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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2.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2.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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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宮柳)’였다. 권필은 이정구가 원접사가 되어 나갈 때 선조에게 추천하여 발탁된 인물이다. 그의 시재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고 그게 이정구의 귀에까지 들어가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발탁되고 나서 선조를 이어 광해군이 마침내 임금으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비극의 씨앗이 싹 터 오른다. 광해군의 등극과 함께 그의 처남이었던 유희분의 입김이 커지며 국정농단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유희분에게 잘 보이면 능력이 없더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리는커녕 물러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권필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마침내 궁류시(宮柳詩)라는 시를 지어 그런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우회적인 비판이 그러하듯 유희분이 저 시를 보고 그냥 궁궐에 핀 버드나무를 묘사한 시구나라고 했다면 문제가 전혀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유희분은 저 시를 보는 순간 저 버드나무[]란 곧 나를 성씨를 칭하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이 시를 통해 나를 엿 멕이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자신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시라는 걸 캐취한 유희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광해군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이 시에서 말하는 궁궐의 버드나무란 바로 중전마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지어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광해군은 그의 말만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체포하여 곤장형을 지시했다. 몹시도 심하게 곤장형을 당한 석주 권필은 귀양을 가던 도중 사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어야 바로 저 문제의 답을 풀 수 있었던 것인데, 아마도 그 당시 이 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한문 임용에선 해석이 중시되기 때문에 모두 해석을 다듬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지 역사적인 상황까지 공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석주 권필은 나에게 한문 임용의 어려움만을 알려준 인물이었고 임용만을 위해 한문을 공부하던 시기엔 쓸데없는 것까지 알아야 한다는 분개하는 마음을 지니도록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새롭게 공부하면서 석주의 시를 여러 편 보다 보니, 확실히 감수성이 남다르단 생각이 자주 들게 되더라. 여기에 수록된 시만 보아도 그의 시재는 매우 달콤하게 전개되고 있으니, 이 느낌이 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화에서 재밌는 점은 두 사람을 비교하며 문장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내가 누군가와 비교된다고 생각하면 가장 싫어하지만 막상 평가를 하려 할 땐 곧잘 비교를 한다.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말을 해야 좀 더 명확하게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같은 나이가 같거나 나라는 다르더라도 같은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을 비교한다. 같은 나이대의 학문적 성취나 나라에 따른 동일 위상에서의 비교를 통해 그 사람의 성취를 분명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선 재밌게도 그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매우 다르게, 아예 아버지와 아들을 비교선상에 놓고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결례일 수도 있지만, 학문의 영역에서의 비교는 그 당시엔 허용되는 범위였나 보다.

 

이안눌로 말할 것 같으면 권필의 둘도 없는 친구. 두 사람은 정철을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그와 함께 시 모임을 갖기도 했고 석주가 곤장형을 받고 귀향을 가다 죽게 됐을 땐 곡석주(哭石洲)라는 시를 지어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안눌만큼 석주 일가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물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과연 그는 습재와 석주의 문학적 우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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