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함을 칭송하다
晝靜溪風自捲簾 |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
吟餘傍架檢書籤 |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
今年却勝前年懶 | 금년은 도리어 작년의 게으름보다 더하여 |
身世全敎付黑甛 | 몸 신세 온통 꿀잠에 부치네. |
『소화시평』 권상56번에 소개된 「즉사(卽事)」를 읽으면서 지금과 확실히 다른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빨리 빨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와 같은 완벽한 경쟁주의 사회 속에 치열한 삶의 방식이 좋은 것처럼 회자되고, 티비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림의 미학』,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힐링용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얼마나 현실은 치열하고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빼곡함과 분주함만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이 시에선 아예 대놓고 ‘게으름[懶]’을 칭송하고 있고 홍만종의 평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악착같거나, 아등바등하게 사는 모습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 경우 아첨하는 인간이 되고 외부의 시선만 신경 쓰는 인간(爲人)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운치 있고 여유로우며 하릴 없이 한숨 편히 잘 수 있는 그런 인간형을 좋은 인간이라 보았던 것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간상, 시대상, 환경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기 때문에, 우린 오히려 그런 인간상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하긴 이런 모습에 대한 묘사는 여러 글에서 나오지만, 최근에 「만리장성과 권력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들이 만리장성에 오를 때도 얼마나 경쟁적으로 올라가는지, 그리고 내려올 때가 되면 얼마나 벌벌 떠는지에 대해 말이다.
인용
'연재 > 한문이랑 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화시평 감상 - 상권 57. 호쾌한 시를 쓴 성간 (0) | 2021.10.26 |
---|---|
소화시평 감상 - 상권 56.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0) | 2021.10.26 |
소화시평 감상 - 상권 55. 자연이 약동하는 걸 시로 표현하다 (0) | 2021.10.26 |
소화시평 감상 - 상권 55. 이첨, 급암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다 (0) | 2021.10.26 |
소화시평 감상 - 상권 51. 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0) | 202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