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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 - 14. 공숙문자에 대한 세상의 평가와 엇갈린 공자의 평가 본문

고전/논어

논어 헌문 - 14. 공숙문자에 대한 세상의 평가와 엇갈린 공자의 평가

건방진방랑자 2021. 10. 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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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공숙문자에 대한 세상의 평가와 엇갈린 공자의 평가

 

 

子問公叔文子公明賈: “信乎夫子不言, 不笑, 不取乎?”

公叔文子, 大夫公孫拔. 公明, , . 文子爲人, 其詳不可知, 然必廉靜之士, 故當時以三者稱之.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厭者, 苦其多而惡之之辭. 事適其可, 則人不厭, 而不覺其有是矣. 是以稱之或過, 而以爲不言, 不笑, 不取也. 然此言也, 非禮義充溢於中, 時措之宜者不能. 文子雖賢, 疑未及此, 但君子與人爲善, 不欲正言其非也. 故曰其然豈其然乎”, 蓋疑之也.

○ 『禮記』 「檀弓上: “公叔文子升於瑕丘, 蘧伯玉.

文子: ‘樂哉斯丘也, 死則我欲葬焉.’ 蘧伯玉: ‘吾子樂之, 請前.’”

 

 

 

 

해석

子問公叔文子公明賈: “信乎夫子不言, 不笑, 不取乎?”

공자께서 공숙문자에 대해 공명가에게 물으며 참으로 부자께서는 말하지 않으시고, 웃지 않으시며, 취하지 않으시는가?”라고 말씀하셨다.

公叔文子, 大夫公孫拔.

공손문자는 위나라 대부인 공손발이다.

 

公明, , .

공명은 성이고 가는 이름으로 또한 위나라 사람이다.

 

文子爲人, 其詳不可知,

문자의 사람 됨됨이는 자세한 것을 알 순 없지만

 

然必廉靜之士, 故當時以三者稱之.

반드시 청령하고 정숙한 선비였기 때문에 당시에 세 가지로 칭찬한 것이다.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공명가가 말한 사람이 과했습니다. 부자께서는 때에 맞은 후에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았고, 즐거운 후에 웃으시니 사람들이 웃음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의에 합당한 후에 취했으니 사람들이 취함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공자께서 그러한가. 어찌 그러하겠나?”라고 말씀하셨다.

厭者, 苦其多而惡之之辭.

()은 많은 것을 괴로워하여 그것을 미워하는 말이다.

 

事適其可, 則人不厭,

일이 괜찮은 것에 맞으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고

 

而不覺其有是矣.

이것을 소유함을 깨닫지 못한다.

 

是以稱之或過,

이러므로 칭찬한 것이 과했고

 

而以爲不言, 不笑, 不取也.

말하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然此言也, 非禮義充溢於中,

그러나 이 말은 예의(禮義)가 내면에 충만하고도 넘쳐

 

時措之宜者不能.

때에 조치함이 마땅함을 얻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文子雖賢, 疑未及此,

문자가 비록 어질다 해도 이에 미치지 못함을 의심했다.

 

但君子與人爲善, 不欲正言其非也.

다만 군자가 사람과 선을 행함에 바로 잘못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故曰其然豈其然乎”,

그러므로 그러한가, 어찌 그러하겠나?’라고 말했으니,

 

蓋疑之也.

대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 『禮記』「檀弓上: “公叔文子升於瑕丘, 蘧伯玉.

예기』 「단궁 상에서 말했다. “공숙문자가 하구에 올라갔고 거백옥이 따라갔다.

 

文子: ‘樂哉斯丘也, 死則我欲葬焉.’

문자가 말했다. ‘좋구나. 이 언덕이여! 죽거든 나는 장지(葬地)로 하고 싶구만.’

 

蘧伯玉: ‘吾子樂之, 請前.’”

거백옥이 말했다. ‘자네가 그것을 좋아한다면 내가 앞서서 장지로 삼겠네.’

 

공자는 위()나라 대부 공숙문자(公叔文子)의 언행에 대해 공명가(公明賈)라는 사람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공숙문자는 말씀도 안 하시고 웃지도 않으시며 재물을 취하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공명가는 말 전한 사람이 지나쳤다고 정정한 후 위와 같이 말했다. ‘논어헌문(憲問)’에 나온다.

 

夫子는 대부 공숙문자에 대한 존칭이다. ‘춘추좌씨전에 보면 사추(史鰌)가 공숙문자를 평하여 부를 누리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자가 적은데 나는 오로지 그대에게서 그 점을 보았다고 했으니, 공숙문자는 본래 어질었다. 시연후(時然後)란 적절한 때가 된 이후에다. 불염(不厭)은 혐오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락연후(樂然後)는 진정으로 즐거워 한 이후에, 의연후(義然後)는 도의에 적합한 이후에다.

공자는 공명가의 말을 듣고 기연 기기연호(其然 豈其然乎)”라 했다. “그렇겠지요. 어찌 그렇겠습니까?”라는 뜻이다. ‘어찌 그렇겠습니까?’에 대해 주자는, 공자가 과연 공숙문자의 마음이 예의(禮義)로 충일(充溢)해서 시조(時措, 시기에 맞는 조처)의 마땅함을 얻었을까 의심한 말로 간주했다.

하지만 1778년에 화순(和順) 동림사(東林寺)에서 논어를 읽던 18세의 정약용은, 공자가 앞서 들은 말의 불합리성을 깨닫고 그런 말을 했다고 여겼다. 37년 후 그는 다른 사람의 설에서 합치점을 발견하고는 기뻐서 그 사실을 밝혔다. 때에 맞춰 말하는 시언(時言), 진정 즐거워 웃는 낙소(樂笑), 도의에 맞는 재물만 취하는 의취(義取)는 현대인에게도 요청되는 진지한 생활태도이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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