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나무도 없는 집인데 죽원옹이란 호를 짓다
사함士涵 유한렴劉漢廉이 죽원옹竹園翁이라 자호하고 거처하는 집에 불이당不移堂이란 편액을 걸고는 내게 서문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올라보고 그 동산을 거닐어 보았지만 한 그루의 대나무도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무하향無何鄕의 오유선생烏有先生의 집이 아니겠는가? 이름이란 것은 실질의 손님이거늘, 나더러 장차 손님을 위하란 말인가?” 사함이 머쓱해져서 한동안 있더니만, “애오라지 스스로 뜻을 부쳐본 것일 뿐이라오.”라고 하였다. 士涵自號竹園翁, 而扁其所居之堂曰不移, 請余序之. 余嘗登其軒, 而涉其園, 則不見一挺之竹. 余顧而笑曰: “是所謂無何鄕烏有先生之家耶? 名者實之賓, 吾將爲賓乎?” 士涵憮然爲間曰: “聊自寓意耳.” |
유한렴劉漢廉은 자신의 호를 죽원옹竹園翁이라 짓고, 집에는 불이당不移堂이란 편액을 내 걸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집에는 대나무 동산은커녕 한 그루의 대나무도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왜 자신의 호를 죽원옹이라 했을까? 불이당不移堂이라니, 무엇을 옮기지 않는 집이란 말인가? 대나무 한 그루 없는 집에 사는 ‘죽원옹’과, 어떤 역경에도 옮기지 않을 뜻을 기르는 ‘불이당’을 위해 연암은 붓을 들었다.
무하유無何有의 마을, 즉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은 마을에 사는 오유선생烏有先生이란 이름만 있고 실지는 없는 허깨비 선생이란 말이다. 여보게, 죽원옹! 자네의 대나무 동산은 어디에 있는가? 자네의 굳센 뜻은 어디에 있는가? 실지가 없는데 이름만 내걸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머쓱해진 죽원옹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뭐 꼭 대나무 동산이 있대서 지은 이름은 아닐세. 그저 그렇듯이 곧은 절개를 지녀 환난 속에서도 변치 않을 정신을 지켜가고픈 마음을 담은 것이라네.”
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상심하지 말게. 내 장차 자네를 위해 이를 채워 줌세. 지난번에 학사 이양천李亮天이 한가롭게 지내며 매화시를 지었는데, 심사정沈師正의 묵매墨梅를 얻어 시축詩軸에 얹었더랬네. 인하여 웃으며 내게 말하지 않겠나. ‘심하도다! 심씨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능히 사물과 꼭같게만 할 뿐이로다.’ 내가 의아해서 말했지. ‘그림을 그리면서 꼭 같게 그린다면 좋은 화가일터인데, 학사께서는 어찌 웃으십니까?’ 余笑曰: “無傷也. 吾將爲子實之也. 曩李學士功甫, 閒居爲梅花詩, 得沈董玄墨梅以弁軸. 因笑謂余曰: ‘甚矣! 沈之爲畵也. 能肖物而已矣.’ 余惑之曰: ‘爲畵而肖, 良工也. 學士何笑爲?’ |
그러자 연암은 자신의 「불이당기」를 가지고 죽원옹과 불이당의 이름에 실지를 채워 주겠노라고 장담한다. 이하의 글은 인용문 속에 인용문이 들어 있고, 그 인용문 속에 또 다시 인용문이 들어 있는 중층 구조의 복잡한 내용이다. 자칫 하다간 말하는 주체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약하여 이학사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이학사는 바로 연암의 처숙부 되는 이양천李亮天(1716-1755)이다. 그가 한가롭게 지낼 때 지은 매화 시축詩軸의 앞머리에 당대의 유명한 화가인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묵매도墨梅圖를 얻어 얹은 일이 있었다. 핍진한 매화를 그려온 그 그림을 한참 보던 이학사는 까닭 없이 실망감을 나타내 보인다. “쯧쯧! 이 사람 그림은 늘 이 모양이라니까? 그저 사물과 꼭 같게만 그리려 드니 말일세.” “아니, 화가가 그리려는 사물을 꼭 같게 사생寫生해 낼 수 있다면 훌륭하다 아니 못할 터인데, 어째서 핍진한 것을 비웃으십니까?”
2. 잣나무는 그려달라는 부탁에 글만 적어 보낸 이유
그러자 학사는 이렇게 말했었네. ‘까닭이 있다네. 내가 예전에 이인상李麟祥과 노닐었는데, 일찍이 비단 한폭을 보내 제갈공명 사당의 잣나무를 그려달라고 했었지. 이인상은 한참 있다가 전서로 「설부雪賦」를 써서는 돌려보냈더군. 내가 전서를 얻고는 또 기뻐서 더욱 그 그림을 재촉했더니, 이인상은 웃으면서 말했지. 「자네 아직 몰랐던가? 예전에 이미 보냈던걸?」내가 놀라서 말했네. 「지난 번 온 것은 전서로 쓴 「설부」였을 뿐일세. 자네가 어찌 그것을 잊었단 말인가?」 이인상은 웃으며 말했지. 「잣나무는 그 가운데 있다네. 대저 바람서리가 모질다 보니 능히 변치 않을 것이 있겠는가? 자네 잣나무를 보고 싶거든 눈 속에서 구해보게.」 내가 그제서야 웃으며 대답하였네. 「그림을 구했건만 전서를 써주고, 눈을 보면서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하라니, 잣나무와는 거리가 머네 그려. 자네의 도道란 것이 너무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曰: ‘有之矣. 吾初與李元靈遊, 嘗遣絹一本, 請畵孔明廟柏. 元靈良久, 以古篆書雪賦以還. 吾得篆且喜, 益促其畵, 元靈笑曰: 「子未喩耶? 昔已往矣.」 余驚曰: 「昔者來, 乃篆書雪賦耳. 子豈忘之耶?」 元靈笑曰: 「柏在其中矣. 夫風霜刻厲, 而其有能不變者耶? 子欲見柏, 則求之於雪矣.」 余乃笑應曰: 「求畵而爲篆, 見雪而思不變, 則於柏遠矣. 子之爲道也, 不已離乎?」 |
“자네 그 까닭을 알고 싶은가? 그게 다 이유가 있다네.”
이어지는 대목부터는 글 속의 액자로 들어간 이양천과 이인상李麟祥(1710-1760)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화이다. 이인상도 영조조의 유명한 화가로 그의 자는 원령元靈이고, 호는 능호관凌壺觀으로 알려진 이다. 한번은 이양천이 이인상에게 비단 한 폭을 보내 그림을 그려내란 적이 있었다. 두보杜甫의 시 「촉상蜀相」에 나오는, ‘승상의 사당을 어데가 찾으리오. 금관성 밖 잣나무 빽빽한 곳이로다. 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柏森森’라 한 바로 그 제갈공명 사당 앞의 잣나무를 그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얼마 후에 이인상은 고졸한 전서체로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를 써서 보내왔다. 이양천은 기뻐하며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림은 언제 그려줄 텐가?”
“지난번에 보냈지 않은가?”
“보내다니? 아니 지난번에 보내준 것은 「설부」였지 않나? 내가 원한 것은 제갈공명 사당 앞의 잣나무였단 말일세.”
“어허, 이 사람. 그걸 몰랐단 말인가? 자네의 잣나무는 이미 그 「설부」 가운데 있단 말이야. 자! 날씨가 추워져서 바람서리가 모질고 보니 온갖 초목들은 다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능히 그 푸르름을 변치 않는 것은 오직 잣나무가 있을 뿐일세. 자네 잣나무를 보고 싶은가? 그러면 그 눈 속에서 찾아보게나.”
“이거 내가 완전히 한 방 먹었군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은 그림인데 자네는 정작 글씨를 써주고, 내가 그려달란 것은 잣나무였는데, 자네는 눈만 그려주면서 그 속에서 잣나무를 찾아보라 하네 그려. 날더러 자네의 전서 글씨 속에 숨어 있는 잣나무를 보라는 말이군 그래. 자네가 말하는 그림의 도리란 것이 너무도 황당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일전은 이양천의 KO패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나중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이것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뒷날 추사가 그린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도 다 여기에서 그 뜻을 취해온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잣나무는 사시장철 푸르렀다. 그러나 여름에는 다른 초목들도 죄 푸르고 보니, 잣나무의 푸르름이 돋보일 것이 없었다. 막상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겨울이 와서 온갖 초목이 시들게 되자 잣나무의 오롯한 절개가 새삼스레 우러러 보인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말하다 죄를 얻어, 흑산도 가운데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었네. 일찍이 하루 낮 하루 밤에 7백리를 내달리는데, 길에서 전하는 말이 금부도사가 장차 이르러 후명後命 즉 사약을 내리는 명령이 있을 거라는 게야. 하인들은 온통 놀라 떨며 울어댔지. 그때 날씨는 추운데 눈은 내리고, 앙상한 나무와 허물어진 벼랑은 들죽날쭉 무너져 길을 막아 아무리 바라보아도 가이 없었다네. 그런데 바위 앞의 늙은 나무가 거꾸러져서도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마치 마른 대나무와 같지 뭔가. 내가 바야흐로 말을 세우고 도롱이를 걸치고 멀리 가리키며 기이함을 일컫고는, 「이 어찌 이인상이 전서로 쓴 나무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었네. 旣而, 余言事得罪, 圍籬黑山島中, 嘗一日一夜, 疾馳七百里, 道路傳言, 金吾郞且至, 有後命. 僮僕驚怖啼泣. 時天寒雨雪, 其落木崩崖, 嵯砑虧蔽, 一望無垠. 而岩前老樹倒垂枝, 若枯竹. 余方立馬披蓑, 遙指稱奇曰: ‘此豈元靈古篆樹耶?’ |
이후 이양천은 상소문을 올린 것이 임금의 뜻을 거슬려 멀리 흑산도로 위리안치 된다. “귀양 내려오는 길이었네. 밤낮 없이 말을 달려 하루 7백리 길을 내달렸었지. 오는 동안 내내 곧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사약을 내릴 것이란 소문이 흉흉하게 뒤따라 왔다네. 따라온 하인 녀석은 울며불며 벌벌 떨지, 날씨는 추운데 눈은 펑펑 내리지, 앙상한 나무와 무너진 벼랑은 자꾸만 길을 막아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아도 끝간 데를 모르겠더군. 그런데 말이야. 바위 앞에 늙은 나무가 거꾸러진 채로 제 가지를 아래로 드리웠는데, 그것이 내 눈에는 꼭 마른 대나무 같지 뭔가. 그제서야 나는 옛날 이인상의 그림 생각이 퍼뜩 났네. 눈보라 속에 가지를 드리운 늙은 나무 가지가 어째서 내 눈엔 마른 대나무로 보였을까? 그때 나는 퍼뜩 이인상이 내게 전서로 써준 잣나무가 바로 이런 경계가 아닐까 싶었다네.”
3. 위급한 위리안치 중에도 임금을 걱정한 이양천의 절개
위리안치 되고 나서는 장독瘴毒을 머금은 안개가 어두침침하고, 독사와 지네가 베개와 자리에 얽혀 있어 해입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지. 어느 날 밤에는 큰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 마치 벽력이 이는 듯하므로 아랫것들은 모두 넋이 나가 구토하며 어지러워들 하였네. 내가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남쪽바다 산호야 꺾인들 어떠하리. 오늘밤 다만 근심 옥루玉樓의 추움일세.」라 하였다네. 旣在籬中, 瘴霧昏昏, 蝮蛇蜈蚣, 糾結枕茵, 爲害不測. 一夜大風振海, 如作霹靂, 從人皆奪魄嘔眩. 余作歌曰: 「南海珊瑚折奈何, 秪恐今宵玉樓寒.」 |
우여곡절 끝에 그는 흑산도에서 귀양생활을 시작했고,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안개는 장기瘴氣를 머금어 기혈을 삭히고, 거처에는 독사와 지네가 여기저기서 기어 나와 언제 해를 입을지 모르는 절박한 환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벽력같은 파도 소리와 함께 집채만한 물결이 휩쓸어 지나가자, 천지가 진동할 듯 모든 사람은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데, 이양천은 오히려 담담히 한 수의 「산호가珊瑚歌」를 지었다.
南海珊瑚折奈何 | 남쪽 바다 산호야 꺾인들 어떠하리 |
秪恐今宵玉樓寒 | 오늘밤 다만 근심 玉樓의 추움일세. |
남쪽 바다 산호는 이 험한 파도를 견디지 못해 꺾이고 만다 해도, 단지 나의 걱정은 산호에 있지 않고 玉樓에 계신 우리 임금께서 춥지나 않으실까 하는데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쪽 바다 산호의 원관념은 물론 자신이다. 자신이야 이 절해고도에서 아름다운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거꾸러져 죽더라도 상관없지만, 임금과 나라의 안위만은 근심치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두 겹의 이야기 구조를 읽게 된다. 처음 그는 이인상의 이야기를 황당하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종들이 벌벌 떨며 울부짖는 건곤일척의 상황 속에서 눈 속에 거꾸러져 마른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고목을 보고는 앞서 이인상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목에서 마른 대나무의 절개와 만나고 나자 그의 가슴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호연한 기상이 발발하게 솟아났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유배지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파도 소리 속에 하인들이 넋을 잃고 구토하며 어지러워 할 적에도 그는 의연히 곧추 앉아 ‘산호의 노래’를 담담히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인상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근자에 산호곡을 얻어보매, 완미하면서도 상심하지 않아 원망하고 후회하는 뜻이 없으니, 능히 환난에 잘 대처해가고 있더군. 접때 그대가 일찍이 잣나무를 그려달라 하더니만, 그대 또한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만하네 그려. 그대가 떠난 뒤, 잣나무 그림 수십 폭이 서울에 남았는데, 모두 이조吏曺의 벼슬아치들이 끝이 모지라진 붓으로 베껴 그린 것이라네. 그런데도 그 굳센 줄기와 곧은 기운은 늠연하여 범할 수가 없고, 가지와 잎은 무성하여 어찌나 성대하던지?」라고 하였더군. 내가 나도 몰래 실소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네. 「이인상은 몰골도沒骨圖, 즉 형체없는 그림이라 말할만 하구나.」 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좋은 그림이란 그 물건과 꼭 닮게 하는데 있지 않을 뿐이라네.’ 나 또한 웃고 말았었지. 元靈書報, 「近得珊瑚曲, 婉而不傷, 無怨悔之意, 庶幾其能處患也. 曩時足下嘗求畵柏, 而足下亦可謂善爲畵耳. 足下去後, 柏數十本, 留在京師, 皆曺吏輩, 禿筆傳寫. 然其勁榦直氣, 凜然不可犯. 而枝葉扶疎, 何其盛也?」 余不覺失笑曰: 「元靈可謂沒骨圖.」 由是觀之, 善畵不在肖其物而已.’ 余亦笑. |
그 뒤에 이인상이 유배지의 그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자네의 ‘산호의 노래’를 잘 읽어 보았네. 담긴 뜻이 완곡하면서도 상심함을 머금지 않았더군. 또 일찍이 원망하고 후회하는 뜻이 없으니, 능히 어려움을 잘 견뎌나가고 있다 하겠네. 지난 번 자네는 내게 잣나무를 그려 달라고 했지? 이제 보니 자네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세 그려. 자네가 서울을 떠난 뒤로 이조吏曺의 벼슬아치들이 모지라진 붓끝으로 베껴 그린 잣나무 그림 수십 폭이 서울에 남아 돌아다닌다네. 줄기는 굳세고 기운은 곧아 범할 수 없는 기상이 있고, 가지와 잎은 또 어찌 그리 무성하더란 말인가?”
그런데 이인상의 이 편지에서 뒤편의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십 명이나 되는 벼슬아치들이 앞 다투어 전사傳寫 했다는 잣나무 그림이란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잣나무 그림이란 애초에 그려지지도 않았지 않은가? 있지도 않은 잣나무 그림을 수십 명의 벼슬아치들이 모지라진 붓끝으로 베껴 그렸다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더욱이 그 그림의 기상이 장하여 꺾을 수 없는 기운이 넘쳐 났다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전후의 사정은 좀 더 살펴보아야겠으나, 추찰컨대 이 대목은 당초 이양천이 귀양 가게 된 상소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문제가 된 이양천의 상소란 당시 時任 영의정인 소론의 이종성李宗城을 탄핵했던 일을 말함인데, 조선왕조실록 영조 28년 10월 29일조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상소문을 읽고 격노한 영조는 곧바로 이양천에게 흑산도 위리안치의 명을 내린다. 그렇다면 수십 명 벼슬아치들이 그렸다는 잣나무 그림이란, 결국 조정안에 이양천의 상소에 공감했던 노론 소장파들의 모종 움직임을 암시한 것이 된다. 즉 그의 결연한 상소에 고무되어 뜻을 같이 한 이들이 수십 명에 달했던 것을 말함일 터이다. 다만 그 붓끝이 모지라졌다고 한 것은 그들의 뜻 또한 당시에 격렬한 시련 속에 놓여 있었으며, 그럼에도 그 기상은 충천해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얼마 후 학사 이양천 공은 세상을 뜨고 말았네. 내가 그 시문을 편집하다가 적소謫所에 있을 때 형에게 보낸 편지를 얻었는데, 쓰여 있기를 ‘근자에 아무개의 편지를 받아보니, 날 위해 당로자當路者에게 석방을 구해보려 한다는데, 어찌 저를 이리도 박하게 대우하는지요. 비록 바다 가운데서 썩어 죽을망정 나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었네. 내가 그 글을 들고서 슬피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학사는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로구나. 선비는 궁하게 된 뒤에 평소 품은 뜻이 드러나는 법이다. 환란과 재앙을 만나서도 그 절조를 고치지 아니하고, 높고도 외로이 우뚝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찌 날씨가 추워진 때라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었네.“ 旣而, 學士歿, 余爲編其詩文, 得其在謫中所與兄書, 以爲‘近接某人書, 欲爲吾求解於當塗者, 何待我薄也. 雖腐死海中, 吾不爲也.’ 吾持書傷歎曰: ‘李學士眞雪中柏耳. 士窮然後見素志. 患害愍厄而不改其操, 高孤特立而不屈其志者, 豈非可見於歲寒者耶?’ |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이양천은 세상을 떴다. 연암은 처숙부인 그의 시문집을 엮으려고 원고를 정리하다가, 흑산도에서 형님인 이보천李輔天(1714-1777)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낸다. “형님! 듣자니, 아무개가 절 위해 當路者에게 저의 석방을 탄원하려 하는 모양인데, 어찌 저를 이다지도 박하게 대우한단 말입니까? 아우는 바닷가에서 잊혀져 썩어 죽을망정, 남에게 청탁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빌지는 않으렵니다.” 이 편지를 읽고서 연암은 혼자서 되뇌인다. “아! 이학사야 말로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였구나. 선비가 궁하게 되면 평소 품은 본 바탕이 낱낱이 드러나는 법이다. 환난과 재앙 속에서 그 절조를 고치지 않고, 높고 외로이 우뚝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분명히 드러나는 법이로구나.”
이제 우리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아! 사함은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이란 말인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내 장차 그대의 집에 올라보고 그대의 동산을 거닐면서 눈속에서 대나무를 구경해도 좋겠는가? 今吾士涵, 性愛竹. 嗚呼, 士涵其眞知竹者耶? 歲寒然後, 吾且登君之軒, 而涉君之園, 看竹於雪中, 可乎? |
그제서야 이야기는 다시 ‘불이당’과 ‘죽원옹’에게로 돌아온다. 대나무 한 그루 없어도 그 가슴 속에 대나무를 지니고 있을 진데, 그는 죽원옹이다. 왜 대나무가 없는데 죽원옹이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 심사정의 묵매도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사함은 가슴 속에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불이不移’의 기상을 지니고 있기에, 그 거처에 한 그루의 대나무가 없더라도 죽원옹을 일컫기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아! 여보게 사함. 추운 겨울이 되면 내 장차 그대의 집에 올라보고, 그대의 동산을 거닐면서 눈 속에 서걱이는 대바람 소리를 듣고 싶네 그려. 허락해 주겠는가?
이렇게 해서 연암의 「불이당기」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처음 연암은 명실名實이 상부하지 않은 불이당의 주변을 슬쩍 희롱하고는 그것으로 글의 실마리를 열었다. 그리고는 심사정과 이인상 등 당대 1급의 두 화가를 한 자리에 올려놓고, 형사形似와 심사心似의 문제로 이 이야기를 확대시켰다. 대나무 있는 집에 살면서 호를 죽원옹이라 하는 것은 매화를 쓴 시를 보고 매화 그림을 얹는 심사정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등 이상할 것도 없고 신기할 것이 없다. 그러나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데 ‘대나무 동산’이라고 말하니, 이것은 그려 달라는 잣나무는 안 그려주고 전서로 「설부」를 써서 보내주는 이인상의 동문서답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신기하고 이상한 것만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문서답이 더 윗길이 된다는 뜻도 아니다.
형체를 보고 사실과 꼭 같게 핍진히 재현해내는 것은 손끝의 재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다만 형사形似일 뿐이다. 그러나 천지 가득한 눈 속에서 홀로 푸름을 간직하고 서있을 승상 사당 앞의 잣나무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는 마음으로 잣나무를 그려낸 것이니, 이것은 분명 심사心似가 된다. 연암은 이양천의 입을 빌어 그것을 ‘몰골도沒骨圖’로 표현한다. 뼈대가 없고 보니 형체도 없다. 그러나 그 몰골무형沒骨無形 속에 그림의 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데 있지 않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고는 훌륭한 그림이랄 수 없다.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의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속에 푸르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 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낙목落木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5. 모양이 아닌 정신을 그리다
한편으로 「불이당기」는 이렇게 읽고 말 글은 아니다. 앞서도 보았듯 심사와 형사에 얽힌 화론畵論의 핵심처를 정면에서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재필선意在筆先’ 즉 그림을 그릴 때는 화가의 정신이 붓에 앞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논의는 위부인衛夫人의 「필진도筆陣圖」에서 처음 언급한 이래로 역대 화론에서 늘상 거론되어 온 말이다. 그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사생寫生이 아니라 사심寫心일 뿐이다. 그래서 송나라 진욱陳郁은 『장일화유藏一話腴』에서 “대개 형상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가 않고, 오직 마음을 그려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대저 굴원의 모습을 그려 꼭 같게 되었다 하더라도, 만약 그 못가를 거닐며 읊조리고 충성을 품어 불평한 뜻을 능히 그려내지 못한다면 또한 굴원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껍데기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의 실질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매화시에 정작 어울리는 것은 핍진한 묵매도가 아닌 것이며, 시들지 않는 잣나무는 오히려 「설부」의 고졸한 글씨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다.
송나라 때 화가 이공린李公麟(1049-1106)은 일찍이 두보의 「박계행縛鷄行」을 소재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가 어떻게 형사形似 아닌 심사心似로써 사심寫心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먼저 그 시를 읽어 보기로 하자.
小奴縛鷄向市賣 | 작은 종놈 닭을 묶어 저자로 팔러 가니 |
鷄被縛急相喧爭 | 묶인 닭들 다급해 시끄럽게 다투누나. |
家中厭鷄食蟲蟻 | 집에선 벌레 개미 물리도록 먹겠지만 |
不知鷄賣還遭烹 | 팔려가면 도리어 삶아질 줄 어찌 아나. |
蟲鷄於人何厚薄 | 벌레와 닭 내게 있어 어찌 후박厚薄 있으랴만 |
吾叱奴人解其縛 | 종놈을 꾸짖고서 묶은 것을 풀어주네. |
鷄蟲得失無了時 | 닭과 벌레 득과 실은 그칠 때가 없으리니 |
注目寒江倚山閣 | 찬 강물 바라보며 산 누각에 기대노라. |
옹색한 살림에 닭이라도 저자에 내다 팔까 싶어 꽁꽁 묶었다. 그러자 묶인 닭들이 안 죽겠다고 푸드득 난리를 친다. 저것들이 팔려 가면 나는 몇 끼 밥을 먹겠지만 저놈들은 또 삶아져 남의 밥상 위에 오를 것이 아닌가? 저것도 목숨이라고 살아 보겠다고 아우성치는 꼴이 꼭 내 처지를 보는 것 같아서 그만 풀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시를 이공린은 어떻게 그려냈을까? 꽁꽁 묶인 닭들의 푸드득 대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모습을 그렸을까? 그렇지 않다. 이공린은 그림 속에 결코 닭을 그리지 않았다. 그가 그린 것은 8구, 추운 강물을 바라보며 산 누각에 기대선 두보의 스산한 표정뿐이었다. ‘한강寒江’이라 했으니, 혹독한 겨울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 가난을 이고서 또 한 겨울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표정 속에 이미 「박계행」의 사연이 다 담겨져 있다.
6. 시란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고목이 버섯으로 변한 것
다시 대나무 한 그루 없는 집에 살며 죽원옹이라 호를 지은 사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이른바 저 문동文同이 말한 ‘흉중성죽胸中成竹’의 화론을 점화點化한 것이다. 의재필선意在筆先이랬거니, 대나무를 그리려면 반드시 가슴 속에 대나무를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판교板橋 정섭鄭燮은 자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의 제발題跋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맑은 가을 강가 여관에서 새벽에 일어나 대나무를 보니, 안개 빛과 해 그림자와 이슬 기운이 모두 성근 가지와 빽빽한 잎새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가슴 속에서 뭉게뭉게 그림을 그리고픈 생각이 솟아났다. 기실 가슴 속의 대나무는 눈 앞의 대나무는 아니었다. 인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붓을 놀려 순식간에 변상變相을 지어내니, 손 안의 대나무는 또한 가슴 속의 대나무가 아니었다. 요컨대 뜻이 붓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 정해진 법칙이라면, 정취가 법도의 밖에 있다는 것은 조화의 기미인 것이니, 유독 그림만 그렇겠는가? 江館淸秋, 晨起看竹, 烟光日影露氣, 皆浮動於疎枝密葉之間. 胸中勃勃, 遂有畵意. 其實胸中之竹, 竝不是眼中之竹也. 因而磨墨展紙, 落筆倏作變相. 手中之竹, 又不是胸中之竹也. 總之, 意在筆先者, 定則也, 趣在法外者, 化機也, 獨畵云乎哉? |
맑은 가을날 새벽 강가에 앉아 대숲을 본다. 자욱한 안개빛과 떠오르는 해 그림자, 그리고 촉촉한 이슬 기운이 대나무 가지와 잎새 사이에 떠돌고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화가는 강렬한 화의畵意를 느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려고 붓을 든 화가의 마음속에 담긴 대나무는 눈 앞에 서 있는 대나무와는 같지가 않다. 붓을 재빨리 휘둘러 순식간에 그려 놓고 보니, 종이 위의 대나무는 또 가슴 속에 있던 대나무가 아니었다. 눈앞의 대나무와 그려진 대나무, 그리고 애초에 내 가슴 속에 있던 대나무는 서로 다르다. 대상을 사생하기에 앞서 화의畵意가 충만해야 하는 것은 그림에 있어 정칙定則이 된다. 그러나 막상 가슴 속 형상이 눈앞의 실상과 만나 그림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그러한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변화의 기미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어찌 그림만 그러하랴? 시 쓰는 일도 다를 바가 없다. 무심한 일상 속에서 문득 사물이 내게로 다가온다. 무엇을 쓰겠다는 의도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내면 속에서 꿈틀대며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을 소중히 포태胞胎하여 가다듬어 언어로 빚어낸다. 그렇게 한편의 시가 완성되면, 언어는 내 가슴 속에 맺혔던 애초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저 혼자 살아 숨 쉬는 사물이 된다. 이미 그것은 내가 만났던 실제의 사물도 아닌 것이다.
시인은 가슴 속에 대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눈 속에서 잣나무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눈 앞의 사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투명한 시선으로 가슴을 열어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해무리 달무리로 아롱진다. 이런 설레임, 이런 두근거림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이규상李奎象(1727-1799)의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는 이양천의 다음 시구가 실려 있다.
鳴泉浸草流螢化 | 우는 샘물 풀에 스며 반딧불로 화하고 |
積雨蒸菌古樹香 | 장마비에 버섯 돋아 고목은 향기롭네. |
돌돌돌 울며 흐르던 샘물은 길섶의 풀을 적신다. 젖은 풀은 다시 반짝반짝 반딧불이로 변화하였다. 지루한 장마 끝에 고목엔 버섯이 돋아나, 바짝 말라있던 둥치에 아연 향기가 감돈다.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디가 되고, 고목枯木이 버섯을 쪄서 향기를 머금는 것이 바로 시이다. 우주론적 순환이 이 속에 담겨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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