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쳐들어온 왜놈 두 명을 제자로 삼은 검객의 이야기
검승전(劒僧傳)
신광수(申光洙)
壬辰後五十餘年, 客有讀書五臺山者, 有僧年八十, 癯而精悍, 與之語頗黠. 常在旁, 喜聞讀書聲, 遂與客熟.
一日曰: “老僧今夜祭亡師, 不獲侍左右矣.” 夜深聞哭甚悲, 曉益酸絶, 朝見面有涕蹤.
客問: ”吾聞浮屠法, 祭不哭, 師老而甚哭, 聲若有隱痛, 何也?”
僧歔欷而作曰: “老僧, 非朝鮮人也. 淸正之北入也, 簡倭能劒者二十以下五萬, 得三萬, 三萬得萬, 萬得三千. 別部在軍前, 能百步飛擊人, 搏空鳥, 老僧亦其一也. 幷海九郡而北, 踰鐵嶺, 躙關南, 深入六鎭, 弗見人. 海有石陡立百餘, 尋見一人雨笠衣, 坐其上. 別部譟而仰發銃, 其人劒揮之, 丸輒紛紛雨落, 倭益忿環不去. 已而, 其人騰而鳥下, 飛劒往來, 人肩如草薙, 於是倭能劒者三千, 不殺獨老僧若一倭已. 其人遂按劒而嘑: ‘若屬三千, 其不殺若二人已, 若雖夷而讐我, 亦人已, 吾不忍盡之矣, 若能順我乎?’ 曰: ‘死生唯命.’ 二人遂從其人, 山中數年, 盡得其術. 師弟子三人, 徧游八道名山, 每至一山, 結茅住一年或半年, 輒棄去. 秋深月盛, 或登絶頂, 舞劒器淋漓移時, 擊石斷高松, 怒洩乃止, 然姓名不肯言. 後十年, 嘗出游, 其人頫而結屝係, 一倭忽乘後拔劒, 斷其頭. 顧老僧曰: ‘夫匪吾讐乎? 今日得反之矣, 吾二人盍間行反諸日本.’ 老僧目見師遇害, 狠發劒, 亦立斷其倭頭. 噫! 老僧與其倭, 俱倭耳, 同師數十年, 不知其日夜內懷陰賊心也, 旣報師讐. 念‘吾三人, 若父子兄弟, 一朝塗喪師. 又劒倭東來三千, 吾兩倭在爾, 吾殺其一倭, 顧天下一身已. 日出限漲海萬里, 居異國, 又多畏, 吾獨生何爲? 遂人哭欲自殺. 又念‘我日本人也, 投東澥而死.’ 東走澥自投, 會海大魚闘, 皷浪卷落海, 不能再投. 卽上五臺爲僧, 食松葉四十年不下山, 每歲師死日, 未嘗不哭失聲, 今年老僧八十矣. 朝夕且死, 後年今日, 欲復哭易乎? 是以甚哭, 顧安知浮屠法乎?”
噫! 吾老於是矣, 仝寺僧, 莫知吾外國人, 今日爲措大, 一露其平生, 八十僧, 焉用諱倭? 爲言已, 夷然乃笑, 明日不知所之.
外史氏曰, 劒師俠而隱者乎? 當壬辰之難, 草埜勇, (缺二字.) 如洪季男ㆍ金應瑞輩, 多奮起捍賊, 立奇功, 劒師伏而弗出, 不欲以功名自顯, 何哉? 彼有異術, 誠知壬辰之變, 天數也, 非區區智力可弭. 自古智勇異能之士, 多不免小國尤甚焉, 雖以國朝言之, 南怡ㆍ金德齡, 皆是已. 故劒師寧老死嵁巖而弗悔也, 豈世傳二子所遇白頭隱者, 草衣客之流也歟? 至若不言其姓名, 尤奇矣哉! 然劒師與二倭處十數年, 亦可以知心術矣, 一爲賊一爲子, 而肘腋之, 卒以其道授賊自戕, 明於保身, 闇於知人, 殆所謂單豹養內, 虎食其外者邪? 故孟子曰: ‘羿亦有罪焉.’ 抑五臺老僧, 夷狄而奇男子也夫. 『石北集』권16
해석
壬辰後五十餘年, 客有讀書五臺山者, 有僧年八十, 癯而精悍, 與之語頗黠.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50여년이 지나 나그네가 오대산(五臺山)에서 독서하는데 스님은 여든 정도로 야위었지만 날래고 정신은 사나워 그와 함께 말해보면 매우 명철했다.
常在旁, 喜聞讀書聲, 遂與客熟.
항상 곁에 있어 기쁘게 책 읽는 소릴 듣다가 마침내 나그네와 친해지게 됐다.
一日曰: “老僧今夜祭亡師, 不獲侍左右矣.” 夜深聞哭甚悲, 曉益酸絶, 朝見面有涕蹤.
하루는 스님이 “저는 오늘 밤 돌아가신 스승을 제사지내는데 좌우에서 시중을 받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밤이 이슥해져서야 통곡소릴 들어보니 매우 서글펐고 새벽엔 더욱 구슬프고 심해졌으며 아침에 얼굴을 보니 눈물 자국이 있었다.
客問: ”吾聞浮屠法, 祭不哭, 師老而甚哭, 聲若有隱痛, 何也?”
나그네가 “내가 듣기로 불교의 법엔 제사 지내며 통곡하지 않는다던데 늙은 스님은 매우 통곡하여 소리가 은근히 애통하는 듯했으니 왜 그런 거요?”라고 물었다.
僧歔欷而作曰: “老僧, 非朝鮮人也.
스님이 한숨 쉬다가 말했다. “저는 조선 사람이 아닙니다.
淸正之北入也, 簡倭能劒者二十以下五萬, 得三萬, 三萬得萬, 萬得三千.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북쪽으로 진입할 때 왜인으로 검술을 잘하는 이를 선발하는데 20만 명에서 5만 명이, 5만 명에서 3만 명이, 3만 명에서 만 명이, 만 명에서 3천 명이 뽑혔지요.
別部在軍前, 能百步飛擊人, 搏空鳥, 老僧亦其一也.
별도의 부대는 군대 앞에 있어 백보를 날아 사람을 치고 공중의 새를 때릴 수 있었으니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입니다.
바닷가 9개의 군을 병합하며 북진하여 철령(鐵嶺)을 넘고 관남(關南)【남관(南關): 관남(關南)과 같음. 마천령(摩天嶺) 이남의 땅으로 함경남도의 범칭.】을 유린하면서 깊이 육진(六鎭)으로 들어갔지만 보이는 사람이라곤 없대요.
海有石陡立百餘, 尋見一人雨笠衣, 坐其上.
바다의 바위가 우뚝 솟은 100여리에 이윽고 한 사람이 갈삿갓을 쓰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게 보였지요.
別部譟而仰發銃, 其人劒揮之, 丸輒紛紛雨落, 倭益忿環不去.
제가 속한 별도의 부대가 성급히 올려다보며 조총을 발사하자 그 사람의 검이 그걸 휘두르니 총탄이 순식간에 조각조각 비처럼 떨어졌고 왜인들이 더욱 화내며 에워쌌지만 도망가진 않더군요.
已而, 其人騰而鳥下, 飛劒往來, 人肩如草薙, 於是倭能劒者三千, 不殺獨老僧若一倭已.
이윽고 그 사람이 뛰어 새처럼 내려오는데 날던 칼이 오고 가자 사람의 어깨는 풀 베듯[草薙]하니 이에 왜나라의 검술을 잘하는 이 3천 명 중에 유독 저와 한 명의 왜인만을 죽이지 않았을 뿐이었죠.
其人遂按劒而嘑: ‘若屬三千, 其不殺若二人已, 若雖夷而讐我, 亦人已, 吾不忍盡之矣, 若能順我乎?’
그 사람이 마침내 칼을 어루만지며 ‘너흰 3천 명에 속했지만 두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너희는 비록 오랑캐이고 나에게 복수할 테지만 또한 사람일 뿐 나는 차마 죽이진 못하겠으니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겠느냐?’라고 소리쳤어요.
曰: ‘死生唯命.’ 二人遂從其人, 山中數年, 盡得其術.
저는 ‘죽음과 삶은 또한 운명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람을 따라 산 속에서 수년을 보내며 죄다 그 검술을 터득했지요.
師弟子三人, 徧游八道名山, 每至一山, 結茅住一年或半年, 輒棄去.
스승과 제자 세 사람은 팔도의 명산을 두루 유람하며 매번 한 산에 닿으면 초가집을 엮고 일 년이나 반 년을 보내다가 갑자기 버리고 떠났죠.
秋深月盛, 或登絶頂, 舞劒器淋漓移時, 擊石斷高松, 怒洩乃止, 然姓名不肯言.
스승께선 가을이 깊어 달이 보름달이면 혹 정상에 올라 춤추던 검이 힘차게 움직여 바위를 베고 높은 소나무를 잘라 화냄을 쏟아내고서야 그쳤지만 이름은 기꺼이 말하주지 않으셨답니다.
後十年, 嘗出游, 其人頫而結屝係, 一倭忽乘後拔劒, 斷其頭.
10년 후에 일찍이 나가 유람하는데 스승께서 고개를 숙이고 짚신을 짜는데 한 왜인이 갑자기 뒤를 잡고서 검을 휘둘러 그 머리를 잘랐죠.
顧老僧曰: ‘夫匪吾讐乎? 今日得反之矣, 吾二人盍間行反諸日本.’
저를 돌아보며 ‘대체로 우리의 원수가 아니오? 오늘 그걸 되갚아줄 수 있었으니 우리 두 사람이 어찌 일본에 지름길로[間行] 가지 않으리까?’라고 말했어요.
老僧目見師遇害, 狠發劒, 亦立斷其倭頭.
저는 눈으로 스승이 해를 당한 것을 보고서 사납게 검을 빼서 또한 곧장 그 왜인 머릴 잘랐어요.
噫! 老僧與其倭, 俱倭耳, 同師數十年, 不知其日夜內懷陰賊心也, 旣報師讐.
아! 저와 그 왜인은 모두 왜나라 사람일 뿐으로 스승과 함께 한 지 수십년인데 그 날밤엔 내심 품었던 은근히 해치고자 하는 마음을 알지 못해서 곧장 스승의 원수를 갚고야 만 거죠.
念‘吾三人, 若父子兄弟, 一朝塗喪師.
‘나는 세 사람이 부자형제 같다고 생각했지만 하루아침에 길에서 스승을 잃고 말았다.
又劒倭東來三千, 吾兩倭在爾, 吾殺其一倭, 顧天下一身已. 日出限漲海萬里, 居異國, 又多畏, 吾獨生何爲?’ 遂人哭欲自殺.
또한 왜인 검사로 동쪽에 온 3000명 중 두 명만이 여기에 있다가 내가 그 한 왜인을 죽여 다만 천하에 한 몸뿐이고 해가 나오다가 너른 바다의 만리에서 끝나며 다른 나라에 산다 해도 또한 많이 두려우니 내가 홀로 산들 무얼 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서, 수인(遂人)【수인(遂人) 왕성(王城)으로부터 백 리 밖의 먼 교외에서 사는 사람.】인 저는 통곡하며 자살하려 했지요.
又念‘我日本人也, 投東澥而死.’ 東走澥自投, 會海大魚闘, 皷浪卷落海, 不能再投.
또 ‘나는 일본사람이니 동해에 빠져 죽자’라고 생각하고 동쪽 바다로 달려가 스스로 빠졌지만 마침 동해의 큰 물고기가 싸우고 있어 파도를 쳐서 떨어지던 바다를 돌돌 말아버려 다시 빠질 수가 없었지요.
卽上五臺爲僧, 食松葉四十年不下山, 每歲師死日, 未嘗不哭失聲.
곧바로 오대산에 올라 스승이 되었고 솔잎을 먹으며 사십 년이 되도록 하산치 않았고 매해 스승이 돌아가신 날엔 과연 통곡하다가 실성합니다.
今年老僧八十矣, 朝夕且死, 後年今日, 欲復哭易乎? 是以甚哭, 顧安知浮屠法乎?”
올해 저는 여든 살로 아침저녁으로 장차 죽을 텐데 내년 오늘이면 다시 통곡하려 함이 쉽겠습니까? 이 때문에 통곡하니 다만 어찌 불법을 알리오?”
噫! 吾老於是矣, 仝寺僧, 莫知吾外國人, 今日爲措大, 一露其平生, 八十僧, 焉用諱倭? 爲言已, 夷然乃笑, 明日不知所之.
아! 나는 여기에서 나이 들어 절의 스님과 함께 하는 동안 나는 외국인임조차 몰랐다가 오늘 가난한 선비[措大]가 되어서야 한 번 평생을 토로하니 여든 살 스님이 어찌 일본인이라 해서 꺼리겠는가? 말을 하길 그치고 태연히 웃다가 다음날 간 곳은 모른다.
外史氏曰, 劒師俠而隱者乎?
외사씨(外史氏)가 평론했다. 검의 스승은 의리 있고 은둔한 사람이리라.
當壬辰之難, 草埜勇, (缺二字.) 如洪季男ㆍ金應瑞輩, 多奮起捍賊, 立奇功, 劒師伏而弗出, 不欲以功名自顯, 何哉?
임진의 변란을 당해 홍계남(洪季男)과 김응서(金應瑞) 같은 초야의 용맹한 이가 많이 화내며 일어나 적을 막아 기이한 공을 세웠는데 검의 스승은 엎드려 나오지 않고 공명으로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 않은 건 왜인가?
彼有異術, 誠知壬辰之變, 天數也, 非區區智力可弭.
그에겐 기이한 기술이 있어 진실로 임진의 변란을 알았던 것은 천운으로 구차하게 지혜와 힘을 드러내려 한 건 아니리라.
自古智勇異能之士, 多不免小國尤甚焉, 雖以國朝言之, 南怡ㆍ金德齡, 皆是已, 故劒師寧老死嵁巖而弗悔也.
예로부터 지혜와 용기가 특별히 뛰어난 선비들이 대체로 작은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더욱 심했으니, 비록 조선의 경우로 말해보면 남이(南怡)ㆍ김덕령(金德齡)이 모두 이런 경우이기 때문에 검의 스승도 늙어 깊은 골짜기에 죽더라도 편안히 여기며 후회치 않았을 것이다.
豈世傳二子所遇白頭隱者, 草衣客之流也歟?
그럼에도 아마도 세상은 두 왜인이 만났던 흰 머리의 은자인 풀옷 입은 검객의 부류를 전하게 한 것이리라.
至若不言其姓名, 尤奇矣哉!
그 이름을 말하지 않은 데에 이르러선 더욱 기이하구나!
然劒師與二倭處十數年, 亦可以知心術矣, 一爲賊一爲子, 而肘腋之, 卒以其道授賊自戕, 明於保身, 闇於知人, 殆所謂單豹養內, 虎食其外者邪? 故孟子曰: ‘羿亦有罪焉.’
그러나 검의 스승과 두 왜놈은 십 수년을 함께 살아서 또한 마음을 알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적이 되었고 한 명은 제자가 되어 가까이에 있다가[肘腋]【주액(肘腋): ①팔꿈치와 겨드랑이. 곧 아주 가까운 곳. ②임금의 가장 가까운 측근.】 마침내 자기의 방법으로 적에게 전수했다가 스스로 해침으로 몸을 보호함엔 똑똑했더라도 남을 아는 데엔 멍청했으니 아마도 소위 ‘선표가 내면을 양생했지만 범이 외면을 잡아먹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맹자는 ‘예(羿) 또한 죄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抑五臺老僧, 夷狄而奇男子也夫. 『石北集』권16
또한 오대산(五臺山)의 늙은 스님은 오랑캐이더라도 기이한 남자로구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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