | 산달이 떠오더니 잔나비 울음 우네. |
山月漸白啼淸猿 | 가을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
奇哉尨眉一老衲 | 기이쿠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
長年不夢人間喧 |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
솔뿌리를 밟으며 태고 속으로 나그네는 걸어 들어가고, 청청한 하늘은 머리를 누를 듯 낮게 내려와 반짝반짝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사는 일 하릴없어 절을 찾은 나그네를 맞이한 것은 발목을 덮는 낙엽과 푸른 이끼 낀 빗장 질린 산문(山門)이다. 아웅다웅 토닥대며 살아온 삶이 굳게 닫힌 산문(山門) 앞에서 무연하다.
박제가(朴齊家)는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를 이렇게 맺는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이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다. 저 어지러이 떠들썩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들은 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 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凡遊以趣爲主, 行不計日, 遇佳卽止. 携知己友, 尋會心處, 若紛紜鬧熱, 非我志也. 夫俗子者, 挾妓禪房, 張樂水聲, 可謂花下焚香, 茶中置菓也.
或者來問曰: “山中聽何如?” 曰: “吾耳但聞水聲僧踏落葉聲.”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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