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최치원의 인생과 한시
文昌公崔致遠字孤雲, 以賓貢入中朝擢第. 遊高騈幕府. 時天下雲擾, 簡檄皆出其手.
及還鄕, 同年顧雲賦孤雲篇以送之云: “因風離海上, 伴月到人間. 徘徊不可住, 寞寞又東還.” 公亦自敍云: “巫峽重峯之歲, 絲入中華. 銀河列宿之年, 錦還故國.” 豫知我太祖龍興, 獻書自達, 然灰心仕宦, 卜隱伽倻山.
一旦早起出戶, 莫知其所歸, 遺冠屨於林間, 盖上賓也, 寺僧以其日薦冥禧. 公雲髥玉脥, 常有白雲蔭其上, 寫眞留讀書堂, 至今尙存. 自讀書堂至洞口武陵樓, 幾十里, 丹崖碧嶺, 松檜蒼蒼, 風水相激, 自然有金石之聲. 公嘗題一絶, 醉墨超逸, 過者皆指之曰: ‘崔公題詩石.’ 其詩曰: ‘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해석
文昌公崔致遠字孤雲, 以賓貢入中朝擢第.
문창공(文昌公) 최치원의 자는 고운(孤雲)으로 빈공과로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했고
遊高騈幕府.
고병(高騈)의 막부에서 머물렀다.
時天下雲擾, 簡檄皆出其手.
당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웠는데[雲擾] 죽간에 쓴 격문(檄文)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及還鄕, 同年顧雲賦孤雲篇以送之云: “因風離海上, 伴月到人間. 徘徊不可住, 寞寞又東還.”
신라로 환향하러 할 때 동년배인 고운(顧雲)이 최고운에게 시를 지어 전송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因風離海上 伴月到人間 | 바람 따라 바닷가로 떠나 달 벗해 인간세상에 이르렀다가 |
徘徊不可住 寞寞又東還 | 배회하느라 갈 수 없는 듯했으나 까마득하디 까마득한 또한 동쪽으로 돌아가는 구나. |
公亦自敍云: “巫峽重峯之歲, 絲入中華. 銀河列宿之年, 錦還故國.”
최치원 또한 스스로 다음과 같이 썼다.
巫峽重峯之歲 | 무협중봉【무협(巫峽)에 12봉이 있다】의 해에 미천한 몸으로 |
絲入中華 | 중원에 들어가. |
銀河列宿之年 | 은하열수【은하열수(銀河列宿): 하늘에 28수의 별자리가 있는 데서 연유함.】의 해에 |
錦還故國 | 비단옷 입고 고국으로 돌아왔네. |
豫知我太祖龍興, 獻書自達, 然灰心仕宦, 卜隱伽倻山.
우리 태조가 융성히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아 글을 드려 스스로 도달하게 했지만 벼슬살이엔 뜻을 두지 않고 가야산에 숨어 살았다.
一旦早起出戶, 莫知其所歸, 遺冠屨於林間,
하루는 일찍 일어나 문을 나서니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하는데 숲 사이에 갓과 짚신을 버려져 있었다.
盖上賓也, 寺僧以其日薦冥禧.
아마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 여겨【상빈(上賓):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간 것을 이름.】 사찰의 스님들은 그날로 명복(冥福)[冥禧]을 빈다.
公雲髥玉脥, 常有白雲蔭其上, 寫眞留讀書堂, 至今尙存.
최치원의 구름 같은 수염에 옥 같은 뺨으로 늘 흰 구름이 그 위를 덮은 듯했으니, 초상화를 그려 독서당에 남겨둬 지금에 이르도록 아직도 남아 있다.
自讀書堂至洞口武陵樓, 幾十里,
독서당으로부터 골짜기 입구 무릉루까지는 몇 십리로
丹崖碧嶺, 松檜蒼蒼, 風水相激, 自然有金石之聲.
붉은 벼랑에 푸른 산고개엔 소나무와 회화나무가 푸르고 바람과 물이 서로 부딪쳐 자연스레 금석(金石)의 소리가 난다.
公嘗題一絶, 醉墨超逸, 過者皆指之曰: ‘崔公題詩石.’
최치원이 일찍이 한 절구를 지었는데 취기에 멋대로 세상을 초탈한 듯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그를 가리키며 ‘최치원의 시를 쓴 바위’라 했다.
其詩曰: ‘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그 시는 다음과 같다.
狂噴疊石吼重巒 | 겹겹의 바위에 미친 듯 내달리며 여러 산봉우리에 울리니 |
人語難分咫尺間 | 사람 말이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
常恐是非聲到耳 | 늘 시비소리가 귀에 닿을까 걱정되어 |
故敎流水盡籠山 | 일부러 흐르는 물로 죄다 산을 에두르게 했지.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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