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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면앙정에 올라 동악 영공에 보이며등면앙정 시동악영공(登俛仰亭 示東岳令公) 양경우(梁慶遇) 華亭縹緲壓層皐 杖策登攀不厭勞殘照欲沈平楚闊 太虛無閡衆峯高休言相國風流遠 自有詩仙意氣豪誰捻雲邊一聲笛 晩山松竹響騷騷 『霽湖集』 卷之八 해석華亭縹緲壓層皐화정표묘압층고화려한 정자는 하늘거려 층층의 언덕을 제압하고 있어 杖策登攀不厭勞장책등반불염로지팡이로 올라도 수고로움이 싫지가 않네. 殘照欲沈平楚闊잔조욕침평초활석양【잔조(殘照): 석양의 남은 빛[落日餘暉]】이 지려해서 평야【평초(平楚): 평야와 같다[猶平野]】가 광활하고太虛無閡衆峯高태허무애중봉고하늘【태허(太虛): 하늘을 가리킨다[指天. 天空]】이 가없어서 뭇 봉우리 높구나. 休言相國風流遠휴언상국풍류원상국의 풍류가 멀다고 말하지 말라, 自有詩仙意氣豪자유시선의기호절로 시선의 의기에 ..
52. 이안눌이 석주와 권필의 자식들을 만나 느꺼워하며 지은 시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一樽江海秋雲寒.” 詞甚遒麗. 體素初擢第, 直拜檢閱, 終于宗簿寺僉正; 石洲曾爲童蒙敎官, 今贈司憲持平, 兩君年皆止四十有四. 해석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동악 이안눌은 체소와 석주와 서로 친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다.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훗날 양가의 자제들이 함께 강도에서 동악을 방문했는데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
면앙정에서 펼쳐진 제호와 동악의 한시 대결 『소화시평』 권하 50번의 주인공은 양경우와 이안눌이다. 양경우에 대한 글은 이미 권상 37번에서 다뤘었다. 그 글을 읽으며 한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그 경치가 그대로 그려지는 걸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안눌 같은 경우는 작년 3월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승 정철, 그리고 친구인 권필과의 추억을 글로 정리하며 좀 더 가까운 사람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치 마주치지 않던 평행선처럼 느껴졌던 두 사람이 이번 글에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양경우의 말을 통해 상황과 서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첨부하고 그런 평가에 대하 홍만종 자신의 평가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
50. 면앙정에서 지은 양경우와 이안눌의 한시를 비교하다 霽湖梁慶遇曰: “李東岳宰秋城時, 與僕登俛仰亭賦詩, 僕敢唐突先手. 頷聯云: ‘殘照欲沈平楚闊, 太虛無閡衆峯高.’ 自以爲得雋語. 東岳次曰: ‘西望川原何處盡, 南來形勝此亭高.’ 下句隱然與老杜, ‘海右此亭高’ 語勢略似, 可謂‘投以木瓜, 報之瓊琚’云.” 以余觀之, 東岳詩, 雖似圓轉無欠, 終不如霽湖淸新突兀, 豈故作遜語以詫之. 해석 霽湖梁慶遇曰: “李東岳宰秋城時, 제호 양경우가 말했다. “이동악이 담양부사가 되었을 때【추성(秋成)은 대부분 사본에 추성(秋城)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추성(秋成)은 전라도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의 옛 이름이다 백제 때에는 추자혜(秋子兮郡)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추성군(秋成郡)으로 바뀌었고 고려 때 담양으로 정해졌다 여지승람..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 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
92. 동악이 평가한 습재와 석주의 시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二人俱有贈華使詩,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京華春信早, 氷消江浙暮潮平. 歸心自切君親戀, 肯顧東人惜別情.’ 石洲詩: ‘江頭細柳綠烟絲, 暫住蘭橈折一枝. 別語在心徒脈脈, 離盃到手故遲遲. 死前只是相思日, 送後那堪獨去時. 莫道音容便長隔, 百年還有夢中期.’ 習齋詩沈重, 石洲詩浮弱, 可於此兩詩論定.”云. 해석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습재 권벽과 석주 권필 문장의 우열에 대해 동악 이안눌에게 물으니, 이안눌이 대답했다. “二人俱有贈華使詩, “두 사람이 모두 중국 사신에게 준 시가 있는데,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
석주 권필을 곡하며곡석주(哭石洲) 이안눌(李安訥) 不恨吾生晩 只恨吾有耳불한오생만 지한오유이萬山風雨時 聞着詩翁死만산풍우시 문착시옹사 不恨吾生晩 只恨吾有眼불한오생만 지한오유안無復見斯人 危途涕空潸무부견사인 위도체공산 詩亡不復採民風 幾箇騷人坐此窮시망불부채민풍 기개소인좌차궁最恨靑靑鄴侯樹 只今還誤聖朝中최한청청업후수 지금환오성조중 耳不曾聞目始看 縱敎相訣語應難최한청청업후수 지금환오성조중至今淚盡悲無盡 酸在中腸苦在肝지금루진비무진 산재중장고재간 『東岳先生集』 卷之十 해석不恨吾生晩 只恨吾有耳내가 늦게 태어난 것은 한스럽지 않지만, 다만 나에게 귀가 있다는 게 한스럽네. 萬山風雨時 聞着詩翁死온 산에 바람 불고 비올 때, 시옹이 죽었단 소식을 들었으니 不恨吾生晩 只恨吾有眼내가 늦게 태어난 것은 한스럽지 않지만, 다만 나에게 눈이..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에 사무친 이안눌 (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권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말했던 것처럼, 시를 평가할 때 권필과 이안눌은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송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인 데다가, 돌아가신 스승을 느꺼워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허균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면, 둘 사이는 매우 돈독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권필과 이안눌의 지음 같은 관계 권필은 「宮柳詩」 로 인해 곤장을 맞게 됐고,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귀양을 가던 도중에 죽었다는 얘기는 권필에 대해 얘기했던 그대로다. 권필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참 가슴 아픈 얘기지만, ..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이안눌(李安訥)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惆悵戀君無限意 世間惟有女郞知 『東岳先生續集』 해석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바로 이때는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때라네.惆悵戀君無限意추창련군무한의애달프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무한한 뜻을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녀낭지세상에서 오직 기녀만이 알아주는 구려. 『東岳先生續集』 해설이 시는 용산 달밤에 가기(歌妓)가 고 인성 정철(鄭澈)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시를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이다..
송강 정철 스승의 무덤을 지나며 느꺼움이 있어과정송강묘유감(過鄭松江墓有感) 권필(權韠)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惆悵一杯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公嘗有短歌,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石洲集』 卷之七 해석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빈 산 나뭇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相國風流此寂寥상국풍류차적요재상의 풍류 이로부터 적막하여졌네. 惆悵一杯難更進추창일배난갱진슬프구나,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나昔年歌曲卽今朝석년가곡즉금조옛 노랫가락은 곧 지금의 노랫가락이구나. 『石洲集』 卷之七 公嘗有短歌, 정철 공께서 일찍이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단가를 지었으니,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사후에 누가 한 잔 술 권할까?’라는 뜻을 말했었다. 해설이 시는 스승인 정철(鄭澈)의 무덤을 지나면서 지난날 그의 풍류를 회고하며 노래한 것이다. ..
권필(權韠)의 ‘궁유시(宮柳詩)’와 시화(詩禍)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 『石洲集』 이미 이 시에 대한 내용은 이안눌이 쓴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의 감상 부분에서 짧게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선 잠시 언급만 했기에, 이번엔 시가 재앙이 된다는 ‘詩禍’를 중심으로 다뤄보기로 하자. 거침없는 기상과 우락부락한 풍채를 지닌 권필 우선 권필..
이안눌李安訥: 1571(선조 4)~1637(인조 15) 본관은 덕수(德水). 중기 문인.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이행(李荇)이 증조부, 이식(李植)의 종손(從孫). 1. 18세에 진사시에 수석하며 과거를 보려 했으나 동료들의 모함으로 문학에 열중. 이때 권필, 윤근수, 이호민 등과 동악시단(東岳詩壇) 모임을 함. 1599년 급제하여 여러 지방에 부사로 근무함. 2. 주청부사로 명나라에서 정원군의 추존을 허락 받아 원종의 시호를 받아옴. 3. 일구일자(一句一字)도 허투루 쓰지 않았으며, 두보(杜甫)를 만독(萬讀)했다고 함. 그가 옮겨 다닌 지방의 민중생활사와 사회사적 자료를 담고 있음. 기세가 강하고 전고를 많이 사용한다고 함. 4. 정조는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동악 이안눌의 시는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