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단재학교는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간다. 서울 근교에 갈 땐 당연히 전철과 광역버스를 이용하고, 멀리 갈 땐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여태껏 경춘선을 타고 가평에 가거나, 스키장에 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경의중앙선을 타고 간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여행지로서는 경춘선이 지나는 가평, 춘천 일대가 관광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들이 여행 계획을 짜면서 처음으로 용문산 일대의 계곡으로 장소를 정하게 됐고, 그에 따라 우리들도 처음으로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게 됐다.
▲ 방학이 끝나고 함께 여행 장소를 결정했다. 산과 계곡, 바다, 워터파크 중 어디에 갈 건지 함께 얘기하고 있다.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용문역을 와본 적은 없지만, 나름 익숙한 곳이다. 작년 8월의 뙤약볕이 내리쬘 때,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늘 계획대로, 예상대로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죽어 있던 세포들이 기뻐 날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우리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장소 또한 정한 것이 아니기에, 낚시를 할 만한 장소를 찾아 헤매고 헤매다가 용문역 근처의 흑천까지 오게 되었고, 경의중앙선 선로 바로 밑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용문역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서 나왔다. 아침 공기가 며칠 사이에 제법 쌀쌀해졌다. 하지만 아직은 단단히 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기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서 음악을 들으며 길을 나섰다.
▲ 1년 전에 갑작스레 떠난 여행의 장소가 바로 용문역 근처였다. 이건 우연인데 참 맘에 드는 우연이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하지만 이 때 한 학생에겐 전화가 걸려왔다. 여행지를 선정할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참여하겠다고 하던 학생이었다. 이 학생의 경우, 평소엔 여행을 한다는 걸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긴 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예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기에, ‘이번엔 함께 갈 수 있겠구나’라고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당일 아침에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전화가 오니 기운이 팽기더라. 그래도 아직은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이번 여행은 푹 쉬러 가는 여행이니,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와서 펜션에서 쉬다가 저녁에 고기파티할 때 배불리 먹으면 좋을 거 같아”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이번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라는 대답을 하더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 끄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럼 잘 쉬고 목요일에 보자”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이때의 솔직한 감정은 이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모두 다 표현해서도 안 되며, 함께 얘기를 잘 나눠야만 한다.
교사로서 힘이 팽길 때가 있다. 이미 단재학교에서 5년 간 교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초임교사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에 매료되어 내 의지대로 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변화는 단기간의 시선으로는 결코 볼 수 없으며, 장기간의 안목과 너른 비전이 있을 때 묵묵히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학생을 만나는 일 자체가 나의 생각과 나의 틀을 지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세계관과 만나고 어우러져야 하기에, 나의 생각은 늘 도전을 받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의 균열, 삶의 끊임없는 도전을 견뎌내는 일이야말로 좀 거창하게 말하면, 교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과 어울리며 나의 생각과 행동에 도전을 받는 건 힘든 일이긴 해도, 힘이 팽길 정도의 것은 못된다. 하지만 학생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의견차를 인정하며 절충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모두 차단당할 때 힘겨움을 느낀다. 가능성이 모두 닫혀 버린 절망감이 감돌며, ‘지금껏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비관론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여행은 신나게 시작했지만, 그 신남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바스라지고 만 것이다.
▲ 우치다타츠루 쌤의 말을 그래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안목, 그리고 자본이 쳐놓은 교육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인용
4. 슬펐다 기뻤다 왔다갔다
5. 용문 5일장
6. 중원폭포에서 놀다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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