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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 - 16. 진문공과 제환공에 대한 공자의 평가 본문

고전/논어

논어 헌문 - 16. 진문공과 제환공에 대한 공자의 평가

건방진방랑자 2021. 10. 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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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문공과 제환공에 대한 공자의 평가

 

 

子曰: “晉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 古穴反.

晉文公, 重耳. 齊桓公, 小白. , 詭也. 二公皆諸侯盟主, 攘夷狄以尊周室者也. 雖其以力假仁, 心皆不正, 桓公, 仗義執言, 不由詭道, 猶爲彼善於此. 文公則伐以致, 而陰謀以取勝, 其譎甚矣. 二君他事亦多類此, 故夫子言此以發其隱.

 

 

 

 

 

해석

子曰: “晉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공자께서 진문공은 속였고 바르지 않았으며 제환공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다.

, 古穴反.

晉文公, 重耳.

진문공은 이름이 중이다.

 

齊桓公, 小白. , 詭也.

제환공은 이름이 소백이다. ()은 속인다는 것이다.

 

二公皆諸侯盟主, 攘夷狄以尊周室者也.

두 사람은 모두 제후의 맹주로 이적을 물리치고 주나라 왕실을 높였다.

 

雖其以力假仁, 心皆不正,

비록 힘으로 인을 빌린 것으로 마음이 모두 부정하다.

 

桓公, 仗義執言,

그러나 환공은 초나라를 정벌할 때 의()를 잡고 말하여

 

不由詭道, 猶爲彼善於此.

속이는 방법을 따르지 않았으니, 오히려 환공이 문공보다 나은 게 있었다.

 

文公則伐以致, 而陰謀以取勝,

문공은 위나라를 정벌하려 초나라를 데려오고 음모로 승리함을 취했으니,

 

其譎甚矣.

속임의 심한 것이다.

 

二君他事亦多類此,

두 임금의 다른 일 또한 많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故夫子言此以發其隱.

부자께서 이것을 말하여 숨겨진 걸 드러낸 것이다.

 

()나라 문공(文公)과 제()나라 환공(桓公)은 모두 춘추시대의 패자(覇者)이다. 그들은 제후(諸侯)들이 동맹할 때 맹주(盟主)가 되고 주나라 왕실을 도와 천하를 안정시켰다. 공자는 두 사람을 비교하여 문공은 모략(謀略)이 많았던 반면에 환공은 정도(正道)를 밟았다고 논평했다. ‘논어’ ‘헌문(憲問)’의 이 장()에 나온다. ()은 속일 사()와 같으니, 권모술수(權謀術數)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맹자는 중니(仲尼, 공자)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자(朱子)는 환공도 문공도 무력을 쓰면서 인()을 빌려왔으므로 마음이 본래 부정(不正)하다고 규정했다. 다만 환공은 초()나라를 칠 때 의리를 따르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나 문공은 위()나라를 치면서 초나라를 빼앗아 음모로 승리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약용에 따르면, 공자는 환공이 마음 씀씀이나 행사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도를 지켰기에 문공과 다르다고 선명하게 구별했다.

제나라 환공은 형 공자규(公子糾)와 싸워 이긴 후 제나라 군주가 되어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국위(國威)를 떨쳤다. 진나라 문공 중이(重耳)는 내란을 피해 19년간이나 망명해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 즉위한 후 성복(城濮)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국세(國勢)를 펼쳤다. 그런데 환공은 천자의 명령을 공손하게 받들었으나 문공은 당돌하게 천자의 의례인 묘도(墓道) 제도를 청했다. 또 환공은 관중(管仲)과 원수였지만 그를 사면하고 등용했으나 문공은 호언(狐偃)의 은혜를 입고도 그를 내쳤다. 이 사실들만 보아도 환공과 문공은 사람됨이 달랐다. 현실 정치와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공자의 시선은 늘 냉철하다. 냉철한 시선을 우리는 배워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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