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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3. 시와 역사: 시사와 사시 - 3. 변새의 풍광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3. 시와 역사: 시사와 사시 - 3. 변새의 풍광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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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변새(邊塞)의 풍광(風光)

 

 

막막한 모래벌판은 끝간 데 없고 아득히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황하의 물은 감돌아 흐르고 뭇 산들은 어지러이 솟아 있다. 어둑어둑 참담한데 바람은 석양에 구슬피 불어온다. 쑥대는 꺾어지고 풀은 말라 오싹하기 마치 서리 아침 같구나. 새도 날뿐 내려오지 아니하고 짐승도 내달리느라 무리를 잃는다. 정장(亭長)은 내게 말한다. “이곳은 옛 싸움터입지요. 일찍이 삼군(三軍)이 전멸 당했답니다. 이따금씩 귀곡성(鬼哭聲)이 날이 흐리면 들려옵니다.” 슬프도다! ()나라 때였던가? ()나라 때였던가? 아니면 근대(近代)였더란 말인가?

浩浩乎平沙無垠, 敻不見人. 河水縈帶, 群山糾紛. 黯兮慘悴, 風悲日曛, 蓬斷草枯, 凜若霜晨. 鳥飛不下, 獸挺亡群. 亭長告余曰: “此古戰場也, 嘗覆三軍, 往往鬼哭, 天陰則聞.” 傷心哉! 秦歟? 漢歟? 將近代歟?

 

 

당나라 이화(李華)조고전장문(弔古戰場文)의 서두이다. 모래 바람 부는 옛 전장(戰場)의 황량함이 뼈에 저밀 듯 생생한 명문이다. 다시 싸움의 광경을 상상하는 한 대목을 보자.

 

 

지독한 음기(陰氣)가 엉기어 막히는 겨울이 되면 청해(靑海)의 추위는 살을 에운다. 쌓인 눈은 정강이를 덮고, 수염에는 얼음이 꽁꽁 언다. 사나운 새도 둥지를 떠나지 않고 정마(征馬) 또한 머뭇거린다. 솜옷도 따뜻치 않고 발가락은 끊어질듯 살갗은 찢어진다. 이같이 괴로운 추위는 오랑캐의 기를 돋우워, 살기도 등등하게 자르고 베어 죽이며, 수송 수레를 약탈하고 군사들을 공격하였다. 도위(都尉)는 항복하고 장군도 죽임을 당하였다. 시체는 큰 항구의 언덕을 가득 메웠고 피는 장성굴(長城窟)에 가득 찼도다. 귀한 이나 천한 이나 함께 마른 해골이 되었으니 어찌 이루 말로 다하랴!

至若窮陰凝閉, 凜冽海隅, 積雪沒脛, 堅氷在鬚. 鷙鳥休巢, 征馬踟躕, 繒纊無溫, 墮指裂膚. 當此苦寒, 天假强胡, 憑陵殺氣, 以相翦屠. 徑截輜重, 橫攻士卒, 都尉新降, 將軍復沒. 屍塡巨港之岸, 血滿長城之窟, 無貴無賤, 同爲枯骨, 可勝言哉.

 

 

한나라 이래로 중국은 늘 북방 흉노와의 전쟁에 시달려왔다. 전쟁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이던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적인 싸움 속에 애꿎은 청춘들만 사막에 뼈를 묻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당시(唐詩) 중에는 멀리 변방의 풍정을 노래한 변새시(邊塞詩)가 유난히 많다. 이들 시는 그 풍부한 함축에서뿐 아니라 당대 변방의 고통과 삶의 괴로움을 실감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車轔轔 馬蕭蕭 수레는 삐걱삐걱, 말은 힝힝 우는데
行人弓箭各在腰 출정하는 군인들 허리에 활을 찼네.
耶孃妻子走相送 부모 처자 달려나와 전송하느라
塵埃不見咸陽橋 자옥한 먼지 일어 함양교(咸陽橋)도 뵈지 않네.
牽衣頓足攔道哭 옷 붙들고 넘어지다 길을 막고 통곡하니
哭聲直上干雲霄 통곡소리 곧장 올라 하늘에 사무친다.
道旁過者問行人 길가를 지나던 이 군인에게 물어보니
行人但云點行頻 군인은 다만 징집 잦다 말을 하네.
或從十五北防河 열다섯에 북쪽에서 황하를 지키다가
便至四十西營田 마흔에야 서쪽에서 둔전을 개간한다.
去時里正與裹頭 떠날 때 리정(里正)이 머리에 수건 매주더니
歸來頭白還戌邊 흰 머리로 돌아와선 또 다시 변방 가네.
邊亭流血成海水 변방에 흐르는 피 바닷물을 이루건만
武皇開邊意未已 황제의 변방 개척 성에 차지 않으시네.
君不聞漢家山東二百州 그대 듣지 못하였나. 산동의 이백 고을
千村萬落生荊杞 마을마다 논밭들이 가시밭이 되었단 말.
縱有健婦把鋤犁 건강한 아낙 있어 밭갈고 김매어도
禾生隴畝無東西 고랑마다 곡식들은 들쭉날쭉 하는구나.
況復秦兵耐苦戰 하물며 진() 땅 병사 괴론 싸움 참으면서
被驅不異犬與鷄 내몰림 당하느니 개와 닭 진배없다.
長者雖有問 役夫敢申恨 윗사람이 비록 물어보긴 한다지만 졸병 주제 어찌 감히 원한을 아뢰리오.
且如今年冬 未休關西卒 더군다나 금년엔 겨울이 오더라도 관서(關西)의 병졸은 쉴 틈이 없다 하네.
縣官急索租 租稅從何出 고을 관리 황급히 세금을 재촉하나 세금이 어디에서 나올 데 있단 말가.
信知生男惡 反是生女好 이제야 알겠구나 아들 낳음 괴로웁고 도리어 딸 낳음이 좋다는 말을.
生女猶得嫁比隣 딸 낳으면 이웃에다 시집을 보내지만
生男埋沒隨百草 아들 낳으면 잡초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을.
君不見靑海頭 그대 보지 못했나.
古來白骨無人收 옛날부터 흰 뼈다귀 거둔 이 없는 것을.
新鬼煩寃舊鬼哭 새 귀신은 원망하고 옛 귀신은 통곡하니
天陰雨濕聲啾啾 흐린 날 비 젖으면 그 소리 처량타오.

 

두보(杜甫)병거행(兵車行)이다. 이 시를 읽어 보면 왜 두보의 시를 두고 역대로 시사(詩史)의 일컬음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약 없는 전장터로 끌려 나가는 병정들이 함양교(咸陽橋)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처절한 광경의 묘사로 서두를 열었다. 곡성(哭聲)이 진동하고 자옥한 먼지와 출발을 알리는 고함소리, 수레는 삐걱거리고 말도 힝힝거린다. 7구에서 떠나는 군인 하날 붙들고 물어보는 시인의 객쩍은 참견은 징집이 너무 잦아요.”라는 무뚝뚝한 대답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장강(長江)과 황하(黃河)가 발원하는 곳, 곤륜산맥이 앞을 턱 가로 막고 있는 모래 먼지 이는 몽고의 땅이다. 한번 가면 운이 좋아 2, 30년 만에 돌아올 수 있고, 그나마 흰 머리로 돌아와도 다시 다른 곳으로 끌려간다. 일손이 없고 보니 민생(民生)은 도탄에 빠지고, 전쟁 비용 때문에 세금은 더욱 가혹해지는 악순환 속에 청해(靑海)의 가없는 호숫가에는 거두는 손길 없는 해골만이 늘어간다. 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秋塞雪初下 將軍遠出師 가을 변방 첫눈이 하마 내리고 장군은 멀리로 군대를 출정한다.
分營長記火 放馬不收旗 병영을 나눔은 횃불로 표시하고 말은 풀어 깃발도 거두질 않네.
月冷邊帳濕 沙昏夜探遲 싸늘한 달빛에 장막은 축축한데 사막은 깜깜하여 밤 정찰 더뎌지네.
征人皆白首 誰見滅胡時 군사는 모두 흰 머리이니 오랑캐 멸할 날을 볼 사람 그 누구랴.

 

장적(張籍)출새(出塞)이다. 가을인데도 변방엔 벌써 첫눈이 내린다. 오랑캐와의 전투를 위해 장군은 한밤중에 출정을 서두른다. 야습에 나선 길이다. 소리를 죽이려고 말은 풀어두고 깊은 밤이라 깃발도 챙기질 않았다. 싸늘한 달빛에 천막엔 서리가 내려 축축하고, 깜깜한 사막 길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78구에서 느닷없이 군사들이 모두 흰머리임을 말하였고, 끝도 없는 이 전쟁에서 오랑캐를 멸하는 날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하여 자조의 심경을 드러내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이곳에 끌려온 병사들은 머리가 다 세도록 여태도 고향에 돌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이 매서운 바람 먼지 날리는 모래밭에 해골을 누이고 말 것이다. 그때에도 또 오늘과 같은 야습은 되풀이 되리라.

 

誓掃匈奴不顧身 흉노 무찌르겠단 맹세 제 몸도 돌보잖코
五千貂錦喪胡塵 오천의 용사(勇士)들은 오랑캐 땅에 묻히었네.
可憐無定河邊骨 슬프다 무정하(無定河) 물가의 해골들은
猶是春閨夢裏人 봄날 규방 꿈속에 그리는 사람일레.

 

진도(陳陶)농서행(隴西行)이란 작품이다. 농서(隴西)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에 위치한 곳이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 용사들의 용맹한 기상을 먼저 보인 뒤, 잇대어 무정하(無定河) 강가를 뒹굴고 있는 해골들을 말함으로써 이 전쟁의 허망함을 보였다. 더욱이 강가에 뒹구는 해골의 아내들은 여태도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밤 꿈속에서 만나고 있다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비장한 격정에 젖어들게 한다. 변새시(邊塞詩)에는 당시 전쟁터의 스산한 분위기와 끝없이 계속되는 정복 전쟁에 지친 고통의 목소리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시는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용

목차

1. 할아버지와 손자

2.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

3. 변새(邊塞)의 풍광(風光)

4. 궁사(宮詞), 한숨으로 짠 역사

5.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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