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행하여짐의 조건
子張問行.
猶問達之意也.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行矣;
篤, 厚也. 蠻, 南蠻. 貊, 北狄.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行篤, 行不之行, 去聲. 貊, 亡百反.
○ 子張意在得行於外, 故夫子反於身而言之, 猶答干祿ㆍ問達之意也. 二千五百家爲州.
立, 則見其參於前也; 在輿, 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參, 七南反. 夫, 音扶.
○ 其者, 指忠信ㆍ篤敬而言. 參, 讀如毋往參焉之參, 言與我相參也. 衡, 軛也. 言其於忠信篤敬念念不忘, 隨其所在, 常若有見, 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 然後一言一行, 自然不離於忠信篤敬, 而蠻貊可行也.
子張書諸紳.
紳, 大帶之垂者. 書之, 欲其不忘也.
○ 程子曰: “學要鞭辟近裏, 著己而已.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言忠信, 行篤敬;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只此是學. 質美者明得盡, 査滓便渾化, 卻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以持養之, 及其至則一也.”
해석
子張問行.
자장이 행함에 대해 여쭈었다.
猶問達之意也.
「안연」20에서 달(達)을 물은 뜻과 같다.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行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은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만백(蠻貊)과 같은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행해지게 된다.
篤, 厚也. 蠻, 南蠻.
독(篤)은 중후함이다. 만(蠻)은 남만이다.
貊, 北狄.
맥(貊)은 북적이다.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그러나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행동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못하면 비록 주리(州里) 같은 작은 동네라 해도 행해지겠는가?
行篤, 行不之行, 去聲. 貊, 亡百反.
○ 子張意在得行於外,
자장은 뜻이 밖으로 행해짐을 얻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故夫子反於身而言之,
부자께서 몸에 되돌리도록 말씀하시니,
「위정」18의 ‘봉록을 구하는 것’과 「안연」20의 달(達)을 물은 뜻과 같다.
二千五百家爲州.
2500개의 집이 모여 주(州)가 된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을 보면 자장(子張)이 어떻게 해야 행(行)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자장(子張)은 공자보다 48세나 어린 제자였다. 이보다 앞서 ‘안연(顔淵)’에서 자장(子張)은 어떻게 해야 달(達)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행(行)은 달(達)과 같되, 행(行)은 행세(行世), 달(達)은 통달(通達)이다. 행(行)이란 곧, 한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아나가 남들의 존경을 받는 것을 말한다.
충신(忠信)의 충(忠)은 진심을 다함, 신(信)은 남을 기만하지 않음이다. 독경(篤敬)의 독(篤)은 도탑고 신실함, 경(敬)은 공손하고 신중함이다. 단, 충(忠)과 독(篤)이 각각 신(信)과 경(敬)을 수식한다고 볼 수도 있다. 수(雖)∼는 ‘비록 ∼일지라도’이다. 만맥(蠻貊)은 미개(未開)의 나라를 가리킨다. 만(蠻)은 남방의 오랑캐, 맥(貊)은 북방 오랑캐인 북적(北狄)을 뜻한다. 주리(州里)는 자기의 향리(鄕里)다. 주(州)는 1만2500호의 마을, 리(里)는 25호의 마을이다. 호재(乎哉)는 반문의 어조를 띤다.
주자는 ‘백록동서원학규(白鹿洞書院學規)’에서 언충신(言忠信)ㆍ행독경(行篤敬)ㆍ징분질욕(懲忿窒慾)ㆍ천선개과(遷善改過)를 수신(修身)의 요점으로 삼았다. 징분질욕(懲忿窒慾)은 ‘주역’의 말로, 분노(忿怒)를 참고 사욕(私慾)을 억제함이다. 천선개과(遷善改過)도 ‘주역’의 말로, 선으로 옮겨가서 지난 잘못을 고침이다. 그 둘보다 언충신(言忠信)과 행독경(行篤敬)이 앞에 있다. 오늘날에도 떳떳한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우선 말이 진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독실하고 공손해야만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立, 則見其參於前也; 在輿, 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서면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이 앞에서 참예함을 보게 되고, 수레에 타면 멍에에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이 기대어 있는 걸 보게 되니 그러한 후에 행하여진다.”
參, 七南反. 夫, 音扶.
○ 其者, 指忠信ㆍ篤敬而言.
기(其)라는 것은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參, 讀如毋往參焉之參,
참(參)은 ‘가서 끼지 말라’의 참(參)과 같은 뜻으로 읽어야 하니,
言與我相參也.
나와 함께 서로 참예한다는 말이다.
衡, 軛也.
형(衡)은 멍에이니,
言其於忠信篤敬念念不忘, 隨其所在,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 있는 곳에 따라
常若有見, 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
항상 보이는 것 같아 비록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然後一言一行, 自然不離於忠信篤敬,
그러한 후에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행실이 자연히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에서 떠나지 않아
而蠻貊可行也.
만맥(蠻貊)에서도 행하여 질 수 있다는 말이다.
子張書諸紳.
자장이 띠에 썼다.
紳, 大帶之垂者.
신(紳)은 큰 띠에 드리워진 것이다.
書之, 欲其不忘也.
그것에 썼다는 것은 잊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程子曰: “學要鞭辟近裏, 著己而已.
정명도(程明道)가 말했다. “학문은 내면 가까이에 안착하여 붙기를 요구할 뿐이다.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배워서 박학해지고 뜻을 독실히 하며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며
言忠信, 行篤敬;
말을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게 하며 행실은 독실하고 공경히 하면
立則見其參於前,
그것이 앞에서 참예함을 보고
在輿則見其倚於衡; 只此是學.
수레에 타면 그것이 멍에에 기대어 있음을 보게 되니, 이것이 학문이다.
質美者明得盡, 査滓便渾化,
자질이 아름다운 사람은 밝히기를 다하여 찌꺼기가 곧 녹아들어
卻與天地同體.
천지와 함께 하나의 몸이 되고,
其次惟莊敬以持養之,
다음 등급은 장엄하고 공경함으로 보지(保持)하고 기르는 것이니
及其至則一也.”
지극함에 이르러선 하나다.”
○ 참전의형(參前倚衡)이라 하면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항상 생각한다는 뜻이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나왔다. 자장(子張)이 행(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행(行)은 남의 인정을 받아 떳떳하게 행세함을 말한다.
이어서 공자는 서 있을 때나 수레에 타고 있을 때나 충신과 독경이 늘 눈앞에 보이듯이 해야 한다고 했다. 충신과 독경에서 잠시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는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자장은 그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으려고 자기 허리띠에 적었다. 그만큼 정성이 독실했다.
견기참어전(見其參於前)과 견기의어형(見其倚於衡)의 기(其)는 여기서는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가리킨다. 참어전(參於前)과 의어형(倚於衡)은 하시라도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잊지 않음을 비유한다. 참(參)은 나와 서로 참여하여 일체(一體)가 됨이다. 의(倚)는 기대어 있음이다. 형(衡)은 수레의 끌채인 원(轅)의 맨 앞에 가로로 뻗은 나무를 말한다. 연후(然後)는 ‘그렇게 한 후’다. 저(諸)는 ‘그것을 ∼에’이다.
‘서경’ ‘태갑(太甲)’에 ‘고시천지명명(顧諟天之明命)’이란 말이 있다.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준 밝은 명령을 항상 돌아본다는 뜻이다. 하늘의 밝은 명령을 사람마다 자기 마음으로 삼고 있는 것이 명덕(明德)이니, 고시(顧諟)라고 하면 명명(明命)과 명덕(明德)을 늘 돌아본다는 뜻이 된다. 옛분들은 참전의형(參前倚衡)이 바로 고시(顧諟)라고 보았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의 자세를 지녀야 남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너무나 잘 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고전 >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 위령공 - 7. 사람을 잃는 경우와 헛소리로 치부되는 경우 (0) | 2021.10.13 |
---|---|
논어 위령공 - 6. 올곧은 사어(史魚)와 권도를 행한 거백옥(蘧伯玉) (0) | 2021.10.13 |
논어 위령공 - 4. 순임금의 하지 않는 다스림 (0) | 2021.10.13 |
논어 위령공 - 3.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0) | 2021.10.13 |
논어 위령공 - 2. 공자는 하나로 모든 이치를 꿰뚫었다(予一以貫之) (0) | 202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