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성은 같았지만 습관에 따라 멀어졌다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 習於惡則惡, 於是始相遠耳.
○ 程子曰: “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
해석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공자께서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라고 말씀하셨다.
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
여기서 말하는 성(性)이라는 것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기질의 성품은 본래 아름답고 미움이 같지 않다.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그러나 처음 상태로 말한다면, 다 매우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다.
但習於善則善,
다만 선함에서 익히면 선한 것이고,
習於惡則惡, 於是始相遠耳.
미움에서 익히면 미워지니, 여기서 비로소 서로의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 程子曰: “此言氣質之性.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여기선 기질의 성품을 말한 것이지,
非言性之本也.
성품의 본연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만약 본연한 성으로 말한다면, 성은 곧 리(理)이니,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리(理)는 선하지 않음이 없어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이란 이것이다.
何相近之有哉?”
어찌 서로 비슷할 게 있겠는가?”
○ 버릇이 되어 버린 성질을 습성(習性)이라고 한다. 이때의 성(性)은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부속어이므로 ‘논어’ ‘양화(陽貨)’에서 성(性)과 습(習)을 구분한 것과는 다르다. ‘양화(陽貨)’의 이 장(章)에서 공자는 사람마다 성(性)은 같지만 습관(習慣)에 따라 인간은 서로 다르게 된다고 했다. 근(近)은 동(同), 원(遠)은 이(異)의 뜻을 함축한다.
공자가 말한 성(性)은 ‘중용’에서 ‘하늘이 명한 바[天命之謂性]’로 규정한 인간의 본성이다. 단, 북송의 정이(程頤)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남송의 주희(주자)는 기질지성(氣質之性)과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아울러 가리킨다고 보았다. 정약용은 성(性)을 실체로 보지 않았다. 그는 ‘맹자’와 ‘도덕경’, ‘시경’의 고전을 종합해서 인간 정신의 허령(虛靈)한 본체를 대체(大體)라 하고 대체(大體)의 구체적인 활동의 국면을 도심(道心)이라 하며 대체(大體)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싫어하는 기호(嗜好)의 측면을 성(性)이라고 보았다. 성(性)을 기호(嗜好)라고 규정하는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장한 셈이다. 한편 습(習)은 습관(習慣)ㆍ습숙(習熟)ㆍ친습(親習)ㆍ훈습(薰習)을 가리킨다. 본인이 선한 행위나 악한 행위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선이나 악의 기질을 형성해 가는 것을 가리킨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성(性)은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같으므로 성상근(性相近)이라 할 수 있지만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느냐 소인을 가까이 하느냐 하는 것은 갑과 을이 다르므로 결국 습상원(習相遠)이 된다. 인간은 서로 똑같지 않다. 차별(差別)도 있고 차이(差異)도 있다. 공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하여,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인간이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본성(本性)은 서로 같기에 학문과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서로 조화로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학문과 교육이 인간의 인간다운 본성을 성장시키는 방편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아마추어 사회학’으로 야매하자 / 네이춰(Nature)와 너춰(Nu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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