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공자가 말 잘하는 사람을 미워한 이유
子路使子羔爲費宰.
子路爲季氏宰而擧之也.
子曰: “賊夫人之子.”
夫, 音扶, 下同.
○ 賊, 害也. 言子羔質美而未學, 遽使治民, 適以害之.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言治民事神皆所以爲學.
子曰: “是故惡夫佞者.”
惡, 去聲.
○ 治民事神, 固學者事, 然必學之已成, 然後可仕以行其學. 若初未嘗學, 而使之卽仕以爲學, 其不至於慢神而虐民者幾希矣. 子路之言, 非其本意, 但理屈辭窮, 而取辨於口以禦人耳. 故夫子不斥其非, 而特惡其佞也.
○ 范氏曰: “古者學而後入政. 未聞以政學者也. 蓋道之本在於修身, 而後及於治人, 其說具於方冊. 讀而知之, 然後能行. 何可以不讀書也? 子路乃欲使子羔以政爲學, 失先後本末之序矣. 不知其過而以口給禦人, 故夫子惡其佞也.”
해석
子路使子羔爲費宰.
자로가 자고로 하여금 비읍(費邑)의 재상이 되도록 했다.
子路爲季氏宰而擧之也.
자로는 계씨의 재상이 되어 그를 등용했다.
子曰: “賊夫人之子.”
공자께서 “멀쩡한 남의 자식을 망치는 구나.”라고 말씀하셨다.
夫, 音扶, 下同.
○ 賊, 害也.
적(賊)은 해친다는 것이다.
言子羔質美而未學,
자고는 자질이 아름다우나 배우지 않았는데,
遽使治民, 適以害之.
갑자기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다만 그를 해친다는 말이다.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자로가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어찌 반드시 독서한 후에만 배우는 게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言治民事神皆所以爲學.
백성을 다스리고 신을 섬기는 것이 모두 배움이 된다는 말이다.
子曰: “是故惡夫佞者.”
공자께서 “이래서 말 잘하는 이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惡, 去聲.
○ 治民事神, 固學者事,
백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섬기는 것은 진실로 배운 사람의 일이다.
然必學之已成,
그러나 반드시 배움이 이미 완성된 후에
然後可仕以行其學.
벼슬하여 배운 것을 행할 만한 것이다.
若初未嘗學, 而使之卽仕以爲學,
만약 애초에 일찍이 배우지 않았는데 그로 하여금 벼슬에 나아가 배우게 한다면
其不至於慢神而虐民者幾希矣.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백성을 학대함에 이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子路之言, 非其本意,
자로의 말은 본의가 아니고
但理屈辭窮, 而取辨於口以禦人耳.
다만 이치가 굽히고 말이 곤궁하여 입으로 변론함으로 남의 귀를 막았을 뿐이다.
故夫子不斥其非, 而特惡其佞也.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잘못을 배척하지 않고 다만 말 잘함만을 미워한 것이다.
○ 范氏曰: “古者學而後入政.
범조우(范祖禹)가 말했다. “옛적엔 배운 후에 정치에 입문했으니
未聞以政學者也.
정치하면서 배운다는 건 듣지 못했다.
蓋道之本在於修身, 而後及於治人,
대저 도(道)의 본체는 수신(修身)에 있으니 이후에나 남을 다스리는 데에 이른다.
其說具於方冊.
그 말은 목판과 죽간에 구비되어 있다.
讀而知之, 然後能行. 何可以不讀書也?
읽고 안 후에 행할 수 있으니 어찌 독서하지 않으리오.
子路乃欲使子羔以政爲學,
자로는 곧 자고로 하여금 정치로 배우게 하였으니
失先後本末之序矣.
선후본말의 차례를 잃었다.
不知其過而以口給禦人,
그 잘못은 모르고 말재간으로 남의 말을 막았기 때문에
故夫子惡其佞也.”
부자께서 그 말 잘함을 미워한 것이다.”
○ 계씨(季氏)의 가신이었던 자로(子路)가 동문의 자고(子羔)를 계씨의 영지인 비읍(費邑)의 읍재(邑宰)로 천거했다. 자고는 이름이 고시(高柴)인데 당시 학문이 완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는 이 젊은이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자로는 실제 정치를 해보는 일이 중요하지, 독서만 학문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공자는 그 말이 자기의 경솔함을 숨기려는 구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꾸짖었다. ‘논어’ ‘선진(先進)’ 편의 한 대화다.
유민인언(有民人焉)과 유사직언(有社稷焉)은 같은 짜임을 가진 구절이다. 단, 민인(民人)은 인민(人民)과 같지만 사직(社稷)은 토지신 사(社)와 곡물신 직(稷)을 합한 말이다. 국가처럼 지방에도 사직(社稷)의 단(壇)을 두었다. 하필(何必)∼ 위(爲)∼는 ‘어찌 반드시 ∼라 하겠는가’ 반문하는 어투다. 여기서 위학(爲學)은 학문한다는 말이 아니라 학문으로 간주하다는 말이다. 오부(惡夫)는 ‘저 ∼을 혐오(嫌惡)한다’이다. 영자(佞者)는 강변(强辯)의 인물을 말한다.
‘예기’에서는 마흔의 나이를 강사(强仕)라 했다. 그 나이가 되어야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억지로 벼슬에 나아간다는 말이다. 정(鄭)나라 대부 자피(子皮)가 한 젊은이에게 자기 영토를 맡기려고, “실제 정치를 하는 것이 학문이자 수양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명한 대부 자산(子産)은 “공부한 뒤 정치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정치를 학문이나 수양으로 여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말렸다. 이념 추구의 학문과 정치적 실천을 분리시키면 안 되지만, 정치를 학문이라 간주하여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결코 옳지 않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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