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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용문산 여행 - 8.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용문산 여행 - 8.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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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이때 정훈이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이 경우야말로 금수저와 흙수저의 이야기 같은 상황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물론 진지한 말투가 아닌,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뱉은 것이니,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훈이가 얘기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그림. 그렇다면 과연 절망적이기만 할까?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이 상황은 얼핏 보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서 도착하려던 사람이 뒤늦게 차를 타고 온 사람에게 져버린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흙수저가 노력해봤자 금수저에겐 안 돼라는 비관적인 결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정훈이도 이런 현실이 말이나 됩니까라고 농을 쳤다.

만약 이 상황이 현실이었다면 크게 좌절했을 것이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 환경의 차이에 의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경우 진득하니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온갖 정보와 편법으로 결과만 성취하려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정훈이는 장난스런 상황에 이런 말을 한 거지만, 이런 상황은 엄연한 현실이기에 무겁게 느껴졌다.

 

 

결국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어야만 비로소 다른 삶을 알 수 있다.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이게 결코 비관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과만 중시할 경우 금수저의 편법을 통한 성취를 높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와 같이 별 것 없는 과정을 해나간 것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과정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이기에 이런 평가가 아주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우치다쌤은 오히려 그렇게 느껴버린 무의미야말로 가장 중요한 느낌이라고 얘길해준다. 아래에 인용된 글을 읽으며 무의성에 대해 다르게 보도록 하자.

 

 

(청소한다는 것이) 우주의 진리지요.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이 여기고 살아가는 문명적인 공간은 누군가 필사적으로 무질서를 세계 밖으로 쫓아내준 덕분이예요. 실은 겨우겨우 확보해놓은 것에 불과하지요. 예를 들어 눈 내린 날 우리가 편하게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열심히 눈을 치워주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실은 무수한 사람들의 인간적 노력이 쌓이고 쌓인 덕분임을 깨닫는 일이 정말 중요해요.

청소를 해보면 인간이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지요. ‘시시포스의 신화가 바로 그렇죠.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요. 모처럼 마음먹고 깨끗하게 치워놓는다 해도 금방 지저분해지고 말죠. 일껏 해놓은 것이 찰나를 못 버티고 티끌로 변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청소를 하면 우리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가?’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느낌이 아주 중요해요. ‘에잇, 이게 뭐야.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라는 깨달음 말이지요. 그제야 비로소 의미 없어 보이는 것 안에 의미가 있음을, 허무하게 변해버리는 것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 저, 메멘토, 2014, 130~131pp

 

 

누가 봐도 하찮은 것, 그리고 아무런 뽀대도 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아예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 속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치다쌤은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은 어찌 보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 휘황찬란하게,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일만을 쫓아 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비근한 일부터 시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동섭쌤은 그런 교사를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로 규정하며 그런 교사가 되자고 했다)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일 속에 의미가 있고, 별 것 아닌 일 속에 생명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걸었던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와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우린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길가에 핀 들꽃도 봤으며, 그 시간을 오롯이 느꼈으니 그런 순간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의 자세는 저번 자전거 여행기에서 밝혔다시피 점과 점의 여행이란 한계를 넘어서 선의 여행을 한 것이니, 이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다고 할 만하다.

이처럼 우리의 놀이는 한 순간에 철학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게 바로 여행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별 것 아닌 것에서 별 것을 느끼고, 일상 속에서 이상을 찾아내는 것이니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420분이 되었다. 두 시간 정도 쉬다가 630분부터 고기파티를 하기로 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정말로 좋다.

 

 

우리에겐 그저 이 모든 게 하나의 재밌는 놀이거리일 뿐이다. 

 

 

인용

목차

사진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2. 여행에 들이닥친 두 가지 변수

3.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4. 슬펐다 기뻤다 왔다갔다

5. 용문 5일장

6. 중원폭포에서 놀다

7. 먼저 자리를 뜬 선배들의 사연

8.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10.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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