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행에 들이닥친 두 가지 변수
계곡 여행은 여름 여행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2012년엔 덕풍계곡으로, 2013년엔 망상해수욕장으로, 2014년엔 오션월드로, 2015년엔 가평 도마천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계곡이나 바다에서 잠을 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우러지다보면 ‘한여름 밤의 꿈’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올해에도 그런 기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 12년만의 폭염에 몸둘 바를 몰랐다.
떠나자, 계곡으로
더욱이 올핸 1994년 폭염 이후로 최고의 폭염이었다고 한다. 방학에 집에 있으면 도무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있지 못할 정도의 무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쇼핑몰이나 영화관이 사람들로 차고 넘치며 성업을 이뤘고, 1973년 석유파동부터 가정용 전기에만 붙었던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 모른 게 기록적인 더위가 남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8월 22일에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면서 3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개학여행의 계획을, 다른 한 팀은 요리수업의 메뉴를, 또 다른 한 팀은 2학기 트래킹 장소를 정하도록 했다. 물론 개학여행의 모든 것을 학생들이 짜되, 계곡이나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그런 장소를 물색한 것이다. 태기와 민지가 계획을 짰는데 8월의 끝자락인 29일과 30일, 1박2일의 일정으로 용문산 계곡의 중원폭포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 생각보다 계곡은 좋았다. 물도 맑고, 풍경도 좋았다.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당연하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 계획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고 방법을 마련하느냐가 그 단체의 건강성을 나타내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변수는 준영이의 아르바이트와 관련이 있었다. 준영이는 1학기 내내 학교에 다니며 저녁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를 테면 주경야독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힘든 일을 무려 7개월간이나 지속해온 것이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내 학생 시절의 아르바이트라곤 친구네 집 농장 일을 도우러 간다거나, BYC 창고에 가서 물류 분류를 해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여러 날이 아닌 가장 길게 15일 정도 해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준영이의 알바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가 ‘거시기’할 정도라 할 수 있다.
▲ 7개월간 정열을 불태웠던 곳. 이곳에서 나올 때 얼마나 좋았을까.
준영이는 처음부터 6개월 정도 묵묵히 일할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런 마음을 끝까지 견지하여 8월에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무언가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기분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것이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행을 가는 날이 준영이가 알바하는 날과 겹쳐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엔 당연히 모든 학생들이 참석해야 하고, 함께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준영이의 일정에 따라 여행 일정도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월요일에 떠나려던 계획을 바꿔서, 화요일에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준영이는 화요일 저녁에 알바가 끝나면 11시쯤 펜션으로 와서 합류할 수 있게 된다.
▲ 용문행 막차는 왕십리에서 11시 30분까지 있다. 그나마 늦게까지 있어서 준영이가 올 수 있으니 다행이다.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여기까지야 사람의 문제이기에 쉽게 해결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도 있다.
개학을 하고서도 무더위는 계속 되었기에 계곡으로 여행 장소를 정했고, 펜션 예약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런 무더위가 당연히 계속 될 거라 생각해서 장소를 정했으며, 세 번의 물놀이를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맹렬하게 끓어오르던 더위는 26일에 내린 비와 함께 갑자기 누그러졌다. 오죽했으면 그날 새벽에 비가 내릴 땐 한기까지 느껴져 여름 내내 처박아 뒀던 매트와 이불까지 꺼내야 했을까. 장난처럼 한 순간에 가을은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시 서늘하다가 다시 더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날씨는 주말까지도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승태쌤은 28일 일요일 저녁에 “화욜 물놀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보물찾기 같은 게임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날씨가 꽤 쌀쌀해요”라는 회의 안건을 보내오기도 했던 것이다.
▲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되자, 여행의 계획도 바뀔 수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인지, 금상첨화인지 여행 둘째 날인 수요일 새벽부턴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뜨더라. ‘원 펀치 쓰리 강냉이’에 버금갈 정도로 날씨는 여름의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종합선물세트라도 선물하려는지 서늘한 기온과 함께 오돌오돌 떨릴 정도로 차가운 비까지 선사해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해 아이들과 상의를 해보니, 화요일에 가서는 계곡에서 놀고 그 다음부턴 펜션에서 여러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더라.
▲ 수요일 내내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왔다. 맙소사다.
바로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는 거다. 맘처럼 되지 않고, 변수에 익숙해져가는 과정들. 그리고 그런 변수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즐길 수 있는 마음까지. 이런 게 바로 여행을 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늘 계획대로만 살아왔고, 정해진 대로만 살아와서 삶의 변덕에 힘들어했던 사람이라면 이처럼 여행을 떠날 볼 일이다. 그러면 더 이상 맘처럼 안 되는 현실에 힘들어하며 맘 상해하지 않게 된다. 여행은 알지 못할 삶을 부정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며, 그에 따라 확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드디어 단재학교 2학기 여행은 두 가지 변수를 감싸 안으며 시작되었다. 이제 여행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 경의중앙선을 타고 두물머리를 건넌다.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인용
4. 슬펐다 기뻤다 왔다갔다
5. 용문 5일장
6. 중원폭포에서 놀다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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