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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23. 시와 역사: 시사와 사시 - 2. 시로 쓴 역사, 시사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3. 시와 역사: 시사와 사시 - 2. 시로 쓴 역사, 시사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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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

 

 

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의 거울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원망(願望)과 애환(哀歡)이 그대로 떠오른다. 한 편의 시는 방대한 사료로 재구성한 어떤 역사보다도 더 생생하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시사(詩史)라 한다. 맹계(孟棨)본사시(本事詩)에서 두보(杜甫)의 시를 논하면서, “두보가 안록산의 난리를 만나 농촉(隴蜀) 지방을 떠돌며 시에다 이때 일을 모두 진술하였다. 본 바를 미루어 숨겨진 것까지 이르러 거의 남김없이 서술하였으니 당시에 이를 일러 시사(詩史)라 하였다고 언급한 것이 시사(詩史)란 말의 첫 용례이다. 간난(艱難)의 피난 시절 두보는 기주(夔州) 지방까지 떠돌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뒷사람들은 그곳에 시사당(詩史堂)을 세워 두보의 화상을 걸어 놓고 그의 시정신을 기리고 있다.

 

시사(詩史)란 말은 시로 쓴 역사란 뜻이니, 그 본래 의미는 시인이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해서 시를 썼다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본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의 시처럼 시인이 자신이 견문(見聞)한 당시의 일을 시로 기록해둔 것이 뒷날 사료적 가치를 지니게 됨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즉 시를 읽으면 그 시대가 눈앞의 일처럼 낱낱이 펼쳐지니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알려면 굳이 역사책을 뒤질 것 없이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전란의 참상을 노래한 두보(杜甫)의 시사(詩史)로는 삼리(三吏)ㆍ삼별시(三別詩)를 압권으로 꼽는다. 앞서 본 이안눌(李安訥)사월십오일(四月十五日)도 사실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빌려왔다. 이 가운데 석호리(石壕吏)한 수를 감상해 보자.

 

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 저물어 석호촌(石壕村)에 묵어 자는데 한밤에도 관리는 사람을 붙잡누나.
老翁踰牆走 老婦出門看 늙은이 담을 넘어 도망을 가고 늙은 아낙 문을 나와 내어다 보네.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관리의 호령은 어찌 저리 우악하며 아낙의 울부짖음 어찌 저리 괴로운가.
聽婦前致詞 三男鄴城戍 아낙이 나서면서 아뢰는 말이 "세 아들 놈 업성(鄴城)에 수자리 나가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 한 아들이 편지를 부쳐 왔는데 두 아들 새 싸움서 죽었다네요.
存者且偸生 死者長已矣 산 놈은 그럭저럭 산다하지만 죽은 놈은 그걸로 그뿐이지요.
室中更無人 惟有乳下孫 집안엔 사내라곤 아무도 없고 젖먹이 손주 새끼 하나 있지요.
孫有母未去 出入無完裙 손주가 있으니 에민 못 가고 가려 해도 앞가릴 치마조차 없답니다 .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 늙은 몸 힘은 비록 쇠하였지만 나으리 따라서 밤에 떠나가,
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 하양(河陽) 땅 수자리에 급히 응하면. 새벽밥은 지을 수 있겠습지요".
夜久語聲絶 如聞泣幽咽 밤 깊어 말소리도 끊기더니만 흐느껴 우는 소리 들은 듯했네.
天明登前途 獨與老翁別 이튿날 앞길을 오르려는데 할아범 혼자서 작별을 하네.

 

천 년 전의 일인데도 흡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생생하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관리의 서슬 앞에 허둥지둥 늙은 할아범은 뒷담을 넘어 달아나고, 시간을 벌던 할멈은 눈치를 보며 대문을 연다. 이미 그녀는 아들 셋을 모두 전쟁터로 떠나보낸 처지다. 그나마도 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관가(官家)의 푸른 서슬은 늙은 할아범까지 잡아가야만 직성이 풀릴 기세다. 아들 둘 죽은 것은 하나도 억울치 않다고 너스레를 떨던 할멈은 며느리와 손주를 지키기 위해 아예 자신이 수자리에 나갈 것을 자청하고 나선다. 늙은 몸이지만 병정들을 위해 새벽밥이라도 짓겠다는 것이다. 이윽고 말소리도 잦아들고 시인은 어디선가 목메어 우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아침에 다시 피난길에 오르는 그를 늙은이 혼자 나와 마중을 한다. 설마 했는데 관리는 늙은 할멈마저도 그예 끌고 가고 말았던 것이다.

 

 

흔히 조선후기 삼정(三政)의 문란을 말할 때 백골징포(白骨徵布)니 황구첨정(黃口簽丁)을 말한다. 이러한 폐단이 낳은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애절양(哀絶陽)을 감상해 보자.

 

蘆田少婦哭聲長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구슬프다
哭向縣門號穹蒼 현문(縣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 구실 면제 안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自古未聞男絶陽 남근(男根)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하였소.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진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三代名簽在軍保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薄言往愬虎守閽 억울함 하소차니 문지기는 범과 같고
里正咆哮牛去皁 이정(里正)은 고래고래 소마저 끌고 갔네.
磨刀入房血滿席 칼 갈아 뛰어들자 피가 온통 낭자터니
自恨生兒遭窘厄 아들 낳아 곤경 당함 제 혼자 한탄한다.
蠶室淫刑豈有辜 잠실(蠶室)의 궁형(宮刑)이 무슨 잘못 있었으랴
閩囝去勢良亦慽 () 땅의 자식 거세 진실로 슬프고나.
生生之理天所予 자식 낳고 사는 이치 하늘이 준 바이니
乾道成男坤道女 건도(乾道)는 아들되고 곤도(坤道)는 딸이 되네.
騸馬豶豕猶云悲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엽다 말하는데
況乃生民恩繼序 하물며 백성이 뒤이을 일 생각함이랴.
豪家終歲奏管弦 부잣집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면서
粒米寸帛無所捐 쌀 한 톨 베 한 치도 바치지 않는구나.
均吾赤子何厚薄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客窓重誦鳲鳩篇 객창에서 자꾸만 시구편(鳲鳩篇) 읊는다네.

 

다산이 강진 유배시에 직접 견문한 사실을 시로 쓴 것이다. 노전(蘆田) 사는 백성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軍籍)에 올라 이정(里正)이 소를 빼앗아 가자, 방에 뛰어 들어가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며 칼을 뽑아 자기의 남근(男根)을 스스로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남근(男根)을 가지고 관가에 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아무리 하소연하려 해도 문지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나마 이미 세상을 떠난 시아버지의 군포(軍布)도 꼬박꼬박 내고 있던 터였다.

 

백골징포(白骨徵布)란 무엇이던가. 이를테면 사람이 죽어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아예 접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죽은 사람 앞으로 세금 고지서를 날려 보낸다. 황구첨정(黃口簽丁)이란 무엇이냐.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나면 그 다음날로 징집통지서가 날아드는 것이다.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더러 빨리 입대하든지 군포(軍布)를 내라고 야단을 부린다. 정작 장정은 하나뿐인데 돌아가신 아버지와 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핏덩이의 군포(軍布) 독촉 끝에 이정(里正)은 목숨보다 중한 소까지 끌고 가버렸다. 눈이 뒤집힌 가장은 칼을 뽑아 이정(里正)을 찌르지도 못하고 애꿎은 자신의 양근(陽根)을 자르고 말았던 것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이렇게 말한다.

 

 

심하게는 배가 불룩한 것만 보고도 이름을 짓고, 여자를 남자로 바꾸기도 하며, 또 그보다 심한 것은 강아지 이름을 혹 군안(軍案)에 기록하니,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정말 개이며, 절굿공이의 이름이 혹 관첩(官帖)에 나오니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정말 절굿공이이다.

甚則指腹而造名, 換女而爲男. 又其甚者, 狗兒之名, 或載軍案, 非是人名, 所指者眞狗也; 杵臼之名, 或出官帖, 非是人名, 所指者眞杵也.

 

 

웃어야 할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가. 어쨌건 삼정(三政)의 문란을 말할 때, 당시 이를 증명하는 어떤 통계 수치보다도 우리는 이 애절양(哀絶陽)한 편을 통해 그 시대 백성의 절규를 실감으로 듣게 된다. 시는 이렇게 해서 역사가 된다.

 

 

 

 

인용

목차

1. 할아버지와 손자

2.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

3. 변새(邊塞)의 풍광(風光)

4. 궁사(宮詞), 한숨으로 짠 역사

5.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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