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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위령공 - 2. 공자는 하나로 모든 이치를 꿰뚫었다(予一以貫之) 본문

고전/논어

논어 위령공 - 2. 공자는 하나로 모든 이치를 꿰뚫었다(予一以貫之)

건방진방랑자 2021. 10. 1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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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자는 하나로 모든 이치를 꿰뚫었다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 音汝. , 音志. , 平聲, 下同.

子貢之學, 多而能識矣. 夫子欲其知所本也, 故問以發之.

 

對曰: “, 非與?”

方信而忽疑, 蓋其積學功至, 而亦將有得也.

 

: “非也, 一以貫之.”

說見第四篇. 然彼以行言, 而此以知言也.

氏曰: “聖人之道大矣, 人不能遍觀而盡識,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 然聖人豈務博者哉? 如天之於衆形, 匪物物刻而雕之也. 故曰: ‘予一以貫之.’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氏曰: “孔子之於曾子,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 曾子復深諭之曰 ’. 子貢則先發其疑而後告之, 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 二子所學之淺深, 於此可見.”

愚按: 夫子之於子貢, 屢有以發之, 而他人不與焉. 以下諸子所學之淺深, 又可見矣.

 

 

 

 

해석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공자께서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 그걸 기억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다.

, 音汝. , 音志. , 平聲, 下同.

子貢之學, 多而能識矣.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워 기억하는 것이었으니,

 

夫子欲其知所本也, 故問以發之.

부자께서는 근본인 것을 알게 하고 싶어 물음으로 앎의 욕구를 촉발시킨 것이다.

 

對曰: “, 非與?”

자공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라고 대답했다.

方信而忽疑,

방금까지 믿다가 갑자기 의심하게 되었으니,

 

蓋其積學功至, 而亦將有得也.

대개 학문을 쌓은 공이 지극하였고 또한 장차 터득함이 있었던 것이다.

 

: “非也, 一以貫之.”

그러자 공자께서 아니고말고. 나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說見第四篇.

해석은 이인15에서 보인다.

 

然彼以行言, 而此以知言也.

그러나 거기에선 행실로 말한 것이고 여기선 지혜로 말한 것이다.

 

氏曰: “聖人之道大矣,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성인의 도는 크기에

 

人不能遍觀而盡識,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

사람이 두루 보아도 다 알지 못해서 마땅히 많이 배워 그걸 기억하는 거야라고 여긴다.

 

然聖人豈務博者哉?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에 힘쓰겠는가.

 

如天之於衆形, 匪物物刻而雕之也.

그건 마치 하늘이 온갖 형체들에 물건마다 새기고 조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故曰: ‘予一以貫之.’

그렇기 때문에 여일이관지(予一以貫之)’라 하였다.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중용33장의 덕의 가볍기가 털과 같다고 하니 털은 오히려 비교할 거라도 있지만 하늘의 이치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지극하구나!’라는 것이다.”

 

氏曰: “孔子之於曾子,

윤순(尹淳)이 말했다. “공자는 증자에 대하여 이인15에서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

물을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이와 같이 말해주었지만,

 

曾子復深諭之曰 ’.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쳐 !’라고 대답하였다.

 

子貢則先發其疑而後告之,

자공 같은 경우는 먼저 의심을 발동케 한 후에 그것을 말해줬지만

 

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

자공은 마침내 또한 증자가 라는 대답과는 같지 못했으니,

 

二子所學之淺深, 於此可見.”

두 사람 학문의 얕고 깊음을 이에 볼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 屢有以發之,

내가 생각하기론 부자께서 자공에 대해 자주 그를 촉발시키곤 했으나,

 

而他人不與焉.

다른 사람은 참예조차 하지 못했으니,

 

以下諸子所學之淺深, 又可見矣.

안연과 증자 이하의 제자들이 배운 바의 얕고 깊음을 또한 볼 수가 있다.

 

공자는 학문지식이나 도덕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아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중시했다. 줄여서 일관(一貫)이라 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의 이 장()에서 공자는 학문지식과 관련해서 일관(一貫)을 강조했다. 한편 이인(里仁)’에서는 도덕행위가 충서(忠恕)의 이념에 따라 일관(一貫)되어야 한다고 증자(曾子)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정약용은 두 곳의 일관(一貫)이 모두 충서(忠恕), 더 줄여서 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와 행()이 분리될 수 없다고 여겨, 두 곳의 일관(一貫)이 서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일설(一說)로서 갖추어 둘 만하다.

()는 자공(子貢), 즉 단목사(端木賜)의 이름이다. 사야(賜也)의 야()는 돈호의 어조를 드러낸다. 비야(非也)의 야()가 단정의 어조를 나타내는 것과 구별된다. ()’, ()로 인칭대명사다. ()여긴다는 뜻의 판단동사다. 그 빈어가 다학이지지자(多學而識之者)인데, 다학(多學)은 박학(博學), ()는 기억(記憶)을 의미한다. ()는 의문종결사다. ‘연 비여(, 非與)’는 공자의 말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고서 다시 의문을 품어 반문한 것이다.

박학(博學)과 기억(記憶)은 지식을 축적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 검증을 거치지 않은 통념은 아직 지식이 아니다. 최한기는 추측9推測)을 거치지 않는다면 앎이 근거를 지닐 수 없다고 했는데, 추측은 추론(推論)과 실측(實測)에 해당한다. 또한 지식은 체계를 지녀야 하며, 그 체계는 현실사회의 발전에 유효한 이념에 따라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적 활동에서 박학과 기억만을 존숭하고 있지 않나 되물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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