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詩)와 역사(歷史): 시사(詩史)와 사시(史詩)
1. 할아버지와 손자
白犬前行黃犬隨 | 흰둥이 앞서 가고 누렁이 따라가는 |
野田草際塚纍纍 | 들밭 풀가에는 무덤들 늘어섰네. |
老翁祭罷田間道 | 제사 마친 늙은이는 두둑 길에서 |
日暮醉歸扶小兒 |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
이달(李達)의 「제총요(祭塚謠)」란 작품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다. 흰둥이가 컹컹 짖으며 저만치 앞서 가자 누렁이도 뒤질세라 뒤쫓아 간다. 잠시 두 놈의 장난질에 시선이 집중되는 동안 카메라는 그 뒤에 즐비하게 늘어선 무덤으로 초점을 당긴다. 다시 무덤들이 원경으로 처리되면서 개 짖는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이 나타난다. 해질 무렵의 양광(陽光)이 빗기는 가운데 술에 까부룩 취한 할아버지와 그 옆에서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손주의 모습이다.
슬픔을 느끼기에는 너무 목가적이고 평화스런 광경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와 손주는 누구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러 갔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왜 저물도록 무덤가를 맴돌다가 급기야 술에 취하고 말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그림 속에는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소년의 아버지이다. 시인은 짐짓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소년의 아버지야말로 바로 두 사람이 제사 지낸 무덤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2구에서 들밭 풀가에 즐비한 무덤이라 했으니 예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들어선 무덤임을 알 수 있겠다. 산도 아닌 밭두둑 가에 울멍줄멍 돋아난 새 무덤들 가운데 소년의 아버지는 묻혀 있는 것이다. 아들의 무덤에 제사지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심정, 할아버지가 왜 저러시나 싶어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어린 손주의 천진한 눈빛.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슬픈 영상이다.
필자가 이 작품을 임진왜란(壬辰倭亂)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확신하는 것은 대개 이러한 이유에서다. 7년간 강토를 휩쓸고 간 전쟁의 참상을 시인은 목청 높여 성토하는 대신 한 폭 그림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때 시는 폐허의 심성을 따뜻이 어루만져 주는 마법의 치유약이 된다.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광주항쟁 당시 자료 사진 속에서 해맑은 눈으로 죽은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던 소년의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夕投孤館抱鞍眠 | 저물녘 외론 여관 안장 안고 잠을 자니 |
破屋疎簷仰見天 | 부서진 집 성근 처마 하늘이 올려 뵈네. |
聽得廚人連曉語 | 부엌에서 새벽까지 두런두런 거리는 말 |
艱難各說壬辰年 | 임진년의 괴롭던 일 저마다 얘기하네. |
권필(權韠)의 「숙대진원(宿大津院)」이란 작품이다. 파리한 말을 끌고 먼 길을 가던 나그네는 저물어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말이 여관이지 집도 거지반 부서져, 고개를 들어 보면 처마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침구도 없이 말안장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밤, 나그네는 아까부터 부엌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쏠려 그만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경쟁이나 하듯 임진년 당시 피난길의 이야기로 밤을 새운 부엌의 사연은 젖은 솜방망이 같이 지친 시인의 잠을 달아나게 할 만큼 뼈저린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새우다가, 종장에는 6.25 사변 당시의 이야기로 화제를 삼곤 하던 일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四月十五日 平明家家哭 | 4월이라 보름날 이른 아침 집집마다 곡하는 소리. |
天地變簫瑟 凄風振林木 | 천지는 변하여 쓸쓸해지고 싸늘한 바람은 숲을 흔든다. |
驚怪問老吏 哭聲何慘怛 | 깜짝 놀라 늙은 아전에게 물었네. “곡소리 어찌 이리 구슬프더뇨?” |
壬辰海賊至 是日城陷沒 | “임진년에 바다 도적 몰려와서는 바로 오늘 성이 함락되었답니다. |
惟時宋使君 堅壁守忠節 | 이때 다만 송사또께서 성벽을 굳게 하여 충절 지켰죠. |
闔境驅入城 同時化爲血 | 백성들 성 안으로 몰려 들어와 한꺼번에 피바다를 이루었지요. |
投身積屍底 千百遺一二 | 쌓인 시체 밑에다 몸을 던져서 천백 명에 한 둘만이 살아남았죠. |
所以逢是日 設奠哭其死 | 그래서 해마다 이날만 되면 상을 차려 죽은 이를 곡한답니다. |
父或哭其子 子或哭其父 | 아비가 제 자식을 곡을 하구요 아들이 제 아비를 곡을 하지요. |
祖或哭其孫 孫或哭其祖 | 할아비가 손주를 곡을 하구요 손주가 할아비의 곡을 합니다. |
亦有母哭女 亦有女哭母 | 어미가 제 딸을 곡하기도 하고 딸이 제 어미를 곡하기도 하지요. |
亦有婦哭夫 亦有夫哭婦 | 지어미가 지아비를 곡하는가 하면 지아비가 지어미를 곡한답니다. |
兄弟與姊妹 有生皆哭之 | 형제나 자매를 따질 것 없이 살아 있는 이들은 모두 곡을 합지요.” |
蹙額聽未終 涕泗忽交頤 | 이맛살 찡그리며 듣다가 말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네. |
吏乃前致詞 有哭猶未悲 | 아전이 나서며 아뢰는 말이 “곡할 이나 있다면 덜 슬픕지요. |
幾多白刃下 擧族無哭者 | 칼날 아래 온 집안이 죄다 죽어서 곡할 이도 없는 집이 얼마인뎁쇼.” |
이안눌(李安訥)의 「사월십오일(四月十五日)」이다. 4월 15일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쳐들어 온 왜군을 맞아 싸우다 동래성이 함락된 날이다.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던 당시의 전장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사람들은 해마다 이날만 되면 끔찍했던 만행의 그날이 어제같이 되살아나 주먹을 부르쥔다. 전란 후 동래부사로 부임했던 그는 때 아닌 통곡의 아우성을 목도하고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비슷한 어구의 중첩 속에서 정서는 점차 고조되어 마침내 천지를 소슬케 하고 숲조차 떨게 하는 비분강개의 적개심을 자아낸다. 그나마 곡할 이라도 있는 집은 다행이라는 노리(老吏)의 넋두리는 당시 전장의 참혹상을 바로 눈앞의 일처럼 그려 보이고 있다.
권벽(權擘)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피난길에 오르는데, 고통스런 피난의 와중에서도 시고(詩藁)를 담은 상자만은 억척스레 등에 지고 내려놓질 않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이렇듯 도망 다니며 죽기에도 겨를하지 못하는데 그깟 시 상자는 어디에다 쓰려느냐고 타박해도 그는 결코 시 원고 뭉치가 든 상자만은 버리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같은 노령의 피난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28수에 달하는 작품을 마치 일기를 쓰듯이 남겨, 당시 피난길의 고초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황을 세밀하게 묘사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도(群盜)가 횡행하는 속을 전전하다가 막히면 되돌아오고, 피난길의 박절한 인심과 산에 올라 적을 피하던 일, 조복을 팔아 쌀을 산 일이며, 저마다 달리 말하는 뜬소문에 일희일비하던 일, 평양성의 화전(和戰) 소식에 낙담하던 일, 피난민을 보고는 지레 겁을 먹는 시골 늙은이의 표정 등등, 이들 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한양성을 빠져나간 피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럴 때 시는 당당히 역사 기록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
인용
1. 할아버지와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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