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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 - 절구(絶句)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최충 - 절구(絶句)

건방진방랑자 2022. 7. 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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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절구(絶句)

 

최충(崔沖)

 

 

滿庭月色無煙燭 入座山光不速賓

更有松絃彈譜外 只堪珍重未傳人 東文選卷之十九

 

 

 

 

 

 

해석

滿庭月色無煙燭

만정월색무연촉

뜰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이고

入座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자리에 들어온 산 빛은 초청하지 않은 손님이네.

更有松絃彈譜外

갱유송현탄보외

다시 소나무가 거문고 되어 악보 바깥을 연주하니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다만 진중한 것일 뿐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네. 東文選卷之十九

 

 

해설

정계의 원로요, 학계의 태두요, 교육계의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추앙되는 작자는, 부귀 영화에 풍류마저 아울러 갖춘, 실로 희대의 유복인이었다.

 

이 시는 그가 어느 달 밝고, 바람 맑은 밤, 송죽(松竹) 소리 절로 음악인 양 그윽한 가운데, 문득 읊은 한 수의 즉흥이었다고, 최자(崔滋)는 말하고 있다.

 

울멍줄멍 산으로 에워싸인 작은 하늘엔, 황금빛 부드러운 달이 연기도 없이 타는 황촉불인 양 아늑하고도 정겹게 밝아 있다.

 

뜰에 평상 자리하여 여름 한밤의 시원을 즐기며, 달빛에 조명된 사방을 둘러보노라면, 마치 바퀴살이 바퀴통으로 모여들 듯, 둘레의 많은 크고 작은 계곡을 이룬 산능선들이 먼 높은 곳에서 가까운 낮은 곳으로 비껴 달려와서는, 마당 둘레에 무릎을 모아 다소곳이 둘러앉는다. 모두가 청할 나위 없이 항시 찾아드는 자연의 벗들이다.

 

한편, 솔숲을 비껴 부는 솔바람 소리의 맑은 가락은, 태고 이래의 자연의 음률로 끊일 사이가 없다.

 

자연에서 얻게 되는 이 진귀하고도 소중한 즐거움은, 다만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누리는 이만이 누릴 뿐, 말로써 남에게 알게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을 촛불로 본 거시안(巨視眼)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떠벌렸다.

 

天氣地褥山爲枕

하늘이불 땅요에 산베개하여

月燭雲屏海作醇

달촛불구름병풍 바닷물이로다.

 

이 떠돌이 시구의 과대망상적(妄想的) 허풍과는 아주 딴판으로, 작자의 뜰에 비친 동그마하고도 자그마한 달은, 오롯하고도 아늑하며, 다소곳하고도 오순도순한 촛불의 이미지로 비쳐오고 있음을 본다.

 

산을 유정(有情者)로 의인(擬人)하여 동태(動態)로 파악한 승구의 상은 기발하다. 그러나, 기ㆍ승ㆍ전구가 다 은유인 속에, 다시 고차원의 2단 은유로, 속의 속뜻을 우의(寓意)한 수법은 더욱 기발하다. , 기구의 학덕의 밝음, 승구에는 사방에서 모여드는 제자들, 전구에는 그들의 낭랑한 독서성(讀書聲)’, 그리고, 결구에는 삼락(三樂)의 하나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즐거움[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 각각 암유되어 있음을 본다.

 

미전인(未傳人)’을 두고, 이수광지봉유설에서, 스승으로서 마땅히 전해 주어야 할 것을 전해 주지 못한다는 말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 평이야말로 온당하다 할 수 없으니, ‘미전인(未傳人)’학덕의 전수(傳授)’를 뜻함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또는 교육의 그지없는 즐거움을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왜 산중에 사느냐?’는 물음에, 이백(李白)은 숫제 대답 대신 빙긋이 웃고 말지 않았던가. ‘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笑而不答)’, 천만언의 설명으로도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임을 깨달은 나머지의 자연 발로이듯이……

 

()의 은자 도홍경(陶弘景)의 다음 시도 그렇다. 그가 황제로부터 산중하소유(山中何所有)’의 물음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산중에 있는 게 뭐냐시오나, 영 위엔 흰구름이 많사오이다.

只自可怡悅 不堪持寄君

다만 제 스스로 즐거워할 뿐 가져다 드릴 수는 없사오이다.

 

흰구름을 가져다가 바칠 수도 없거니와, 흰구름을 바라보며 즐기는 그 마음은 더더구나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듯이, 자연을 벗으로 한 그지없는 사랑이나, 제자들의 독서성을 듣는 흐뭇한 즐거움을 무슨 수로 남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에 대하여 최자(崔滋)는 그의 보한집권중 2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시상이 풍아(風雅)하고 고상하며, 시어가 맑고 완곡(婉曲)하여, 진세(塵世)를 벗어난 느낌이다.

雅尙出塵, 詩語淸婉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 42~43

 

 

인용

지봉유설

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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