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자는 하나로 모든 이치를 꿰뚫었다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女, 音汝. 識, 音志. 與, 平聲, 下同.
○ 子貢之學, 多而能識矣. 夫子欲其知所本也, 故問以發之.
對曰: “然, 非與?”
方信而忽疑, 蓋其積學功至, 而亦將有得也.
曰: “非也, 予一以貫之.”
說見第四篇. 然彼以行言, 而此以知言也.
○ 謝氏曰: “聖人之道大矣, 人不能遍觀而盡識,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 然聖人豈務博者哉? 如天之於衆形, 匪物物刻而雕之也. 故曰: ‘予一以貫之.’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尹氏曰: “孔子之於曾子,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 曾子復深諭之曰 ‘唯’.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告之,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 二子所學之淺深, 於此可見.”
愚按: 夫子之於子貢, 屢有以發之, 而他人不與焉. 則顔ㆍ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 又可見矣.
해석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공자께서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 그걸 기억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다.
女, 音汝. 識, 音志. 與, 平聲, 下同.
○ 子貢之學, 多而能識矣.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워 기억하는 것이었으니,
夫子欲其知所本也, 故問以發之.
부자께서는 근본인 것을 알게 하고 싶어 물음으로 앎의 욕구를 촉발시킨 것이다.
對曰: “然, 非與?”
자공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라고 대답했다.
方信而忽疑,
방금까지 믿다가 갑자기 의심하게 되었으니,
蓋其積學功至, 而亦將有得也.
대개 학문을 쌓은 공이 지극하였고 또한 장차 터득함이 있었던 것이다.
曰: “非也, 予一以貫之.”
그러자 공자께서 “아니고말고. 나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說見第四篇.
해석은 「이인」15에서 보인다.
然彼以行言, 而此以知言也.
그러나 거기에선 행실로 말한 것이고 여기선 지혜로 말한 것이다.
○ 謝氏曰: “聖人之道大矣,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성인의 도는 크기에
人不能遍觀而盡識,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
사람이 두루 보아도 다 알지 못해서 마땅히 ‘많이 배워 그걸 기억하는 거야’라고 여긴다.
然聖人豈務博者哉?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에 힘쓰겠는가.
如天之於衆形, 匪物物刻而雕之也.
그건 마치 하늘이 온갖 형체들에 물건마다 새기고 조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故曰: ‘予一以貫之.’
그렇기 때문에 ‘여일이관지(予一以貫之)’라 하였다.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중용』 33장의 ‘덕의 가볍기가 털과 같다고 하니 털은 오히려 비교할 거라도 있지만 하늘의 이치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지극하구나!’라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
윤순(尹淳)이 말했다. “공자는 증자에 대하여 「이인」 15에서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
물을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이와 같이 말해주었지만,
曾子復深諭之曰 ‘唯’.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쳐 ‘예!’라고 대답하였다.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告之,
자공 같은 경우는 먼저 의심을 발동케 한 후에 그것을 말해줬지만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
자공은 마침내 또한 증자가 ‘예’라는 대답과는 같지 못했으니,
二子所學之淺深, 於此可見.”
두 사람 학문의 얕고 깊음을 이에 볼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 屢有以發之,
내가 생각하기론 부자께서 자공에 대해 자주 그를 촉발시키곤 했으나,
而他人不與焉.
다른 사람은 참예조차 하지 못했으니,
則顔ㆍ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 又可見矣.
안연과 증자 이하의 제자들이 배운 바의 얕고 깊음을 또한 볼 수가 있다.
○ 공자는 학문지식이나 도덕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아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중시했다. 줄여서 일관(一貫)이라 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의 이 장(章)에서 공자는 학문지식과 관련해서 일관(一貫)을 강조했다. 한편 ‘이인(里仁)’에서는 도덕행위가 충서(忠恕)의 이념에 따라 일관(一貫)되어야 한다고 증자(曾子)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정약용은 두 곳의 일관(一貫)이 모두 충서(忠恕), 더 줄여서 서(恕)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지(知)와 행(行)이 분리될 수 없다고 여겨, 두 곳의 일관(一貫)이 서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일설(一說)로서 갖추어 둘 만하다.
사(賜)는 자공(子貢), 즉 단목사(端木賜)의 이름이다. 사야(賜也)의 야(也)는 돈호의 어조를 드러낸다. 비야(非也)의 야(也)가 단정의 어조를 나타내는 것과 구별된다. 여(女)는 ‘너’, 여(予)는 ‘나’로 인칭대명사다. 위(爲)는 ‘여긴다’는 뜻의 판단동사다. 그 빈어가 다학이지지자(多學而識之者)인데, 다학(多學)은 박학(博學), 지(識)는 기억(記憶)을 의미한다. 여(與)는 의문종결사다. ‘연 비여(然, 非與)’는 공자의 말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고서 다시 의문을 품어 반문한 것이다.
박학(博學)과 기억(記憶)은 지식을 축적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단, 검증을 거치지 않은 통념은 아직 지식이 아니다. 최한기는 추측9推測)을 거치지 않는다면 앎이 근거를 지닐 수 없다고 했는데, 추측은 추론(推論)과 실측(實測)에 해당한다. 또한 지식은 체계를 지녀야 하며, 그 체계는 현실사회의 발전에 유효한 이념에 따라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적 활동에서 박학과 기억만을 존숭하고 있지 않나 되물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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