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형님! 그 자 갔습니까?②
조신준(曺臣俊)은 개성 사람인데 『서경(書經)』을 삼천 번이나 읽었는데도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어렵다는 「요전(堯典)」은 수만 번을 읽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원을 여러 번 지냈고 수직(壽職)으로 정삼품에 올랐다. 그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練水淸如玉 明沙鋪似金 | 비단 같은 강물은 옥인 양 맑고 백사장은 금가루를 뿌린듯 하다. |
誰能挽數斛 淨洗世人心 | 뉘 능히 몇 말을 담아가서는 세상사람 마음을 씻어 주려나. |
옥같이 맑은 강물에 금가루를 뿌린 듯한 백사장. 이 맑은 옥과 금가루를 가득 담아 명리의 탐욕에 찌든 세상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싶다. 참으로 관후장자(寬厚長者)의 넉넉한 마음자리가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또 이런 시도 있다.
晩起家何事 南窓日影移 | 느직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고 남창에 해 그림자 옮겨 왔구나. |
呼兒覓紙筆 閑寫夜來詩 | 아이 불러 종이 붓 찾아와서는 간밤에 지은 시를 한가히 쓴다. |
늦게 일어난 것은 간밤 시상(詩想)이 해맑아 새벽까지 잠을 설친 까닭이다. 남창에 해가 들었으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떴다.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불러 먹을 간다. 깨끗한 종이를 펼쳐 놓고, 간밤 고심한 시구들을 정갈하게 옮겨 적는다. 한가롭고 구김살이 없다.
신혼(申混)이란 이가 안주(安州) 교수(敎授)로 있다가 교리(校理) 벼슬을 제수 받고는 송도를 지나는 길에 조신준(曺臣俊)의 집에 들러 시를 구하니, 조신준은 즉석에서 이런 시를 지어 주었다.
仙官瑤籍逸群才 | 요적(瑤籍) 오른 선관(仙官)이라 그 재주 빼어난데 |
何事翩然下界來 | 어인 일로 번드쳐 인간 세상 내려 왔나. |
跨鶴鞭鸞歸路近 | 학 타고 난새 모니 돌아갈 길 가깝도다 |
五雲多處是蓬萊 | 오색구름 피어나는 그곳이 봉래라오. |
한미한 지방관으로 고생하던 그대가 중앙 부서에 승진되어 가니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신혼(申混)이 사례하고 떠나갔다. 조신준이 다시 한 번 읽어 보고는 놀라 말하기를, “이 시는 신혼의 만사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신혼은 서울로 돌아간 지 몇 개월 만에 죽었다.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나온다.
전생에 천상 선관(仙官)이었던 그대가 적선(謫仙)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나, 이제 곧 귀양살이가 끝나 학 타고 난새 수레를 몰아 오색구름 피어나는 봉래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니, 꼭 너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 셈이 된다. 어째서 무심코 좋은 뜻으로 지어준 시가 이리 되었을까? 알지 못할 일이다.
인용
7. 대궐 버들 푸르른데①
8. 대궐 버들 푸르른데②
9. 대궐 버들 푸르른데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